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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썰 백업

[Maybe Punk!]


⚠게임-사이버펑크 2077 세계관을 기반으로 연성하였습니다.⚠
⚠과몰입금지⚠




캐릭터 설정 및 소개

뢴트게늄:
넷러너-즉 해커. 돈을 위하여 나이트시티로 들어왔으며 나름대로 적당한 수입을 벌며 그럭저럭 살고있다. 사근사근하며 친절한 응대와 완벽한 의뢰수행에 인기는 있는 편이지만 자신만의 신념이 있다. 리퍼닥도 오직 융터르를 제외하고는 가지않을만큼 은근 신뢰를 잘 따지는 인물. 그의 신용은 얻기가 생각보다 아주 까다롭다.

융터르:
리퍼닥-실력 좋은 외과의지만 본인이 원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아는 사람들만 자주 이용하는 리퍼닥이 되었다. 흔한 리퍼닥처럼 문신이나 타투 하나 없으며 오히려 정갈하고 차분한 분위기에 위화감까지 느끼는 사람이 있을 정도.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가끔 공짜 시술을 해줄 정도로 인망이 두터우며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신세를 지고있다.

비밀소녀:
테키-기술자. 손버릇이 상당히 좋지않아 여러 기업에서 러브콜이 많이 올만한 실력임에도 그녀 스스로 들어가기를 거부한 유명한 테키다. 물론 그렇다고 빈손으로 나오는 서운한 일은 하지 않았으니 염려말기를. 깔끔하고 뒤끝없는 기술에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도무지 잡혀지지 않는 신출귀물한 여인. 원한다면 그녀가 스스로 찾아올테니 그녀를 맞이할 대가를 준비해두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단답벌레:
픽서-중개인. 차가운 그의 겉모습에 두려워하지는 마세요. 그는 누구보다 정확하고 확실한 의뢰만을 가져와 당신에게 제안할 것입니다. 입이 무겁고 남의 비밀을 잘 말하지 않는 사람은 어딜가나 호의와 신뢰를 받듯, 그 역시도 훌륭한 사람들을 잘 알고있습니다. 등급별로 의뢰의 위험도와 보수를 명백하게 써놓고 정직한 장사를 하는 픽서들 중에서도 가장 솔직한 픽서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요란스레 울리는 싸이렌이 늦은밤 화려하게 도시를 밝히는 네온사인들 사이를 지나가며 간신히 든 옅은 잠을 깨웠고 사연많고 인연 복잡한 사람들은 눈을 찌푸리며 부스스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그 사연 많은 이들 중 하나인 뢴트게늄은 아직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 나이트시티를 더러워진 창문사이로 쏘아보며 백발이 되어버린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짜증난단 말이지. 이런 분위기는 영-.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는 조금 낡은 티를 흘긋 살핀 그는 소파로 기어가듯 걸어가 냅다 누워버렸다. 습관적으로 더듬어 찾은 리모컨으로 TV를 킨 그의 시야에 분홍빛이 얼핏 비추고 뢴트는 머리를 긁적여 새로 염색할 부분은 더 없는지를 찾았다. 백발로 매번 염색할 때마다 두피가 뜯겨나가는 기분이었지만, 적어도 이 시티에서 해야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색이어야 했다.


그래야 의뢰를 하나라도 더 받지.. 중얼거리며 익숙하게 테크웨어들을 하나둘씩 챙겨입어가는 손길이 조금 굼떴다. 파르르 떨리는 손끝을 못마땅하게 내려보던 그의 녹안이 일그러진다. 아무래도 저번 의뢰했을 때 공격당했던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과격한 행동은 하지 않는 거였는데! 이를 부득 갈았지만 이미 신경과열로 인해 욱씬거리는 온몸은 아직은 쉬어야한다고 소리지르는 것 같았다.

결국 리퍼닥에게 가야하나 중얼거리던 뢴트게늄은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에 마침내 인정했다. 일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시기라는 것을 인정하고서야 안정을 취하기 위해 소파에 비틀거리며 주저앉은 그의 옆방에서는 한창 파티중인지 늦은 밤이 지나도록 쿵쿵거리며 음악이 박자에 맞춰 나왔고 옆방에서는 신세타령인지 처량한 노래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환장하겠군. 담백한 감상평을 날리며 녹안을 내리눌러 감은 그가 달아오르는 체온을 낮추기 위해 얼음물을 욕조에 받아 들어간다. 기껏 갈아입은 셔츠가 젖어서 찝찝했지만 그런것 따위 어차피 1초, 아니 0.4초도 되지 않아서 말릴 수 있었으니 그다지 신경쓰지는 않았다. 뭐 여차하면 새로 구입해도 되는 일이었고-. 보수가 괜찮았으니까. 심드렁하게 욕조에 앉아 달아오르던 체온을 가라앉히며 몸 상태가 안정화되면 리퍼닥에게 가야겠다 중얼거린 뢴트게늄은 잠시 그 안에서 얼음이 다 녹도록, 그리하여 물이 다 넘치도록 새벽잠을 잤다.


"아예 죽어서 오시는 편이 더 무의식적으로 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니나다를까 오자마자 한심해하는 시선으로 타이르는 말은 매섭게 뢴트게늄을 후려팼다. 어물쩍 웃으며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며 변명을 하는 그를 어디 들어나보자는 식으로 눈썹을 까닥여 들은 카르나르의 손길은 능숙하게 그의 사이버네틱스를 확인하기 위해 선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기는 그저 충실하게 사이버시티의 일원답게 일했을 뿐이라는 뢴의 마지막 변명이 이어지고 치료 도중 신경계를 자극했을 때 자신의 몸이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술대 위로 눕자 카르나르가 수면제와 안정제를 들어올렸다. 점검을 위해 그의 신경계에 연결하자 욱씬거리며 아릿하게 아파오는 신경에 잠시 온몸을 크게 덜컹거린 것을 끝으로 뢴은 편안하게 점검에 응했다. 망가진 신경계와 예쁘게 달구어진 통각신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무겁게 내쉰 카르나르는 곧이어 그것을 식혀줄 냉각제와 억제제를 흘려보내며 끙끙거리던 기색이 점점 걷히고 고른 숨을 내쉬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한번 망가진 몸은 되돌아오기 쉽지 않다. 게다가 넷러너라면 더더욱.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지는 않아도 되는데 말입니다. 안쓰러워하는 듯 동정을 하는 듯 다독이는 손길이 다정하여 더욱 편안하게 쉬는 듯 뢴트게늄은 풀어진 표정으로 아예 웅얼거리까지 하며 수면상태를 취했다. 분명 잠은 자신의 집에서도 충분히 잤을 것이 분명함에도, 이상하게 이곳은 다른 넷러너나 자신의 몸 부속들을 노리는 강도단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이곳에서만 완전히 긴장이 풀리게 되었다. 점검과 치료가 끝나자 회복실에서 깨어난 뢴트게늄은 한결 편해진 몸상태를 여러번 주먹을 쥐어 까닥거리며 확인하고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섰다. 다쳤던 신경들은 가라앉았는지 수월하게 모든 것이 느껴졌다.


"얘, 뢴트야. 아직은 움직이지 말라던데?"


어느새 옆침대에서 들린 나긋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주저앉은 뢴트게늄은 어벙하게 여인의 별칭을 중얼거렸다. 비밀소녀..? 응? 자신을 불렀냐며 천연덕스럽게 되묻는 말에 순식간에 반가운 미소가 온 얼굴에 번진 그가 순순히 그녀의 말을 들으며 헤실거린다. 어쩐일로 왔어요? 저번에 그 사건이 좀 크게 일어났다고 한거는 해결한거에요? 발 뺐단다. 역시 이런 일에서는 날렵하시다니까요. 뭐 어디에서든 날렵하시고 신속하시지만.. 중얼거린 말끝이 시무룩하게 가라앉고 비밀소녀는 갸웃거리며 만지고 있던 기계를 내려놓았다. 금빛에 휘황찬란한 인조보석들이 아까웠지만 가짜는 가짜. 값이 나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색찬란하더라도 그녀에게는 돌덩이와 다름이 없었다. 요새는 돌도 모으는 사람이 있다던데. 생각을 수정하며 비밀소녀가 자신이 들고있는 것- 정확히 얘기하자면 카르나르가 뢴트를 돌보아주는 대가로 주었던 싸구려 팔부품이지만-을 내려놓으며 까닥 흐렸던 말끝을 물어올린다. 신속하시지만? 마저 말을 이어야 하지않겠니.

전 도망칠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꼴로 왔니? 걱정과 염려가 담긴 목소리에 울컥 올라온 눈물을 닦아내며 뢴트게늄은 방긋 웃었다. 아유, 멜스트롬 구획이었는걸요. 살아돌아온 것만해도 걔네는 다정하게 대해준거죠. 갱단들 중에서 안 포악한 놈 없다지만 그쪽은 완전히 도라이니까. 잘못 걸리면 온몸이 해체된 채 아직도 의식은 넷상이나 떠돌고 있을 겁니다. 입술을 삐쭉 내밀고는 투덜거리던 뢴트게늄은 어느새 대답이 없어지자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비밀소녀님..?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열다섯번 이름을 부르고, 속으로 300까지 착실하게 센 후에서야 간신히 가려진 침대 커튼을 슬쩍 들추어보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의 온기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회복실의 침대에 헛웃음을 한번 지은 뢴트게늄은 뒤이어 들어온 카르나르의 눈에 띄었다. 뢴트게늄 그 스스로가 자신은 더이상 환자가 아니라고 해도 리퍼닥의 시선으로써는 환자였다.


"....정말 죽고 싶으신건지 무의식적으로 묻고싶군요."


목소리 끝에서 살기까지 느껴지자마자 그대로 침대로 다이빙하듯 날아간 그에게 늦었는지 차분하게 의자까지 끌고와 근처에 앉은 카르나르는 그대로 잠들도록 끝없는 잔소리와 꾸중으로 도리어 걱정없이 편안하게 잠들도록 만들어주었다. 새벽도 밤도, 더이상은 낮도 없는 이 세상에서 잠이라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행동이었으나, 몇몇 낭만이 남아있는 이들만큼은 이런 루틴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이라도 있듯이 굴었다. 최소한,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고싶어하는 모습일수도 있겠지. 카르나르는 그들을 이해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항상 초조하게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망가진 몸을 고치고 고쳐 다시금 의뢰와 빗발치는 적의들, 총알들 앞에 스스럼없이 앞서 걸어가는 것조차도 마음같아서는 뜯어말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들을 인물도 아니었다.

애초에 산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일이겠지만. 카르나르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풀어진 자세로 자는 뢴트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완벽하게 낫지는 않았는지 끙끙거리며 손가락들을 꿈틀거리던 그를 위해 냉각제를 한번 더 갈아주며 카르나르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멀리 아득하게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소리, 디지털식 LP 플레이어에서 재즈 힙합이 흘러나오는 소리, 21세기의 골동품들, 그 사이로 회복실에서는 듣기 상당히 힘든 종이책을 넘기는 소리까지.

그도 한때는 이름과 별칭만 흘려도 다 돌아볼만큼 화려한 전적을 가진 사람이었다. 몇번이나 조르고 조르며 들려달라는 뢴트게늄과 비밀소녀, 그리고 단답벌레에게는 끝까지 밝혀주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부끄러운 과거이기도 했으니. 그는 정부와 기업들, 그리고 용병들 사이의 전쟁과 싸움을 중재시키는 COP이었다. 경찰. 조롱거리로 소비되는 수준인 지금에 와서는 밝히기에는 애매한 그의 위치였지만. 가라앉은 BADGE라는 별칭이 더 익숙했던 그였다. 카르나르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면 언성높여 싸우고있던 SOLO들이 분을 가라앉히며 자리에 앉곤했으니. 물론 그의 뒤에 있는 권력 탓일수도 있겠지만. 같은 COP이라고 그와 같은 실적을 내는 것은 아니었으니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당시에는 최고의 중재자로 그를 인식했었다. 폭력 하나없이 그들을 앉히고는 조곤조곤 합의를 해주던 카르나르의 그때가 바로 전성기였을지도 모르겠다며 아련하게 회상한 융터르의 시야가 어두운 회복실에 닿는다.


지금은 젊을때처럼 화려하고 화끈하게 놀고싶지는 않은지라. 과도한 관심은 돈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그만큼 화와 시기, 질투들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한때는 그것도 흥이 나고 즐거운 일이었지만, 카르나르는 문득 오래전 같은 일을 하며 지냈던 동료 한명을 떠올렸다. 덩치도 크고, 성격도 좋던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종종 감당할 수 없는 사고들을 몰고 오곤 했다. 능글맞게 웃어버리며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뻔뻔하게 발을 쏙 빼고 빠지던 탓에 잡아야 하는 사람에서 술친구까지 되기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사고를 치고나서는 꼭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 당당하게 웃어넘기던 모습까지 나름 좋았는데. 카르나르는 다 읽은 잡지를 들어올려 원래의 서고에 집어넣으러 일어섰다. 회복실을 나와 불을 끄고 문까지 조용히 닫은 카르나르의 발자국마다, 그때의 공중계단을 걸었던 시기가 떠오르고 있었다.

오래된 친구인 그가 떠오를만큼 나름대로 열심히는 살았나보군,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카르나르는 걸음을 옮겨 다시 되돌아왔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뢴트게늄의 곁에 다시 앉은 그는 희끗한 분홍색 머리카락을 발견하고는 쿡 웃어버렸다. 염색약 정도는 서비스로 제공해줄 수 있다. 나른하게 퍼지는 분위기에 카르나르 또한 자리에 앉아 간만의 휴식을 취했다.


갱단 중에서 멜스트롬이 가장 유명한 이유는 그들의 포악함과 위험도가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밀소녀는 새파란 눈동자를 도륵 굴려 그들의 한심하고 간절한 짓거리를 쏘아보았다. 멋대로 데려왔거나, 아니면 협박을 해서 데려왔을 것이 뻔한 넷러너들이 두려워하는 시선으로 그들의 아지트로 들어온다. 딱 보아도 강제로 시키는 듯 윽박지르는 목소리들이 마스크를 넘어 들려오고 비밀소녀는 그들이 하는 짓거리나 궁금하여 철근 사이 묘하게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냉각기능이 있는 테크웨어 하나 주지도 않고 기껏 자비를 베풀어주는 양 얼음물 욕조만을 끌고와서는 이것저것 다 시키는 목소리가 참 당당해서 비밀소녀는 경멸하는 시선이었다.

자신들이 요구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뭐 멋대로 끊어버리겠다는 협박까지 알뜰하게 하고는 넷러너들이 의식을 잃는다. 정확히는 넷상으로 접속하게 된 것이겠지만. 도중 EMP라도 당했는지 덜컹거린 넷러너의 입밖으로 흘러나오는 피, 그리고 그대로 끊어지는 생체신호에 망설임없이 들어 시체더미로 휙 던지는 것을 봤을 때에는, 그녀의 눈에 적의와 분노가 어른거렸다. 뢴트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대우했곘지, 싶었던 분노였다. 과격한 방식이었는지 끌고왔던 넷러너들이 순간적으로 동시에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섰고 상당히 과열되었는지 뜨거워진 체온에 얼음이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그만, 이쯤 보았으면 되었다.


"흐응, 이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니?"


다정한 듯 물어오는 목소리에 멜스트롬 갱단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주춤 물러섰고 그와 동시에 들어올린 총구는 똑바로 비밀소녀를 향했다. 그런 과격한 것을 바로 들이밀다니, 차가워라-. 너스레를 떨면서도 청안에서는 일말의 자비조차도 없었다. 저런 방식으로 똑같이 대우했겠지?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알고 소중히 아끼고 있는 사람들을 건드리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멜스트롬 전부를 해제해버릴수는 없을지언정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들을 건들기에는 충분한 분풀이였다.

으음, 그 아이는 아까워보이는걸. 내가 가져가도 되겠니? 친절하게 물어보듯 말하고는 손으로는 순식간에 들고있던 총들을 해체시켜버리는 것, 쏘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라고 느껴질만큼 빠르고 신속한 움직임과 짐작할수도 없을만큼 보이지 않는 손,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장식해버리는 폭발까지 멜스트롬 갱단원들이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화려한 색체들 사이에서 도리어 눈에 띄는 담백한 오렌지빛 머리카락, 그리고 청안과 머리를 질끈 묶어 올린 붉은리본까지, 완벽하게 '그녀'였다.


"비..비밀소녀. 멜스트롬은.. 그대와 관련이 없었지 않았나!!"


날카롭게 지적해오는 목소리에 비밀소녀는 응, 그랬지. 착실하게 답변을 주며 좌르르 그녀의 손길을 탄 부품들을 늘어놓고는 비싼것들을 골라 검은자루에 담고있었다. 갱단원들의 정당한 항의에도 비밀소녀는 흐응, 콧노래를 부르며 고개만 까닥거릴 뿐이었다. 갱단원들의 시끄러운 항의에 비밀소녀는 짜증을 내며 눈을 한번 찌푸릴 뿐이었다. 이 시티에서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면 온몸이 해체된 후에도 어디에서 떠돌아다닐지 모르는 부품 쪼가리가 된다는 것을 잘 아는 갱단원들의 입이 한번에 다물어지고 그제서야 그녀는 원인이 된 일을 중얼거려주었다. 뢴트게늄, 기억력이 좋은 갱단원이 눈썹을 까닥거리며 마스크 너머로 저번의 그.. 녀석? 이라며 아는척을 했고 비밀소녀는 좋은 철로 만들어진 렌치를 들어올려 대신 끄덕여주었다.

그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경고에 갱단원들이 벙찐 표정을 짓고 그녀는 왔을 때만큼이나 기묘하게 철근들과 아지트들 사이의 복잡한 짐들, 부품들 사이로 기척을 감추었다. 적어도 저 짐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이제 없다는 판단을 내리며 갱단원은 그녀의 경고를 가슴에 새겨넣었다. 다음부터는 그 녀석과는 거래를 안하던가 해야지... 아예 빈털터리로 남아 보스에게 버려지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보스도 그녀를 잘 알고있겠지만 자비는 없는 분이었으니.


비밀소녀가 대신 복수를 해줬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는 뢴트가 회복실에서 눈을 뜨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슬쩍 잠들어있는 카르나르의 눈치를 본다. 잡지들에 파묻혀 마찬가지로 잠들어있는 그를 수차례 확인하고서야 후다닥 사라지는 그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융터르는 눈을 뜬다. 이렇게라도 안 한다면, 또 미안해하며 마음의 짐을 담아두겠지. 카르나르는 그를 처음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질 나쁜 갱단에게 붙잡혀 멋대로 개조당하고 실험당해 낡고 깨진 욕조에 담겨져있던 상태였다. 그들이 붙들어놓은 크롬들 덕분에 끝없이 넷상에서 떠돌던 의식을 꺼내주고 그를 인간다운 모습으로 되돌려준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뭐 그런 의미에서 나름 기특하기는 했다. 무너지지도 않고 정신을 붙들어매고 착실하게 은혜를 갚으러 오곤 했으니. 다만 단점은.. 사람을 너무 믿고 좋아해주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겠지. 카르나르는 그의 발걸음이 도시로 떠나는 것을 들으며 빙긋 입가에 호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그를 믿으니까, 다시 망가질지언정 되돌아와 줄 것을 알고있었으니까. 나머지는 그가 다 잘 알아서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이 시티에서 사람을 좋아하는 존재는 세상 그 어느 귀한 부품보다도 더욱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임을, 카르나르는 잘 알고있었다.


단답벌레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요란스러워진 현관을 흘긋 시선을 돌려 바라보았다. 계산적인 시선이 조금 부드러워진 것은 백발로 등장해 활짝 웃으며 올라오고 있는 뢴트게늄을 발견하고서였다. 일은 잘 해결했냐는 단답의 물음이 날아오자 너스레를 떨며 살아서 왔으니 된 거 아니냐는 물음으로 답변을 내놓은 그에게 단답벌레는 눈을 찌푸린다. 대가는 분명 적지 않은 금액이었음에도- 그들이 거짓말을 했군. 머릿속에서 그들에 대한 정보와 취할 이득들을 정리하며 단답벌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들은 단답벌레에게서 픽서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앞으로 어려울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쉬는 동안에 좋은 일은 생기지 않았냐 천연덕스럽게 물어오는 말에 단답벌레는 그를 위해 빼놓았던 일과 서류들을 찾아 가장 낮고, 간단한 임무 서너개를 내밀었다. 보수가 짜다며 투덜거리는 입과 달리 눈은 신중하게 무게와 위험도를 가늠했고 단답벌레는 새삼 그가 이 시티의 일원임을 실감했다. 무턱대고 보수가 좋다고 달려들다가는 죽기 십상이지. 그런 의미에서 뢴트는 나름대로 좋은 거래자였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곳까지만 행동하고 그 이상은 신중을 기해 걸음을 옮기던 사람이었으니까.

카르나르에게 미리 연락이 와서 이번주, 아니 어쩌면 한달정도는 가벼운 일들만 맡게 되리라는 사실은 안 알려줘도 되겠다고 생각한 단답벌레는 그럼 다녀오겠다며 바쁘게 내려가는 그를 창밖으로 넘어보며 늦은 인사를 까닥, 건네었다. 누군가는 픽서를 보고 관계만 잘 형성하면 되는 쉬운 직업이 아니냐 조롱거리를 담곤 했지만 모르는 일이었다. 그만큼 진중하고 차분하게 카리스마를 품어야하는지, 그리고 냉정하게 사람의 관계성을 계산적으로 생각해야하는지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 말이다. 단답벌레는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사람들을 잘 알고있었다. 지금 자신의 등뒤로 기척도 없이 다가오고 있는 비밀소녀처럼.


"....결과?"


짧게 묻는 말에 제대로 했다며 상냥하게 웃는 낯으로 대답한 비밀소녀에게 단답벌레는 망설임없이 보수를 이체해주었다. 일부러 멜스트롬에게 해를 입히는 의뢰를 찾아준 것도 그의 배려임을, 그녀도 잘 알고있었다. 자, 또다시 내가 할일은 뭐가 있겠니? 픽서에게 당연하게 물어지는 질문에 적당한 것을 골라 내밀고, 그렇게 비밀소녀도 시티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요란스럽고 화려하지만 어딘가 공허한 시티들 사이에서 그렇게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붙들고있는것은 누가 될지, 단답벌레는 의자에 앉아 나른하게 눈을 감으며 마스크 너머로 새하얀 숨을 내쉬었다. 슬슬 그도 일할 시간이었다. 지긋지긋하게도 살아있는 한 이곳에서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사치가 될테니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찾아내고, 지키는 것 또한 자신 외에는 없는 건조한 세계에서 단답벌레는 나름의 소중한 것을 떠올리며 또다시 서류들과 칩들을 늘어놓으며 툭, 그것들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변하지 않을 영원한 빛을 쫓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어렸을 때의 동경을, 또다른 이는 다른 사람의 꿈을 위하여 주는 삶을 이어나가는 사이에서도 인간이란 결국 인연을 만들어가는 존재이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카르나르가 찬란하게 타올랐던 과거를 떠올리며 적막한 회복실에서 망가진 이들을 돌보아주는 것도, 단답벌레가 싸늘한 시선으로 물고오는 일거리들을 계산하고 있는 것도, 뢴트게늄이 자신의 몸을 담보로 넷상에 뛰어드는 것도, 비밀소녀가 값진것들 사이를 뒤지며 춤을 추듯 우아하게 움직이는 것도. 모두 그들 각자의 정상을 바라보기 위함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마지막 쯤에는 생각날 인연들임도. 끝내 져버리지 못할 얼굴들이 될거라는 것도.


이미지출처: https://pin.it/7Kyo0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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