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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썰 백업

[Have a Nice Day]

with. 클리보 (상컨)



*Asteriscus

애스터리스크.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특수문자들 중 곱하기 등 다양한 의미를 뜻하는 별표를 스크린 위에 띄우고 클리보는 한참 그것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남색의 고장난 스크린 위로 새하얀 별표하나. 수많은 것들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진 안드로이드가 무수한 것을 상상하기에는 충분한 시간동안, 클리보는 스크린을 눈에 담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서도 한참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그의 게으른 주인이 방에서 나올 때까지도 클리보의 시선은 스크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뭐해? 주인의 담백한 물음이 그에게 닿고서야 클리보는 시선을 돌려 주인을 마주했다. 인간, 클리보가 떠올린 의문은 자비로운 주인이 허락하여 읽은 책들, 그 안의 철학적인 인간들조차도 답하지 못한 의문들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섣불리 답할 수 없는 것들을 떠올리며 클리보는 입은 다문 채 눈앞의 주인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진중하게 골라 열었다.


"주인님은, 온전한 하나의 개체가 맞으시지요?"


맹랑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했다. 주인은 뜻밖의 질문이라는 듯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고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부비적거리며 얼버무렸다. 뭐 그런 질문을 해.. 아침부터.. 아침이라고는 하나 네온사인들로 영원히 오지 않을 밤을 살고있는 그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클리보는 빤히 주인을 쳐다보며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평소처럼 잔소리나 할 줄 알았던 주인은 어물쩡 그의 눈치를 보았다. 자신이 산 안드로이드의 눈치를 보는 인간이라니, 역시 인간치고는 확실히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주인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런 맹랑한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클리보 2057, 자신을 일컫는 어찌보면 하나의 종족명이 될수도 있는 클리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인간은 달과 해와 같이 하나의 개체로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별들은 그저 별이다, 똑같이 새하얀 빛을 발하며 하늘을 밝혀도 달과 해는 될 수 없듯이-로봇이 아무리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졌어도 인간과는 다른 것처럼. 클리보는 문득 자신이 망가졌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떠올렸다. 이러한 상상을 하고있는 것 자체가 로봇으로써 이미 망가진 것이지 않을까, 싶은 불안감과 함께 퍼뜩 자신이 무슨 질문을 했는지를 깨달은 클리보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인 잔소리를 하며 청소기를 들었으나 주인의 답은 조금 늦게, 그의 손을 멈추었다.


"어.. 음, 뭐.. 답하자면 그렇겠지. 니가 그렇듯이 하나의 개체지."


내가 그렇듯? 클리보는 고개를 까닥 기울이며 다시금 떠오르는 질문들을 망설였다. 또 해도 될까 슬쩍 바라본 눈치에서 주인은 간만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거라며 이 주제에 대해서 퍽 즐거워하는 눈치였고 재미있어하며 대답들을 내놓고있었다. 나는 사람은 기억과 경험들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그것과는 좀 다를수도 있겠지만- 에, 그런거 있잖아. 같은 환경에서 자란 같은 쌍둥이가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이는 것처럼, 같은 경험과 같은 기억이어도 다르게 자랄 수도 있겠지. 그래도 대부분, 평범하고 무난하다면 살아온 바탕으로 성격이 형성되기 마련이야. 난 그렇게 생각해.

아직 마저 묻지도 못한 질문들의 답을 내놓으며 주인은 마저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그런거지, 넌 클리보 2057로 가정용 안드로이드잖아? 아니었나? 살때 제대로 못본 것 같은데. 암튼 그런데 모든 클리보 2057이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일을 하고있지는 않을거라는 말이지. 좀 심하게 말하자면 어느 과학자에게 팔려가 개조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정말 가정일만 하면서 지내는 클리보도 있을 것이고 너처럼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클리보가 있을것이고. 그런거지. 사람마다 전부 다른 경험과 상황을 제공해주는거야.


그럼.. 머뭇거리던 클리보가 마저 질문을 던진다, 그럼. 저는 유일한 존재인가요? 그건 어려운데, 중얼거린 주인이 먼지 한톨없는 소파에 느슨하게 눕듯 앉으며 창밖을 흘긋 스쳐보았다. 막 잠에서 깬 눈에게는 부담을 주며 쨍할만큼 아프게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그의 몸보다도 훨씬 큰 스크린에서 일렁거리는 화려한 이미지들을 바라보며 주인은 중얼거린다. 유일한.. 존재일 수 있겠지. 그런 가능성을 가진 로봇인거지. 내가 새로운 클리보를 데리고 왔다고 해서, 녀석에게도 똑같이 대우한다고 해서 그 녀석이 너와 같아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잖아? 뭐, 어.. 에.. 그런거지.

말끝을 분명히 정하지 않고 흐리며 대화를 끝낸 주인이 함숨과 함께 소파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고 TV속에서 화려하게 광고하는 안드로이드와 로봇들을 보며 주인은 키득 웃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맘편히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든것도 다 내덕이다 이 말이야.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돼, 그렇지? 결국 본인의 칭찬으로 이어진 말에 피식 웃으며 클리보도 청소기의 전원을 올리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톡톡 날카로운 말들을 쏘아붙이면서도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들은 전부 걱정과 염려였다. 기껏 로봇주제에, 인간을 걱정하게 된 것도 결국 클리보 스스로가 쌓아올린 사고의 양과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존재, 주인이 말해주었고 긍정한 말이 클리보의 마음을 울렸다.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기기 한쪽의 부품이 흔들거릴만큼 강렬한 울림이었으니 그걸 마음이라고 칭하면 될 일이었다. 쏘아붙인 말들에 꿍얼거리며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 주인의 등뒤로, 클리보는 빙긋 웃으며 그를 배웅한다.


내 유일한 주인님이자 상냥한 인간. 언제나 그렇듯 힘겨운 하루고 지루한 시간들이겠으나, 그 모든 순간들이 당신에게 좋은 날도 다가오기를. 다시 돌아올 집을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럼, Have a NIc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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