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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썰 백업/단편

Stunt

W.범고래




자, 이곳입니다. 흫흫흫. 특유의 웃음소리를 흘리며 프리터가 가리킨 곳은 다름아닌 세트장이었다. 요란스럽게 지시를 내리고 버럭거리며 윽박을 지르는 감독도, 그 곁에서 잘좀해보라며 키득거리는 배우와 그런 배우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대신 사과를 하는 어느 매니저도 있는 번잡스러운 환경에 캘리칼리의 한쪽 눈이 씰룩, 올라간다.

 


나에게 어울리는 일일알바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이건 뭐... 배우라도 되라는건가? 나쁘지는 않다만, 내가 원래 좀 외모가 받쳐주기는 하거든. 그래도 이런꼴로 데뷔를 하고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아직 알바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을 시작조차도 하지 못했건만, 프리터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아닙니다, 배우역할은 따로 저기 계시지요, 저희가 할 일은 <일일 스턴트맨>입니다, 흫흫. 프리터의 설명에 캘리칼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스턴트매앤? 결국 또 움직이란 소리잖아, 아, 귀찮게. 투덜거리며 내뱉는 불평불만들에 프리터가 멋쩍게 웃으며 조심스럽게 캘리칼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 그렇게 의욕이 안나신다면, 속삭여주는 금액에 뚱하게 죽어있던 파란 눈동자가 번쩍 빛난다. 그돈이면, 그돈이면!! 할수있는게 아주 많아지지! 그걸 왜 지금 알려주고 그러나~, 하마터면 서운하게 도망칠 뻔했잖아? 뻔뻔스럽게 웃은 그는 어느새 감독과 스태프들 사이에서 스턴트의 의상을 받아와있었다. 도리어 프리터에게 멍하니 서서 뭐하냐는 타박까지 놓고 사라지는 것을 보며 프리터는 생긋 눈을 휘어 웃어보인다. 그럼그렇지, 역시 캘리칼리님도 하시면 한다는 분이군요! 무언가 오해를 한 듯 했지만.

 
 
 
 
와이어와 세트장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줄들을 지나치며 캘리칼리는 삐뚜룸한 자세로 스태프의 설명을 듣는다. 줄에서 줄을 타고, 반쯤은 거의 날아다니면서 너무 비현실적이어서도 안된다라. 그래서 CG처리도 어렵고 너무 티가 나면 시청할 때 위화감을 느끼니 다소 현실적인 움직임을 원한다는 오더에 캘리칼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니, 이걸 왜 못해?"
 
 
 
도리어 이걸 돈주고 스턴트맨을 쓰냐는 물음에 스태프의 얼굴이 잠시 붉어졌다가 가라앉는다. 그쪽만 가능하다는 지적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이 까탈스러운 남자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몰라 이를 악문 스태프와 그 사이에 프리터가 급하게 끼어들며 두 손을 들어올렸다. 아, 스태프상, 고생많으십니다, 제게! 알려주시면 제가 잘 전달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흫흫.
 
 
아직도 중얼거리며 대체 왜 안되는거지? 라며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캘리칼리를 한번 쏘아보았던 스태프는 역시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눈앞의 이 수상쩍지만 성실하기로는 이름날린 프리터가 더 낫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34번 씬에서는 왼쪽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씬인데 아래에 대형쿠션과 충격완화장치가 있으니 안심하고 뛰어내려도 된다고 전달해주세요, #34번을 찍고 #27번을 찍을건데 이 씬에서는~. 설명이 이어나가는 가운데 프리터는 말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의깊게 경청했고, 그가 등장하고 퇴장할 씬마다 형광펜을 긋는등 아주 세심하게 부연설명까지 적어주었다. 그렇게 완성된 대본을 캘리칼리에게 전달하자마자, 캘리칼리는 뾰로통한 자세로 앉아 뒤에서 준비중인 장치들이 굳이 필요하냐, 다치지 않을건데 왜 오버를 해서 더 부담스럽게 만드냐 등 투덜거렸으나 이내 대본을 읽어내려가는 눈은 진지했다.
 
 
 
얼핏 보였던 신중한 모습들과 합방 때, 아주 가끔씩 보이던 서늘한 감각이 드러난 것은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겨우 허리에 장비하나를 착용하고서는 그대로 건물과 외벽세트장, 벽들을 간단하게 넘어가는 장면들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발끝부터 허리까지 균일하게 힘을 싣고 공중에서 돌아 착지하는 모습까지 전부 한편의 예술체조를 보는 듯했다. 달려야할 때는 어떻던가, 마치 눈앞의 장애물들을 가볍게 파쿠르로 넘어가고 맨땅을 달리듯이 수월하게 넘어가는 장면들은 지켜보던 다른 스턴트맨들도 신기해하며 바라보게 만들었다. 합방 때 가끔 보이던 엄청난 피지컬을 이미 알고있던 프리터는 설명하지 않은 부분까지 읽어주셨다며 뿌듯해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감독들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라고 하셨죠."
 
 
 
결국 총감독관까지 다가오자, 캘리칼리는 마시던 물병을 살짝 힘주어 구기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런데? 서로 눈치를 보던 감독들의 입밖으로 나온 것은, 정식으로 자신들의 영화에 모든 스턴트 액션들을 찍어주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그 말에 한쪽 눈썹을 들어올린 캘리칼리는 이내 생각은 해보겠다며 심드렁하게 대꾸했고, 감독들의 타깃은 그를 지나쳐 그를 데리고 온 프리터를 향했다. 그의 손 한가득 과자와 갖가지 뇌물들을 쥐어준채로, 허둥지둥 원위치로 복귀하는 감독들의 뒤를, 프리터는 당황스러워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잘됐는데 뭐. 먹고있으라고, 곧 끝내고 올테니."
 
 
 
되돌려줘야한다며 뻘뻘거리는 프리터의 손에서 작은 조각케이크를 가져간 캘리칼리가 다시 현장에 복귀하자, 다시금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예전 모험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떠오르는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셔츠와 검은 정장의 스턴트 복장까지 입은상태에서 걸어둔 장치와 선, 끈들이 더욱 돋보이도록 했다. 정확히 힘을 주어야 하는 부분에서 주고, 보기 좋은 위치와 포지션까지 잡아주던 그가 매달려있던 와이어에서 가뿐하게 내려왔을 때, 감독들이 몰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한번 생각해달라 애걸하는 감독들과 스태프들을 무심한 표정으로 외면하던 캘리칼리의 눈이, 움찔 흔들린다.
 
 
촬영장 너머로 소란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당찬 소녀, 독고혜지 덕분이었다. 촬영중이니 들어오면 안된다고 격렬하게 말리는 스태프들을 특유의 성질로 물리친 혜지가 눈을 팍 찌푸리며 캘리칼리에게 손을 펼친다.
 
 
 
"아 진짜 말한마디만 전하고 간다니까요!!"
 
 
 
바락 성을 내 자기 몸에 손을 대고 말리던 스태프를 물리친 혜지는 그가 잡았던 잠바의 주름을 피며 짜증을 냈다. 아니 내가 왜 이런곳까지 와서 에이 진짜, 제비만 안 뽑혔어도!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난 탓일까, 캘리칼리의 눈은 한가득 의문으로 떠올랐다. 벌어진 입밖으로 툭, 소녀의 이름이 튀어나오고 그 음성에 여전히 못마땅함을 숨기지 않는 혜지의 눈꼬리가 잔뜩 올라가는 것도 덤이었다.
 
 
 
"혜지..?"
 
"혜지님 아니십니까, 흫흫흫. 이거 반갑군요!!"
 
 
 
캘리칼리뿐만 아니라, 프리터도 있다는 것에 기분이 조금 풀어진 것인지 아니면 일이 줄어서 좋아진 것인지는 몰라도 혜지의 잔뜩 올라가던 눈꼬리가, 스르륵 가라앉는다. 비록 궁시렁거리는 말은 멈추지 않았지만.
 
 
 
"아, 진짜... 알려주기 싫었는데 기회는 공평하게 하라고 해서 말씀드리는 거에요. 진짜 형만 아니었어도...."
 
 
 
형, 단어 하나에 눈이 번쩍 뜨인 캘리칼리가 활짝 웃는다. 기습합방이었다. 시간되는 사람들만 모이라고 했지만 원래 우리같은 사람들이야 시간을 만들어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게다가 촬영을 하며 어느정도 몸도 풀었겠다, 완벽한 합방이 될 것 같았다. 벌써부터 기대된다며 히죽 웃는 캘리칼리였다. 이번에는 무스메에 반드시 뽑힐거라며 투지를 불태우는 프리터와, 진짜진짜 알려주기 싫었는데, 라며 투덜거리던 혜지의 뒷모습을 향해 감독은 그저 조용히 일급은 이력서에 기재되어 있는 계좌에 넣겠다며 시무룩해할 뿐이었다.
 
 
괜찮은 일일알바였다. 비록 목표였던 캘리칼리의 모험은 기습합방으로 인해 날아갔지만, 모험은 언제든 할수있는 것 아니겠는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캘리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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