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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썰 백업/단편

Wellerman

W.범고래


 
*실제 wellerman 노래는 해적과 상관없는 고래잡이 배에 대한 내용임
*과몰입주의




해적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당신이 망설임없이 해군이라고 답한다면 만화 원피스를 열심히 본 독자다. 아니라면, 대충 봤거나 어쨌건 슬쩍 한번쯤은 본 사람이다. 만약 당신이 해일이나 강풍이라고 말한다면 생각을 조금쯤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적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누구라고 답해야겠는가? 뭐, 해적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이 배에 한번이라도 올랐던 사람이라고 한다면 단번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고래. 거대하고도 심해를 지배하는 바다의 진정한 주인. 그들이야말로 바로 해적과 해군, 바다에 오른 모든 존재들의 위협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특히나 난폭하게 배를 부서뜨리거나, 부딪혀오는 녀석들이야말로 키를 망가뜨리고 배를 포류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간악한 놈들이라고 볼수있다. 그들의 잔혹함은 해적이건 해군이건을 가리지 않아서, 지금 이 꼬라지가 되었다-라고 설명을 마무리지을 수 있겠다.
 
 
그러니까, 지금 뢴트게늄, 그가 짠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배임에도 불구하고 이리 애처롭게 구석지에 앉아있는 이유는 그 뒤에 야무지게 한자리씩 차지하고 해군들 탓이었다. 하필 해적모임이었기에 함께 모여든 히키킹과 해루석의 선원들도 있는 것도 한몫을 차지했지만.

 
 
 
"그쪽 선장은 안마신다나?"
 
 
 
아무리 좋게 쳐줘도 해군보다는 해적이 더 어울릴 것이 확실한 캘리칼리의 시원스러운 목소리에 선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맞장구를 친다. 그러게요, 선장은 럼 안 마실겁니까? 이제 곧 이것도 다 떨어질텐데요. 아는 놈이 그걸 다 퍼주고 앉아있냐고 외치고싶은 마음이 해일처럼 몰려왔으나, 그는 신중하게 인내심을 끌어모아 입을 다물었다. 참자, 참자. 참는자에게는 복이 오나니. 바다신이시여, 부디 저놈의 입을 닥치게하소서.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를 기도를 읊조리고 있는 뢴트게늄을 두고, 캘리칼리는 융터르와 함께 럼을 기울였다. 향긋한 사탕수수의 향이 알싸하게 풍기고, 적당한 취기가 열기와 함께 올라온다. 거기에 바닷바람까지 시원스럽게 피부를 쓸고가니, 그야말로 낙원이라고 부를만한 행복이었다. 다만 흠이라면, 그들은 해군이고, 그들이 있는 곳은 해적선이라는 점이었다.
 
 
 
일주일 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그들도 어엿한 군함이 있었다. 매끈하고 단단하게 햇빛들을 반사시키는 훌륭하고도 우람한 군함이, 지금쯤이면 잘 알지도 못하는 바다에서 파편으로 동동 떠다니고 있으면 다행이겠다 싶겠지만. 그렇다면 그들의 훌륭하고 멋진 군함이 왜 한낱 나무조각으로 변해버렸냐하는 문제가 남게 되었다. 따지고 들어가자면 너무나도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으라면 융터르는 자신있게 캘리칼리의 쓰레기같은 운전실력을 꼽을 것이었고 캘리칼리는 뻔뻔스레 고래라고 답할 것이었다. 물론 오답은 없다. 원래 사고라는 것은 한가지의 원인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까. 우연과 인연, 그리고 작디작은 계기로 인해 폭발하는 것이 바로 사고다.
 
 
 
"그때, 내가 작살을 들고 그 넓다란 것을 찍어버렸는데에~"
 
 
 
지금 캘리칼리가 한풀이인지, 무용담인지를 떠들고있는 이야기가 바로 그 사고에 대한 이야기였다. 폭풍도, 그들을 따라 귀찮게 얽히던 돌고래조차도 없는 고요한 바다위에서 융터르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고, 서둘러 갑판위로 나왔을때에는 이미 군함이 암초에 한번 부딪힌 이후였다.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은채 날카롭게 솟아있는 덕분이었다. 한바탕 바닥과 열렬한 춤을 추고 난 이후 간신히 비틀거리며 일어섰고, 덕분에 생긴 구멍을 수리하라 목청높여 지시한 이후로 키를 잡았을 때를 회상한 융터르의 낯빛이 조금 창백해졌다.
 
 
 
'그 바다를 지날 때에는 제사를 지내는 편이 좋을텐데'
 
'제사라니요, 그건 무의식적으로 샤머니즘에 바탕되어 그릇된 믿음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본래 바다라는 것은 자연의 종류 중 하나로 생명이나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아아악 그만! 하지마, 하지마!'
 
 
 
그때 차라리 무의식적으로 제사라는 것을 믿어봐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융터르는 잠시 배에 오르기 전을 회상하며 거대하게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수면위로 뛰어오른 고래를 바라보았다. 고래들이 종종 수면위로 올라와 매끄러운 곡선을 뽐내며 제 몸을 던지는 것은 보았지만 그게 군함만큼이나 큰 고래에도 해당하는지는 처음 알았다.
 
 
 
이건 또 기록적인 지식이군요, 나중에 살아나간다면 이런 걸로 책을 하나 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융터르의 위로, 방향을 잘못잡은 고래의 몸이 그대로 군함 한가운데에 착지한다. 아니, 착지한다는 표현은 조금 더 가벼운 것에 해당할 이야기다, 철로 덧대고 용접한 부분들을 나무파편보다 못하게 만드는 움직임이라면 착지, 라는 사뿐한 단어보다는 충돌, 혹은 내리찍는다, 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다위로 뿔뿔이 떨어져내렸고 우연인지 아니면 그나마 남은 행운들을 끌어모은 것인지 다친 선원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제각기 가장 알맞는 크기의 나무판자를 붙들고 숨을 몰아쉬며 그들의 우두머리인 융터르를 처연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하죠, 카르나르 상사님.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죠, 캘리칼리 중사님. 하하, 모르겠는데! 이 답없는 가여운 해군들을 구원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일주일동안 추적하던 해적선이었다.
 
 
 
"선장드을~, 저기 뭐 떠돌아다니는데요, 물고기들 같기도하고 해군들같기도 하고 주워서 잡아먹을까요."
 
 
"해군처럼 생긴 물고기가 어딨어, 나와봐. 아레? 내 눈이 잘못되었나. 진짜 해군이네."
 
 
"이상한 소리 좀 하지마십시오, 이제 저희랑 동맹맺기 싫으시다고 그런식으로 거짓말을 하시면... 해군이네요. (그렇지?) 진짜 해군이네."
 
 
"자네들 눈이 삐었스무니까? 어떻게 해군이 머저리도 아니고 멀쩡한 군함 납두고 바다에 왜 떠있겠스무...해군이네.(내말맞잖아)"
 
 
 
거기서 바보같이 뭐하냐며 피식 웃고는 저들끼리 낄낄거리고 갈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해적들이 그렇듯, 해적과 해군들 사이에는 큰 원한이 없었다. 그냥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까라고 해서 까는 해군들과 그냥 거지같은 시대에 태어나 자유를 갈망해 바다로 뛰어나간 해적들일 뿐이었다. 그들이 내려준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갑판에서 꼴사납게 떨어진 체면을 좀 줍고있을 무렵, 선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분홍색의 눈에 띄는 머리칼을 흩날리며 손을 내밀었다. 해적들의 우두머리가 하는 특정한 머리장식이 찰랑거렸고, 융터르는 그가 내민 손을 기꺼이 잡아 몸을 일으켰다.
 
 
때마침 그들은 해루석이 이끄는 해적무리와 동맹을 하네마네에 대한 논의를 하던 중이었고, 세명의 선장들 중 한명인 히키킹 역시 배에 올라있는 상태였다. 해적들이 수십명도 넘는 이 상황에 던져진 것이 불행이라고 할수 있지만, 융터르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를테면 지금 여기있는 이들은 악명이 높지 않다는 점과 나쁜놈들만 약탈하는 더나쁜 놈이라는 점을 높이사며 긍정회로를 돌리는 사이, 선장들은 자기들끼리의 회의에 들어갔다.
 
 
지금 이 배의 선장인 뢴트게늄은 은근슬쩍 스리슬쩍 자꾸만 확답을 피해내며 어떻게서든 상황을 무마하려던 찰나였다. 그러니 그가 해군을 반긴 것도 나름대로 이해는 되는 상황이었다. 살려준 대가로 자신들을 쫓지않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하고서야, 지금의 평화로운 모습이 보이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제공하는 차와 고급스러운 해초요리들을 입에 넣으며 하하호호 보기힘든 장면을 보이던 그들은 이내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이 배, 조금 흔들리는 것 같지 않으십-"

 
 
"고래다!! 선장! 고래에요!!"
 
 
 
선원의 우렁찬 안내가 조금 더 일렀으면 좋았을텐데, 융터르는 한 다섯시간 전쯤이 생각나는 그림자를 초연하게 바라보았다. 솟아오른 등 위로 보이는 붉은천의 작살, 그놈이었다. 캘리칼리 역시 알아보았는지 흥분된 목소리로 급하게 해적선의 검과 총을 잡았고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야겠다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래봤자 두꺼운 고래의 가죽이 습기먹은 화승총의 화약에 뚫리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고래의 분노를 사는데에는 충분했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다시한번 뛰어든 고래가 퍼뜨린 파도에 무지개가 아스러히 띄워올라오고, 뢴트게늄은 다 얏된 상황이라며 우울한 표정으로 최후를 기다릴 뿐이었다. 해루석이 멍하니 바다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그의 뒷목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정말 고래의 몸뚱이에 깔려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래서 해군을 태우면 한달은 재수가 없다던데 효과 확실하네!!"
 
 
"그 모든 원인을 해군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며, 또 원인이 정확하지 않은 미신에 근거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와중에도 그의 말을 수정하고 있는 융터르를 보며 좀 질렸다는 표정을 지은 그들을 건진 것은 오랫동안 연락이 없어 드디어 온 지원함대였다. 조각나버린 나무판자 하나에 여럿이 매달려 허우적거리는 진풍경을 선글라스 너머로 비추어진다. 높다란 군함의 갑판 위에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있었던 이덕수의 새하얀 군복을 발견한 캘리칼리가 히죽 웃으며 바닷물에 젖은 손을 흔들며 아는척을 했고, 이내 해병이니 해적이니 구분없이 일단 모조리 끌어올린 할아바이의 표정이 묘했다. 이건 또 무슨 광경이다냐, 내가 진짜 살면서 못볼꼴 볼꼴 어지간한 것들 다 덕분에 본다야. 욕인지 칭찬인지 헷갈리는 말을 멋대로 칭찬으로 받아들인 캘리칼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맙다는 인사는 되었다고 답을 해주었고, 속에서 열불이 나 뒷목을 잡고 넘어지려는 이덕수를 받아준 곽춘식은 킥킥거릴 뿐이었다. 뭐 어쨌거나 재미있는 말버릇이었으니.
 
 
 
"그래서 뭐, 이대로 얘네들 이송하면 되는거냐?"
 
 
 
이덕수 할아바이의 말에 그제서야 숨을 돌리고 있던 뢴트게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성을 낸다. 너무하네! 나도 얘네들 안죽이고, 럼이랑 차랑, 고기랑 온갖 거 다 제공해주면서 안락하게 쉬어가게 해줬는데 바로 체포한다는거야? 너무하잖아요! 끝에 가서야 자신이 말하고 있는 대상이 소장급의 높은 해군이라는 것과 나이가 든 연장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공손해지는 말투에 이덕수는 코웃음을 한번 치며 해적은 그저 해적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물론 말은 그렇게하면서도 본부가 아닌 평화지역으로 키를 돌리는 것도 잊지않았다.
 
 
 
해루석과 뢴트게늄, 그리고 함께 해적모임을 하던 히키킹 역시 바닷물을 먹은 사람, 지금 향하는 지역이 본부가 아니라 자유평화지역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항의를 멈추었다. 물론 그렇다고 궁시렁거리며 도와준 은혜를 이딴식으로 갚는다는 불만을 멈춘것은 아니었지만. 곧 자신들도 구조함대가 올테니 좀만 신세지겠다 선한 미소로 통보하는 해루석에게 이덕수는 한숨과 함께 차와 육포들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차가웠던 바다에서 나와 따듯하게 우린 홍차와 녹차, 제각기 취향에 맞는 차를 골라 마시며 육포를 뜯어먹는 모습에는 해적과 해병의 구분이 없었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덕수는 나른한 눈을 감았다.
 
 
 
"지원선만 오면 그대로 돌아갈거무니다! 이딴 회의, 진짜 두고두고 놀려먹어주겠스무니다. 진짜 누가 회의장소를 이따위로 잡은건지 아주 경을 쳐야할 것이무니다!!"
 
 
 
씩씩거리며 히키킹의 울분가득한 목소리와 니가 잡았지 않았냐 따지는 뢴트게늄의 억울한 목소리, 그리고 다 필요없으니 그래서 동맹을 하는거냐고 묻는 끈질긴 해루석의 질문과 그들의 영 통하지 않는 일방통행적 대화에 웃음을 터뜨리는 곽춘식의 소리들이 평화롭게 바다위로 흐뜨러졌다. 붉은 노을이 바다위로 부서지고 있는 어느 오후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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