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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썰 백업

[이모티콘 단편썰]


이모티콘 단편썰



#1
소피아/👹🔪🌃

도시의 밤은 항상 같은 색을 띄는 것 같다. 오묘한 빛을 내는 조명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문득 외로워지기 십상이라-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 도심 속의 부지런히 움직이는 빛 중 하나인 남자는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불쑥 던진다. 오늘의 선택은~ 이라며 손가락을 빙글 돌려 이 집으로 정하겠다고 소리내어 말한 남자ㅡ소피아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누가 방문했는지도 모르게 다니는 게 제 특기라니까요? 아무도 듣지않을 말을 중얼거리며 고른 집안에 들어간 소피아는 독특한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잠시 압도되어 입을 다물었다.

일본의 도깨비 가면들이 줄지어 널려있는 짙은 고동색의 판자와 붉은빛 조명. 그 아래 정갈하게 놓여있는 조각도들까지. 일반적인 집은 아니라는 판단에 소피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상황을 파악한 후 빙긋 웃어보였다. 일본 가면 장인의 집에 들어온 모양이군요!

가볍게 손을 들어 최선을 다해 조각되었을 일본 가면 하나를 짚어들은 소피아는 짐짓 흉내라도 내듯 제 복면으로 가린 얼굴 위로 일본 가면을 덮어본다. 여러개의 술이 달려있는 천들 너머 얼핏 보이는 거울로 제 모습을 비추어본 그가 푸흐, 힘빠지는 웃음을 터뜨린다. 이걸 가져가서 어디에 팔아넘기면 좋으려나... 그가 굴리고 있는 계산적인 생각들 사이로 불쑥 일본 도깨비 가면의 탄생 이유를 떠올린다. 악역.. 악역을 잠시 해준다는 거 말입니다. 소피아는 가면을 다시금 새삼 바라보았다. 악당 역할을 대신해주고는 쫓겨나는 흉내를 하는 사람이라.. 도깨비는 밖으로, 복은 안으로라고 외치며 콩을 던진다지, 소피아는 활짝 웃어보인다. 저도 이 집의 도깨비가 되어 밖으로 나가면 되겠군요! 대신 복을 빌어드리지요! 아무렴요, 그 정도도 못 해드릴까요! 가면 서너개를 검은색의 자루안에 곱게 넣은 그는 창틀에 발을 걸치고는 익살맞게 웃어버린다.

복, 빌어드리지요! 하는 일마다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만!


#2
단답/🌆🎻👍

새파랗던 하늘이 보기좋은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간다. 늦을까 띄엄띄엄 켜지는 불빛에 단답벌레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색상과 보라색, 검은색으로 다시금 스며들어가는 풍경에 고개를 돌려 가던 길을 재촉한다. 도로의 색깔 보도블럭들이 더럽혀진 파스텔 톤을 드러내고 겨울이 다가오는 가을의 한기 섞인 바람이 그를 스친다. 저 멀리 거리에서 섞어들어오는 소리들이 단답벌레의 귓가에 익숙하게 술렁였다.

틀렸어. 미묘하게 어긋난 박자에 단답벌레의 미간이 좁혀진다. 여기서 조금 더 위로, 그리고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부드럽게 연결이 되어서.. 단답벌레가 속으로 불만스럽게 그의 노래를 고치는 사이 버스킹하던 사람의 곡이 끝나고 다음 사람의 곡이 시작되었다. 유쾌한 젬베의 소리에 맞춰 청아하게 퍼지는 소리는 플루트? 뜻밖의 악기에 돌아본 단답벌레는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젬베의 둔탁하고 변칙적인 박자에 맞춰 쌓이는 음과 그 중앙에서 유려하게 제 가락을 마음껏 뽐내는 첼로- 바이올린 가방을 쥐고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저곳에 끼고싶었다.

자신도 흥겹게 그 안에 들어가 그의 음악을 펼쳐보이고 싶었다. 허락을 받고 하는 버스킹이 아니었으니 안될 건 없지. 단답벌레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활을 움직였다. 매끄러우면서도 날카롭고 세련된 소리가 섞이며 그들의 음악에 한층 풍부하게 소리를 더했고 지나던 다른 사람들의 발소리, 박수소리와 환호소리들이 섞여 온전히 그들만의 연극을 펼치고 있었다. 마침내 음악이 자신을 뒤덮어 버렸다고 생각이 들도록 몰입하여 움직였던 손이 멈추었을 때에는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들에게 앙코르를 외치고 있었다.

그 짜릿했던 물아일체의 순간을 단답벌레는 되풀이하고 싶었기에 그가 먼저 활을 대었고 다시금 음악의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입가에 띈 미소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들의 저녁은 하나의 악보가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3
캘리칼리♟️⏱️🔫

체스말과 체스판의 흑백이 유독 뚜렷하게 남아 그림자를 부른다. 시계가 지루하게 째깍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러 곁에서 속삭이는 것 같았다. 체스판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지않다. 오히려 가지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무시한 채 두고 가기에는 아쉬운 놀이거리. 그런 체스판을 종이 한장보다 못하게 다룰 수 있는 캘리칼리는 정작 생각이 없어보였다.

검은 말과 흰 말이 번갈아가며 규칙에 딱 맞게 움직이고 그걸 조종하는 큰 손가락이 지루한 듯 툭, 흰 말의 나이트를 쳐낸다. 뒹굴어 흔들거리는 나이트를 가볍게 들어 바닥으로 휙 던진 캘리칼리의 입가에는 드디어 미소가 걸리고 히죽 입꼬리를 올려 비아냥거리며 놀리기 시작한다. 어쩐다, 곧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시겠는데? 그의 말에도 상대는 덤덤하게 대꾸조차 사양한 채 신중하게 흰 비숍을 움직여 칸을 옮긴다. 흘긋 말을 옮긴 후 누른 시계에 시간이 멈추고 캘리칼리는 끄응, 곤란한 표정으로 다시금 머리를 굴려 수를 쓴다. 결코 가볍지 않은 분위기와 다르게 뒤에서 웅성거리던 왁타버스의 멤버들은 대체 왜 수영장에 던져지는 내기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할 일인이지에 대해서 토론을 펼치기 시작했고 곧이어 캘리칼리가 물을 무서워하나? 라는 질문이 툭 튀어나오자마자 버럭 화를 내는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무서워하지 않지만 던져지는 건 싫다는 그의 말에 그러냐면서도 비죽이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못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왈칵 화가 난 캘리칼리가 체스판의 말을 급하게 움직였고 곧 체크메이트, 라는 왁굳형의 말에 짜증을 내며 뒤에서 말을 읊던 히키킹을 손가락질하며 투덜거린다. 자네 때문이네! 그러니 같이 가세나!! 그게 무슨 개소ㅡ

2m가 넘는 거구를 들어올려 수영장에 던져버리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지만 골탕 먹이거나 놀리는 것에는 누구보다 진심인 그들에게는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니. 덕분에 히키킹은 캘리칼리의 덩치에 깔려 수영장 바닥에서 물을 잔뜩 먹은 채 함께 선베드에 눕혀질 뿐이었다.


#4
뢴트 🌊🎇☢

어느새 차가워진 바다는 검은색을 일렁이며 낮과 다른 위엄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멀리서 차가운 빛을 드러내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만 아니었다면 조금은 더 낭만적일 수도 있겠지만. 뢴트게늄은 미간을 일그러뜨리고는 제가 했던 생각을 다시 수정했다. 뭔 낭만을 찾고 그래.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을 것을. 형이 옆에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도 낭만이 차고 넘치지, 음! 충신다웠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사이 바다가 밀려들어와 그의 구두를 차갑게 건드린다.

에잇 참, 투덜거리며 파도가 미는대로 두어걸음 물러선 뢴트게늄은 고개를 갸웃 흔들어 다시금 원자력 발전소로 시선을 옮겼다. 누가 특이한 닉네임을 지어놓은 사람 아니랄까봐 취향도 독특하네, 놀리는 듯한 말투에 그런 거 아니라며 버럭 화를 내고는 시선을 피한 그였으나 역시 신경은 쓰이는지 홀로 고독히 서있는 낡은 색채에 눈을 머문다. 한창 도수 낮은 술과 검붉게 타오르는 숯, 위로 먹음직스러운 향을 풍기며 유혹하는 바베큐와 테이블에 나열된 것들로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뢴트게늄은 다시 바다 앞에 섰다. 술취하고 바다에 들어가면 위험하다며 우르르 따라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자기는 안 취했다며 조금 달아오른 얼굴로 괜스레 틱틱거린 그는 시선을 검은색으로 옮겼다. 소름끼칠만큼 고요한 색. 수평선과 맞닿아있는 하늘도, 바다도 검은색으로 흐릿하게 하나가 되어있었다. 오묘한 기분에 파도소리에만 집중해 눈을 감은 뢴트게늄은 빙긋 웃으며 나른한 분위기에 웃었고 곧 감은 눈꺼풀 너머 환하게 비추어지는 빛에 호기심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연하다는 듯 넘겨진 작은 폭죽에 이건 오랜만이라며 불쑥 운을 떼었고 그의 말에 정말 오랜만이라는 사람과 처음이라며 설레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어느새 웅성거리며 파도와 하모니를 이루었다.

뭐 원자력발전소 앞의 바다건 뭐건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그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형이라는 것이겠지. 그 정도면 충분히 낭만이 넘친다. 그뿐이었다.


#5
이덕수 🎆🌠🌌

퍼벙 소리를 내며 아스러히 제 빛깔들을 있는 힘껏 뽐내며 사그라드는 불꽃에 이덕수는 느릿하게 시야에 그것들을 담았다. 흔적이라도 좋다고 고요하게 소리를 내지르고 사라지는 인공적인 화학물들의 빛이 어지러웠다. 이런 게 뭐가 좋다고.. 중얼거리며 내뱉는 습관적인 불만은 곁에 있던 아이들의 맑고 높은 웃음소리에 가려져 흩어진다. 검고 어두운 곳에서 일으키는 화학물의 조합에, 폭죽 그 조그마한 것에 그리 즐겁다고 목소리를 높이고는 얼굴 가득 즐거움을 그린듯 짓고있는 아이들의 표정에 불쑥 튀어나오려던 불만도 억눌러진다. 딱히 나쁘지는 않고만..흠흠. 헛기침하며 감상을 바꾸려는 찰나 폭죽이 끝났고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아이들은 부지런히 쓰레기들을 치웠다. 기특하기도 하고.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해주기라도 하듯 불꽃놀이가 끝나 어둑해진 하늘에서 새하얀 별똥별이 떨어진다.

저걸 보라며 재촉하여 간신히 발견하기는 하였으나 늦어 꽁무니만 본 것이 아쉽다며 또다른 건 없을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만개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항상 무어가 그리 말하고 싶어 쉼없이 조잘거리는지 사랑스러웠고 그들이 흐뭇했다. 그리 자라고 자라, 마침내 폭죽처럼 타올랐던 시기가 끝나고 나면 너희 역시 삶의 어느 부분에서 좌절하겠지. 그 시기에 다시금 밝게 비추는 별을 발견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인자하게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온전히 혜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그들의 주변이 차차 밝아져오고 손전등이라도 켰냐며 돌아보는 아이들의 시선 한가득 은하수가 펼쳐진다. 사람은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나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무력함과 경탄을 느낀다던데- 그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그대로 두며 조금씩 걸어와 근처에 앉은 아이들의 체온을 느끼며 함께 하늘로 시선을 고정했다. 새카만 하늘 위를 가득 뒤덮은 새하얗고 푸르며, 가끔 붉기도 한 하늘의 캔버스에서 그들의 기억될 순간을 보냈다.

#6
단답 🚀🌛👽

외계인을 믿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단답벌레의 표정은 뭔 헛소리를 하냐는 듯 일그러진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믿느냐 아니냐로 감성적인 이야기와 냉정한 현실적인 이야기가 오갔지만-단답벌레는 흘긋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열띈 토론을 경청했다. 흥미위주의 이야기와 실제로 NASA에서 숨기고 있다는 등 소문들을 겹쳐 상황극까지 알뜰하게 이어지려는 찰나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라는 질문이 맥락을 탁 끊어놓으며 등장한다. 그러게 왜 그런 주제가 나온거야? 호기심과 의아함들이 한데모여 처음 주제를 던진 사람에게 쏘아지고 당황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말을 고르던 사람은 단답벌레의 옷에 그려진 아기자기한 우주선을 보고 떠올랐다며 솔직하게 고백한다.

외계인의 주제에서 자신의 착장으로 바뀐 것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럴싸한 추리이자 그럴만한 생각의 흐름이었기에 바뀐 주제에도 사람들은 도란히 이야기를 이어나누었다. 우주선을 처음 만들고자 생각한 오만한 자는 누구일까, 그 주제를 용감하게 입밖으로 꺼낸 자는 누구이며 결국 그걸 실행하기로 한 또라이는 누구일까. 달에 도착하여 신만큼이나 숭배받았던 위성의 실체에 대해서 사람들은 실망했을까 아니면 더욱 경외심을 품었을까. 수많은 생각들이 퐁퐁 튀어나오며 말들을 나누는 사이 단답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달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밑도 없이 나온 질문에 단답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생각에 잠겼다. 그냥 단순히 위성, 이라고 답해도 되는 것을 오래도록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 왁타버스 사람들의 호기심을 누른 것은 그가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달은... 단답벌레가 불쑥 고개를 들어 기대의 침묵을 깬다. 가능성. 독특한 답변이었다. 희귀한 세글자의 답에 술렁거리며 그가 말한 것에 대해 추론하는걸 구경하며 단답은 자신의 답에 만족했다. 달은 그들의 말처럼 새하얀 신이자 제멋대로 소원을 빌고 감사를 표하고 원망도 하는 그저.. 하나의 위성일 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외계인이라는 전혀 다른 존재를 생각하게 해준 가능성이자 우주로 인간이 나아가는 가능성을 처음 보여주었을 뿐이다.

#7
뢴트게늄🎲🃏🍷

주사위가 굴러가고 카드게임의 패가 날렵하게 테이블 위로 스친다. 아슬아슬한 분위기와 다르게 감추어낸 속세 대신 과시하듯 드러낸 여유들이 판 위로 흐르는 가운데 뢴트게늄은 어련하시겠다며 조롱섞인 웃음을 참아냈다. 주문하신 와인입니다.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러운 단어로 와인을 설명하고 앉아있는 제 모습이 안 맞는 옷을 간신히 껴입은 듯 어색했다. 실제로도 꽉 끼는 정장이 불편하기 그지없었지만. 얼른 퇴근하고 싶은데-모든 직장인들의 꿈이자 소원인 칼퇴를 노리는 사이 싸움이 일어난다. 시끌벅적하게 니가 사기친 거 아니냐며 따지고 드는 노인장과 배째라는 듯 자신은 당당하다 주장하는 어린여인. 흔하게 볼수있는 조합에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의 퇴근조차도 판에 걸어 해보자고 자꾸 꼬시는 사장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손 부족한 것은 알지만 그게 굳이 내 손일 필요는 없잖아?

결국 하게 된 거는 절대 사장이 내민 조건 때문이 아니다. 한판만 놀아주면 퇴근에 일주일 유급휴가라는데 이걸 어떻게 무시한담. 게다가 지면 겨우 하루정도만 지옥같을 뿐인걸. 음음 남는 장사지. 라고 합리화를 하면서도 졌을 경우를 떠올리는 그의 낯빛은 어두웠다. VIP랍시고 온갖 행패를 또 얼마나 부리려나- 아니, 난 내기에 이겨서 그날 없을 예정인걸? 다시금 주사위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의 시선은 전과 다르게 빡집중을 한 상태였다. 짙은 녹색의 테이블 위로 주사위가 굴러가고 첫판은 그의 승리였다. 그의 주사위는 열셋, 사장은 아홉. 다음판은 카드였다. 룰조차도 단순한 정말 그냥 운뿐인 게임이었기에 그가 승낙한 것도 있지만.. 상대는 그런 도박쟁이들의 판을 벌려놓는 사장이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상하지 않지. 사장이 우선 뽑겠다며 먼저 고른 카드는 스페이드 K, 계열 상관없이 숫자가 높은 쪽이 승리이니 그의 승산은 사실상 없어보였다. 곤란해하는 사이 한번 승리했으니 무승부라는 생각에 성의없이 고른 카드가, 익숙했다. 조커카드. 불문율로 조커는 숫자가 없고 가장 높은 수로 취급하기로 했으니- 2승, 그의 승리였다. 그럼... 일주일 후에 봅시다 사장님! 우렁찬 퇴근인사와 함께 사라지는 그를 붙잡을 수 있는 건 없었다.

#8
새우튀김 🌕🌧☎️

아 제발.. 애원하듯 붙잡은 두 손에서는 벌써 며칠째 고생한 듯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마른 손이 있었다. 거칠어진 손으로 컴퓨터를 두드리던 그는 문득 고개를 들어 지긋하게 아파오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커피를 찾아 테이블을 휘젓는다. ? 빈컵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본 그가 급하게 고개를 돌렸으나 그곳에 있는 것은 이미 텅 비어버린 커피믹스 박스였다. 젠장, 오밤중에 내가 커피사러 나가는 게 말이 되냐고. 투덜거리며 실로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그의 실험복이 달밤의 서늘한 바람에 팔락였다.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않긴한데... 오늘까지 끝내야하는 프로젝트가 몇개더라, 중얼거리며 편의점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있는 커피는 모조리 사들고 나와 연구실로 돌아가던 중에도 그의 생각은 변함없이 일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렇게 완전히 그가 몰두하던 찰나 시야가 화악 밝아진다.

퀭했던 눈동자에 노란 보름달이 채워지고 새우튀김은 멍하니 흐릿한 하늘을 바라본다. 영 기분 안 좋은데, 이거 불안한데... 그의 걱정이 과한 것이 아니라고 토닥여주기라도 하듯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소나기가 내리친다. 저 빗속을 그냥 걷는다면 감기에 걸릴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건 새우튀김이 가장 바라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한것도 없는데! 아파서 쉬는 게 가장 억울한 사람 중 하나인 새우튀김이 눈돌려 찾은 장소는 공중전화 부스였다. 비록 발끝은 좀 젖겠지만 아예 홀딱 젖는 것보다는 낫다. 급히 들어간 공중전화 부스가 옛날 것처럼 붉었다는 것. 잠깐 커피만 사러 나왔기에 들고 나오지 않은 전화기의 울림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조금씩 마음에 들었다. 잠에서 깨고자 마시며 가려고 했던 따듯한 커피가 비가 내려 서늘해지며 차가워지는 온도에 대비해 열기를 전달했고 퍼석한 손이 열기에 온화해지는 것 같았다. 카페인들이 몸안의 피로들을 몰아낸다. 소나기는 가끔 바람에 밀려 온전히 노란 보름달 빛을 드러냈다가 숨기를 반복했고 드물게 붉은 공중전화 부스를 찾은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간만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9
하쿠 🎡🍭🎈

이것이 놀이공원!!!#^@%# 환하게 웃는 낯으로 안구부품에 담기는 풍경들을 모두 메모리로 집어넣는다. 사진으로만 놀이공원을 보았다는 말에 호들갑을 떨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소란을 피웠던 덕분에 오게 된 놀이공원은 사진보다 더 재미있었고 흥미진진했다. 갑작스럽게 끌려나온 새우튀김의 표정은 하쿠의 염려와는 다르게 밝아보였다. 하쿠가 웃고 기뻐한다면 그 역시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하쿠는 그저 새우튀김도 오랜만에 나오니 좋아하는 거라며 예측하고는 방긋 웃으며 손을 펼쳐보였다. 재미있습니다!!@&~^! 다른 기구도 타보고 싶습니다!!#&~^ 하쿠의 말에 다같이 몰려나온 사람들이 그렇냐며 대신 줄을 서주겠다고 자처하고 바이킹 등 놀이기구들을 예약해두었고 그녀가 웃음소리를 흩뿌리며 노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비록 바이킹에서 그녀가 떴다가 내려앉을 때 의자가 부서진 것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어버렸지만. 그녀가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기를 바랐기에 튼튼한 바디로 만든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쿠야, 이거 들어볼래? 새빨간 풍선이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 보아도 즐비하게 널려있는 풍선들-하늘로 가득 손을 뻗은 채 날아가고 싶어 안달이 난 듯 하느작거리는 풍선들. 그리고 그녀의 시선에 닿은 것은 색색의 풍선을 한가득 끌어모은 듯 빙글빙글 여러색채로 휘감겨있는 사탕이었다. 풍선으로부터 시선을 돌린 것을 알아차린 그가 함께 시선의 끝에 닿은 것을 확인하고는 머뭇거리며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나중에 꼭 미각 기능도 넣어주겠다고 약속하는 그를 지나쳐 걸어가는 하쿠의 뒷모습에서 고멤들이 튀어나와 그러게 왜 진작 안 만들어줘서 저 아이가 실망하게 만드냐며 타박을 놓았고 그게 쉬워보이면 직접 만들어보라는 반박이 이어지는 사이 사탕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몰래 숨어왔던 고멤들의 수에 딱 알맞게 떨어지는 사탕의 숫자들. 사탕을 먹는 사람들이 웃고있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전달되는 찌르르한 감정은 분명 잊혀지지 않을 행복이었다.


#10
부정🌧😂💫

그의 마음처럼 우울하게 비가 오는 날이었다. 가을비가 시작되어 끝도없이 내리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내리던 비에 그가 한껏 부정적인 생각을 끌어안은 채 심연으로 들어가려고 막 땅을 파던 그러한 때였다. 띵동, 문자 알림음에 행여 그가 그토록 바라는 합방이라도 있을까 급하게 찾은 폰에는 광고와 스팸만이 가득 쌓여있을 뿐인 스크린이 있었다.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러면 그렇지..라며 털썩 주저앉아 퀭한 눈으로 폰을 뒤집어놓았다. 형은 언제오려나.. 여행갔다고 했으니 3일동안은 휴뱅이겠지..?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빗줄기에 가려져 흐릿하게 뭉게질 뿐이었다. 에이.. 그래도 긍정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고 융터르 님이 말하셨으니까! 게다가 형도 내가 웃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셨고!

자리에서 일어나 체조라도 하며 기분전환을 할까 했던 그가 충전기의 줄에 걸려 나자빠지고 아린 무릎을 쓰다듬으며 끙끙거린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은 가벼운 타박상이었으나, 그를 다시금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에는 충분한 계기였다. 습관적일만큼 무섭도록 시무룩하게 가라앉아버리는 기분 속에서 부정형인간은 침대에 무기력하게 앉는다. 뭘 하든 나는 안될거야.. 이토록 생각도 부정적으로 되버리고 분위기도 음침한 내가 뭘 한다고 해서 잘 될리가 없잖아.. 중얼거리는 도중 그의 창가에 희미하게 빛이 일렁인다. 옆집에서 뭐 파티라도 하나.. 싶어 하다가 흠칫 그의 옆집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 그가 급하게 히익 소리를 내며 이불을 찾아 둘러덮는다. 나는 고작 이런 거에도 겁이나 먹고.. 다시금 시무룩하게 가라앉으려는 그를 자극한 것은 예상치 못하게 점점 밝아지는 창가와 그에 비추어지고 있는 자신의 방이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꽁꽁 둘러맸던 이불 사이에서 나와 고개를 내밀고 창틀에 머뭇거리며 손을 올린다. 그가 망설이다가 큰 용기를 내고 마침내 열었을 때에는, 그런 고민들 따위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는 하나의 별과 부스러기처럼 흩어진 별들을 수놓은 하늘이 있었다. 자신은 마치 작고 작은 빛일지라도 자신이 위안을 얻었듯 비슷한 다독임을 받을 별이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11
하쿠 🍤🍽👨‍🍳

미각 기능을 구현해낸 기념으로 뷔페를 가기로 했다. 과학팸끼리만 간다 고집을 피워 결국 타협을 본 것은 과학팸의 한 테이블과 음침하게 뒤에 즐비하게 있을 왁타버스 사람들이었다. 형은 기념비적인 날이니 재미있는 콘텐츠나 뽑을 겸 뷔페를 하루 대여해주었고 덕분에 하쿠는 자신이 먹는 감상을 거리낌없이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조르르 테이블에 앉아 하쿠가 모르게 테이블 멀리 바라보던 혜지가 서운한 표정으로 시무룩히 바라본다. 나도 하쿠가 좋아하는 거 봐줄 수 있는데..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주려던 히키킹의 손목을 꺾어버리며 씩씩하게 그러니 멀리서 기록용으로 남겨야겠다는 말을 한 혜지가 폰을 꺼내들었을 때 주방장이 다가온다.

오늘 하루 뷔페를 온전히 빌렸다고 하여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오나 했더니 이런 괴상한 조합이라.. 주방장은 돈을 주고도 못 볼 희귀한 사람들의 모습에 잠시 말을 잊고 머뭇거리며 당황해했다. 그러나 그는 프로, 곧 침착하게 드시고 싶은 메뉴나 따로 주문할 것이 있냐고 물었고 그 질문에 새우튀김도, 도파민 박사도 호기심 가득 띄운 눈으로 하쿠를 바라보며 무엇이 먹고싶냐 따스하게 물었다. 누가보아도 사랑받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만들어진 시기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미각이라는 감각,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 사랑받고 자아를 형성한 로봇이 가장 먼저 먹고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함께 따라왔던 왁파고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답변은-새우튀김입니다!!#^~!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듣기에는 감동스러운 말이었다. 울컥 올라오는 붉은기운으로 두눈을 비빈 새우튀김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주방장에게 가장 맛있고 가장 바삭한 새우튀김을 부탁했고 훈훈하고 몽글하게 올라오는 분위기에 암튼 감동적인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주방장이 상냥한 미소로 화답하며 그러겠다고 답변했다. 이어 나온 것을 바삭하게 먹으며, 하쿠는 환하게 웃는다. 맛있습니다!!#^# 충분한 감사인사이자 자신의 능력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12
소피아 🚫❄️🙁

이 세상에는 금지하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투덜거리는 음성이 공허하게 입김으로 흐려진다. 으음, 아무래도 잘못된 게 분명합니다. 생계를 위해서 도적질을 하는 사람은 정당성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텅빈 골목길에서 말들을 중얼거리던 소피아의 관심을 끌은 것은 새빨간 스프레이로 마구 그려져있는 욕설과 조롱거리들의 벽이었다. 빈민가의 허물어지고 벽돌조차도 몇개 빠져 무너지기 직전인, 바람막이조차도 되지 못하는 의미의 벽에 선연히 그려져있는 적의. 나가라는 단호한 말과 꺼지라는 거친말들이 그려져있는 벽에서 소피아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차피 널려있는 것이 붉은 스프레이였고 그걸 건드린다고 혼나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리고 소피아는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마치 빈민과 거지들에게 적선한다는 듯 그려져있는 돈그림에 붉은 원을 그리고, 마치 손을 뻗는 그들을 한심해하듯 대각선으로 그리는 금지표시까지. 완성하자마자 자신의 작품에 뿌듯해하며 소피아는 해맑게 웃는다. 이것 보십시오. 거지와 빈민이 출입금지인 구역이라면, 우리도 돈 많은 쪽의 출입을 금지하면 됩니다! 하하! 단순한 규칙입니다! 올라간 입꼬리로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센스가 대단했다 자화자찬하는 사이 눈송이가 툭, 소피아의 자루를 건드리며 녹아내린다. 아, 눈이 오고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말에도, 그의 말이 상기되어 있었다는 것은 올라간 입꼬리의 목소리 때문에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겨울입니다! 없는 사람들에게 서럽고 외로운 계절, 겨울이 왔다. 그러니 이번 시기에는 제가 활약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가진 자들이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제가 주는 겁니다. 뻔뻔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소피아는 조금씩 거세지는 눈발을 뚫으며 걸음을 옮겼다. 발자국도 정갈하게, 곧 흔적도 남지 않을만큼 날렵하게 움직이는 소피아의 자루는 밤이 될수록 두툼해져갔다.

#13
융터르 😎🕵️‍♂️💎

블루다이아몬드 도난사건. 추리소설에서 진부하게 사용되었을 소재에 카르나르는 지긋이 미간을 눌렀다. 애초에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다면 경비인원이나 더 늘려둘 것이지. 결국 사건사고가 발생하고서야 울며불며 저에게 찾아달라 매달리는 사람들이란.. 그럼에도 카르나르는 성격좋게 웃으며 그 의뢰를 수락했다. 탐정이라는 직업이 생각보다 만만한 것이 아니었고, 또 그는 하청업체였으니-실력도 인품도 훌륭한 자네가 좀 해달라며 본부장이 와 부탁한 것은 넘어가주자.

그가 사건현장에 들어가자마자 알아차린 경찰들이 순순히 길을 터주었고 발자국 하나없이 오직 다이아 하나만 쏙 가져간 도둑에 대해서 카르나르는 의문을 품었다. 다른 진귀한 것들도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블루다이아 하나만 가져갔다? 이상한 일이다. 도둑의 본질은 훔치는 자가 아닌가. 그가 가져가는 도중 다른 서너개의 보석을 훔쳤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을.. 그러던 도중 그의 눈에 띈 것은 아주 미세하게 반짝이는 큐빅이었다. 흘긋 뒤를 돌아 선글라스 너머로 경찰들과 형사들의 관심을 살핀 그는 확실하게 자신에게 아무도 시선을 주고있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서야 큐빅을 주워올린다. 그건.. 익숙한 것이었다. 이 두명이 여기를 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강렬한 빛에 닿아야만 오팔의 찬란함을 슬쩍 비추는 요상한 큐빅은 분명 비밀소녀의 것이었다. 일반적인 빛으로도 반짝이는 보석의 본질을 잊어버린 듯 변덕스럽게 구는 큐빅.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실력좋고 훌륭한 도둑.. 마지막으로 경보를 위해 설치된 수십개의 cctv조차도 먹통으로 만들 정도라면.. 비밀소녀가 마법을 썼을 것이다. 이유도 모르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들은 원한다면 가지는 자들이었으니. 텄군요. 비스듬히 올라간 입꼬리로 슬쩍 포기를 선언한 카르나르가 현장에서 이탈한다. 저는 더이상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무의식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러니.. 다른 실력좋은 탐정을 고용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카르나르조차도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겠다며 과학수사대를 부르려는 분주한 움직임을 뒤로 하고  카르나르는 사무실로 돌아간다.


#14
프리터/ 🎞☂️⏰️

날이 흐릿한 아침이었다. 분주하게 지하철에 올라 한적하기 짝이 없는 첫차를 타고 도착한 영화관은 음산하게 분위기를 가라앉히며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불 하나없이 어두컴컴하게 있는 영화관의 문을 자연스럽게 따고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프리터였다. 초롱초롱하게 맑은 눈으로 피곤을 떨치고 일어선 그는 익숙하게 불들을 하나둘 키며 걸음을 옮겼고 덕분에 그가 지난 자리는 밝게 손님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되었다. 오픈준비까지 야무지게 마친 후에서야 아침타임의 알바들이 오는 걸 보며 프리터는 방긋, 친숙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일일알바! 오게 된 프리터라고 합니다.

그의 정중한 첫인사에 기존의 알바들도 따듯하게 웃으며 맞이해주었고 어느새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에 호감을 샀다. 호의에는 호의로, 어느새 프리터의 손에는 팝콘통이 비어있는 시간이 없었다. 간식이 과하다며 머뭇거리고 거절해도 밥대신이라며 비싼 메뉴들을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는 먹는 것만 구겅하며 웃는 알바들 덕분에, 프리터 또한 더욱 더 열심히 근무하게 되었다. 슬슬 마감까지 다 짓고 내일은 못 보겠다며 아쉬워하던 알바들이 다음 알바에서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손을 흔들었고 다시 음산해진 영화관에서 프리터는 부지런히 마감을 지었다.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내고 들어왔을 때부터 켰던 불은 반대로 걸을 때마다 꺼진다. 흫흫흫.. 이 음산한 분위기는 언제봐도 적응이 안되는군요... 지릴 것 같습니다.. 오싹한 새벽공기가 프리터의 뺨을 건드리는 것 같아 그는 오소소 몸을 떨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내리고 있는 비. 빗줄기는 강하지 않았지만 그대로 맞고 가기에는 추운 날씨였다. 감기 걸리면.. 곤란한데 말입니다.. 흫흫.. 다음 알바까지 남은 시간이 8시간.. 그 사이에 잠을 자두고.. 약을 사놓으면.. 계획들을 생각하는 사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보라색 우산이었다. 알바들 중 한명이 분명 자기 손에 쥐어주었던 것..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합니다. 스바라시! 미소지으며 우산을 펼치고 다음 알바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그의 마음이 따듯한 온기에 물들어져가는 것 같았다.


#15
캘칼/🌊👑🧜‍♂️

새파랗다. 첫 감상은 그뿐이었다. 자신이 다스리게 될 해저와 심해의 크기에 비해서는 한없이 단조롭고 초라하기까지 한 감성평. 그리고 지루하게 지배를 할 자신의 서사에 대한 한심한 조롱이기도 했다. 애초에 육지의 것인 왕관을 비스듬하게 기울여 얹어놓고는 왕좌에 앉아 지느러미를 느릿하게 물결에 따라 흔들던 캘리칼리의 표정은 무료함에 잡아먹힌 듯한 얼굴이었다.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것에 대해서 자비롭게 굴었기에 처벌도 없었고, 인어와 어인들 또한 크게 정도를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물론 그의 지배에서 벗어나 아예 멀고도 먼 바다에서라면 또 모르는 일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바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육지에 비해 한없이 적은 인구수가 그의 불만이었지만.. 또 많다면 그건 그런대로 귀찮을테니 나름 만족감을 넣어두고는 있는 상태였다.

가끔-육지 것이 떨어져내려 소용돌이에 갇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캘리칼리는 소용돌이에서 인간을 끌어내 육지로 가는 파도를 불러올 뿐이었다. 그런 소일거리 외에는 딱히 할일이 없는 평화로운 바다였다. 가끔 기후를 조절하기 위해 불러오는 쓰나미와 해저에 깔린 대지의 움직임에 따라 물결을 이동해줄 뿐인 삶. 그럼 굳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태어난 자신의 존재는 뭐가 되는거지? 무엇을 위해서 이런 힘을 준걸까? 단순히 왕의 지위를 위해서? 그러나 다른 어인들과 인어들은 굳이 서로를 건드리지 않으며 싸우지않는다. 바다는 넓고 아득하게 다양하다. 싸우기보다는 회피하여 멀리 사라지는 것을 택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기에. 캘리칼리는 한숨을 푹 내쉬며 방울들을 보글보글 만들어낸다. 지루하고 또 지루하지만.. 캘리칼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썩 나쁘지는 않다. 필요하다면 옛날 옛적의 전설처럼 싸워줄 것이었고 원한다면 바다를 뒤엎어 육지를 쟁취할 수도 있겠지만... 캘리칼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구태여 분란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으리라. 그도 결국에는 선하게 태어난 어인이었으니. 그저 그런, 평화와 무료함에 가끔 심술을 부려 파도를 불러올 뿐인, 왕이었다.


#16
비킴/🌧️🐱💤

고양이는 나른함의 상징이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자신의 마음대로 소비하고 자신의 행동과 신념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리고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긴다. 그래서 비즈니스 킴은 고양이가 좋았다.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돌아올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생물이니까. 외로워하는 건 우아한 행동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고양이의 흰털을 치우며 궁시렁거렸다. 거기에서 뒹굴지말라니까.. 정말 천박하군! 우아한 고양이는 그런 행동은 하는 거 아니라며 핀잔을 주면서도 행여 자고있는 그의 고양이를 깨울까 낮춘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둥글게 말린 접착제를 굴리며 흰 털을 치우면서도 건드리지 않고자 애쓰는 그의 청소가 끝나고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은 그의 돌린 시선에는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새하얗게 가라앉은 고양이털들이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반쯤 올라오려던 찰나 털들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비라도 오려나, 싶었던 그의 심정을 예상한 듯 투두둑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올라갔던 털들이 가라앉으며 사뭇 한폭의 그림같이 푸근한 분위기가 생겨났고 자신의 길고 긴 백발에 엉성하게 붙어있는 털들을 쓸어내리며, 비즈니스 킴도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털은 치워도 또 생긴다. 그럴바에는 적당하게 스스로와 합의하는 것도 중요한 우아함의 덕목. 그러니.. 담요와 함께 파자마로 갈아입은 비즈니스 킴이 느릿하게 소파에 누워 눈을 감는다. 조금씩 거세지는 빗소리와 함께 저 멀리 아득하게 의식이 흐려진다. 좋은 오후였다. 따듯하고 푹신한 솜에 짓눌려 기분좋게 흐려지는 의식. 언제 왔는지 온기를 전하며 고르릉거리는 고양이를 무의식적으로 쓰다듬어주며 비즈니스 킴과 고양이 모두 흰색의 푸근한 둥지에서 낮잠을 청했다.


#17
혜지 🍀🎆🧸

기분 좋은 날이었다. 아침부터 지나가는 길에 화단에서 발견한 네잎클로버에 오늘은 행운의 날이겠다며 기분좋게 사진을 찍었다. 꺾어가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원래 보는 게 더 의미있는 거 아니겠어? 게다가 이래야 다른 사람도 발견했을 때 기분이 좋을거고~, 흥얼거리며 들어간 학교에서는 요란스럽게 평소처럼 삼삼오오 모여 시끄럽게 떠들고있었다. 익숙하게 학교를 마치고 즐겁게 친구들과 노는 것도 끝이 나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손에는 선물이라며 불쑥 안겨주었던 부드러운 곰인형을 끌어안고 집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이 집앞에는 왁타버스 사람들이 서있었다. 갑작스러운 얘기였으나 혜지는 언제나 그렇듯 웃으며 응했다. 그렇게 도착한 강가에서는 타닥, 무언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울렸다.

호기심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는 새빨간 색의 불꽃과 선연하게 개나리색을 비추는 노란색의 불꽃이 흔들리며 혜지의 시선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기분 좋은 모닥불 소리와 함께 익어가는 고기와 캠핑들까지. 혜지는 역시 오늘 운이 좋다고 느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모닥불의 빛에 혜지의 미소가 더욱 활짝 번지고 그들은 그들만의 작은 연회를 즐겼다. 미성년자인 혜지와 만두를 위해서 오렌지 주스와 복숭아 주스 등을 여러개 사온 배려들도, 고기라도 맘껏 먹으라며 달아오른 뺨으로도 연신 접시 위로 수북하기 쌓아주던 고기들도, 돌아가며 굽기로 하지않았냐고 따지면서도 쉬지않는 손과 자기는 그런약속을 한적이 없다 시치미를 떼는 소리들이 웅성였다. 부드러운 재질의 곰인형을 끌어안으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듣기좋은 백색소음 역할을 대신하였다.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혜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느새 잠든 아이들을 발견한 고멤들이 숙소에 그들을 들여놓는 것을 끝으로 어른들의 뒤풀이가 시작되었고 혜지는 역시 오늘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마음놓고 주말을 즐길 준비를 하였다.


#18
낸트/🐋🌌✨

고래ㅡ바다를 누비는 거대한 해양생물이자 또다른 바다의 지배자라고 불리우는 생물. 뢴트게늄은 녹색 눈동자에 그 거대한 존재감을 담아 느릿하게 깜빡였다. 검푸른 색의 벽지와 어둡게 만들어진 아쿠아리움이 군데군데 비추어진 샛노란 조명에 맞춰 일렁인다. 크고 화려한 기왓집을 일컬어 고래등같다는 표현을 썼었지. 그는 지금 그것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강렬하게 느꼈다. 감히, 고래라는 단어를 비유에 쓸 수 있을까. 이만큼 압도적인 감정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을까. 결코 작지않은 크기의 수족관 유리가 셋이 넘도록 큰 크기의 고래였다. 새카만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게,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은 고요. 오직 고요와 여유 뿐이었다. 이 좁디좁은 수족관 따위도 원한다면 떠날 수 있을듯이 여유로운 감정과 그럼에도 나가지 않을 생각인 고요함이 공존하며 일렁였다. 저도 모르게 수족관에 손을 대고, 자신의 덩치보다 훨씬 더 큰 눈을 바라보며 이마를 기댄다. 안개처럼 희뿌연 것 같다가도 반짝이는 빛들은 절대 조명의 것이 아니었다. 밤하늘의 별빛, 혹은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있는 듯한 색깔의 검은 고래눈. 드디어 천천히 눈꺼풀이 닫히고 다시 뜨여지는 영겁의 시간동안 오직 단둘, 고래와 자신밖에 없다고 느껴졌다. 우울하여, 그저 시간이 남아서 온 사람들 모두 숨을 죽이고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묵혀두었던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벼이 느껴진다. 이토록 무거운 존재 앞에서 그런 고민따위 사치라고.. 뢴트게늄은 느끼며 함께 눈을 감았다.




이미지출처: https://pin.it/bdDlm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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