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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썰 백업/단편

상상을 꿈으로, 드리밍 샵입니다.

W.범고래
 
 
*언제나 그렇듯 주인장의 망상썰입니다
*늘 늦고 주기도 불규칙한 썰.. 좋아해주셔서 늘 압도적 감사..
*혜지의 독설을 보고 싶어서 썼습니다. 정신이 번쩍 드네요
*언제나 그렇듯 뭘쓰고 싶었는지 까먹었습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보여지는 새하얀 광경에 혜지는 고개를 기울인다. 바닥부터 하늘까지 온통.. 우유니 사막이었나, 사진으로만 봤던 그곳같은 공간이었다. 다만 떠올린 사진과 다른 점은, 수면 위로 자신의 모습이 비추어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지만. 이건 100% 꿈인게 확실한데... 얼핏 보면 붉은 것 같기도 하면서 다시 보면 노란빛이 노는 괴이한 문을 눈앞에 두고 혜지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신기한 문인데... 망설임은 잠시였고 호기심과 용기가 넘치는 혜지가, 그 문을 결국 활짝 열어젖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와....!!!"



열자마자 보이는 광대한 풍경에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혜지에게서 감탄이 흘러나온다. 사뭇 백화점과 비슷해보이면서도 다시 고르자면, 흔히 오타쿠들이 말하는 판타지의 상점같아보이기도 했다. 검은색의 직원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인간같지 않은 모습으로도 친절하게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고객을 향해 할수있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광경에 흥분한 혜지가 주먹을 꽉 움켜잡는다.


이런 곳을 나 빼고 다 알고있었단 말이지! 벌써 단골도 있는지 단골이니 해달라는 식상한 멘트도 들으며 걸음을 옮기는 혜지였다. 바닥이 얼마나 반짝반짝하게 닦여있었는지 거울만큼 환히 비추어지는 바닥도 시간을 들여 세심하게 구경하고, 대리석의 오묘한 빛깔과 함께 자수정으로 장식된 크리스탈도,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빼곡하게 덮인 천장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는 그녀에게 다가온 것은 검은 정장을 입고 명찰을 단 어느 분홍색 머리카락의 남자였다. 고른 치열을 자랑하며 방긋 웃고있는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과 함께 쫑긋 솟아올라와 있는 뿔이 그 남자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차리게 도와주었지만, 혜지는 깨끗하게 다가온 기척을 무시하고는 마저 백화점의 구조물과 장식품에 시선을 돌렸다. 사람이 있는데 뭐 어쩌라고, 라는 식이었다.
 
 
이제 막 대리석 똑같아보이던 새하얀 석재기둥들이 사실은 제각기 전부 다른 문양이 새겨져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고 있는 혜지에게, 더는 못 기다리겠는지 직원이 조심스레 입을 벌린다.
 
 
 
"어서오세요, 손님. 꿈과 희망을 파는 백화점, 드리밍Dreaming입니다. .....저어..저, 소, 손님...? 도와드릴 것이 있을까요..?"
 
"아 좀 조용히 해봐요, 나 구경하잖아."
 
"네..네엡.."
 
 
 
소심하게 물었다가 바로 짜지는 모습에 만족하며 성에 찰 때까지 원하는대로 백화점 구경을 눈으로 마친 혜지가 고개를 돌려 아직도 시무룩하게 주눅들어있는 직원을 부른다. 저기요, 이거 파는거에요? 나 가져도 되죠? 그녀의 높은 종소리같은 음성에 잔뜩 처져있던 남성이 고개를 들어 습관적인 영업미소를 띄운다. 네, 그럼요, 고객님. 이 백화점에 있는 것은 직원을 제외하고 전부, 모두 판매하고 있습니다. 남성의 안내에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위아래로 훑어 뢴트게늄, 이라고 선명하게 쓰여있는 이름표를 확인한 혜지가 맘에 들었던 예쁜 드림캐쳐를 바라본다.
 
 
 
백색에 분홍색이 오묘하게 들어가있는, 벚꽃같은 색상에 포인트로 금빛 장식들이 우아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붙어있다. 심지어 어느 새의 깃털인지 정말 생전 처음보는 깃털까지 하나하나 전부 마음을 빼앗긴 혜지는 방긋 웃으며 번쩍 드림캐쳐를 들어올려 불빛에 비추어보았다. 진짜 마음에 드는데! 어차피 꿈이니까 나 이거 그냥 가져가도 되죠? 마저 구경할게요~. 그대로 뒤로 돌아 1층의 스노우볼 코너로 돌아가려는 것을 막은 것은 허겁지겁 달려와 급하게 막은 직원, 뢴트게늄이었다.
 
 
 
"에, 에헤이, 손님! 손님, 여기가 꿈인건 맞지만 엄연히 장사 중인 곳이라구요~.
돈을 내셔야 가져가실 수 있으십니다!"
 
"안내고 그냥 가져가면 뭐 사라져요? 아니면 이거 구입하면 현실에도 생기나?"
 
 
 
제 앞을 막아선 것이 심히 거슬린 혜지가 눈을 찡그리고는 따진다. 꿈이라 돈도 없는데 어디서 돈을 구하라고요? 게다가 이게 뭐 가치가 높으면 얼마나 높다고! 아니면 아저씨가 사줘도 되잖아요! 아저씨라는 말에 엄청난 데미지를 받은 듯 얼굴을 찌푸린 직원이 함께 성을 낸다.
 
 
 
"난 아저씨 아니거든!! 인간나이로 따지자면 이제 이십대 중반이거든?!"
 
"어쩌라고요! 액면가는 아저씨인데! 수염도 지저분하게 나가지고는 차라리 깎고오던가 하지, 시커멓게 썬글라스나 쓰고, 음침해가지고는!! 어른이 되서 학생한테 뭐 하나 사주기가 그렇게 싫어서 쪼잔하게 나오시는거에요?"
 
"액면가? 액면가아~? 너 말 다했어?"
 
"너? 언제는 고객이니 손님이니 하더니 이제 나한테 너라고 하는거에요? 이봐요! 여기 매니저 없어요? 이 사람이 날 협박하려고 해요!!"
 
"야, 내가 언제!! 아니거든!? 내가 언제 협박했어!!"
 
"지금 이렇게 큰 성인남성이!! 어? 연약한 여학생한테 윽박지르고 화를 내는데 이게 협박이 아니면 뭐에요! 여기는 매니저가 없나!? 이봐요, 아저씨들!! 매니저 좀 불러와주세요!! 구경만하고 있지말고!!"
 
"내가 매니저거든!!?"
 
 
 
마지막 뢴트게늄의 말을 워낙에 우렁찼던 탓인지 말이 끝나고서는, 침묵만이 남아 어색하게 시선들을 받아야했다. 와중에 그건 또 부끄러운지 화악 달아오른 얼굴로, 그는 으르렁거리며 혜지를 쏘아보았다. 아까 그 말이 많던 백화점이 한순간에 싸늘해지니 같이 민망해진 혜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그렇다고 말하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런대... 
 
 
별일이라고 하는 말에 더 기가막혀 뒷목을 잡고 그대로 엎어지려는 것을 심호흡으로 넘긴 뢴트게늄이 곧 몇번의 갈무리가 있고서야, 다시금 상냥하고 인조적인 직원용미소를 띄울 수 있었다. 여기 처음 오셨군요, 그렇죠? 맞다고 하라는 듯 재촉해 묻는 음성에 눈을 찡그린채로 답을 하지 않자, 뢴트 또한 구태여 다시 캐묻지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는 상상과 망상을 꿈으로 만들어주는 백화점, 드리밍입니다. 여기서 구입한 물건이 현실에서도 있냐고 물으셨죠? 바란다면 그런 상품도 안내해드릴수는 있지만,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서 뭐.. 손님같은 분께는 추천드리지 않는 물품입니다. 여기서 값은 당신의 상상력이나, 수명으로 거래가 되며 기분좋은 꿈이나 악몽을 팔아넘길수도 있죠, 아까 손님께서 집어올리신 상품은 50000D로 일생동안, 악몽과 가위로부터 해방되는 제품입니다. 평생을!! 악몽에도 시달리지 않고 가위에도 눌리지 않는거죠! 나름 합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웠던 친구와 노는 꿈, 들판에서 자유롭게 달리거나 동물이 되어 날아보는 꿈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만능 꿈상점, 그것이 바로 저희 드리밍 백화점입니다! 화폐단위는 Dream이라고 백화점에서 자체제작한 단위를 쓰며 그냥 D, 라고 줄여부르고 있습니다. 1D가 평범한 사람 한명이 하루에 하는 상상이라고 볼 수 있죠, 구체적으로는..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림 한장당 1D, 소설을 쓰거나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3천자 정도를 1D라고 칩니다.
 
 
마치 이미 준비라도 된 듯 주르륵 흘러나오는 안내내용에 혜지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곧 고개를 들어올려 긴 설명을 간단하게 한마디로 줄였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망상 잘하는 찐따들이 더 좋은 곳이네요?"
 
 
 
찌..찐따, 적나라한 단어선택에 충격받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뢴트게늄이 미처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전 혜지가 미간을 좁히며 꺼림직한 시선으로 그를 경계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수고객이라는 건 컨셉잘하는 찐따나, 집밖으로 안나가고 망상하는 히키코모리나, 애니나 그런거 보는 오타쿠.. 같은 사람들이라는 거고.. 당신은 그런 고객들을 상대하는 이 백화점의 매니저니까.. 점점 시선이 짜게 식어가는 것을 느낀 뢴트게늄이 다시금 바락 성을 내며 말을 끊어냈다.
 
 
 
"상상!! 상상도 된다구요! 그 뭐냐 해리포터 작가도 우수고객 중 한명이거든요!! 스타워즈랑 각종 엄청 유명한 영화, 드라마 작가들도 저희 우수고객이세요! 그리고..저...는... 물론.. 고객님이 말씀하신 쪽에 속..하기는 하지만!!"
 
 
 
뒷말은 붙이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측은한 감정과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시선으로 두어걸음 물러난 혜지에게 더 이상의 설명을 포기한 뢴트는 한숨과 함께 다시금 깔끔하게 흐트러진 복장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구입하실 건가요? 그의 물음에 흐응- 호기심과 함께 들어올린 드림캐쳐를 바라보던 혜지의 눈이 그것의 색깔과 비슷하게 일렁거린다.
 
 
자주색에 가까운 눈동자가 또렷하게 드림캐쳐를 담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혜지는 그것을 내려놓았다. 무엇이든 대가없는 거래라는 것은 없었다. 더욱이 '평생'이라는 시간동안이라니, 혜지의 입꼬리가 피식 올라간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수였다.
 
 
결국 살아가는 시간동안이라는 말은, 일찍 죽여버릴수도 있다는 의미도 되었으니까. 잠시 말을 고른 혜지가 여전히 방실거리는 미소로 그녀의 뒤에서 대기하는 뢴트게늄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소 묵직한 질문이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냐는, 아주 원초적이고도 진리를 꿰뚫는 질문. 그 질문에 줄곧 빙긋거리던 뢴트게늄의 미소가 한층 더 사악해보였다. 짐작하셨지 않나요? 혜지는 신중하게 답도, 반응도 하지 않았고 그저 그를 바라보며 인내심있게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악마죠."
 
 
 
판타지 세계나, 아까 그가 언급했었듯 망상놀이나 컨셉질같은 말이 아니었다. 그는 확실하게, 인간이 아니니까. 사람은 그냥 사람이구나 싶은데 사람인가? 싶은 것은 대부분 사람이 아니라는 옛말이 있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꼬리를 살랑이며 히죽 웃고있는 존재가 악마라고, 사람을 잡아먹고 영혼을 탐한다는-
 
 
 
"영혼은 왜 탐해요, 그런 거 가져가서 뭐하라고... 저, 종만 다를뿐 평범합니다. 평범하게 컨셉질 좋아하고 제일 즐겨보는 취미는 요새 웹소설 하나에 푹 빠졌거든요. 먼치킨물 좋아하세요? 고객님이 만약 저랑 취향이 비슷하시다면 좋아하실겁니다. 무협지에 회귀, 그리고 먼치킨을 살짝쿵 섞은 소설인데 화산귀-"
 
"아뇨, 아뇨. 됐어요."
 
 
 
어쩐지 시선이 경멸쪽으로 바뀐 것 같았지만, 두려움보다는 나으리라고 생각하며 뢴트게늄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느새 백화점은 닫을 시간이 되었는지 형형색색의 스테인글라스들 너머로 보라색의 석양이 지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방문한 고객들은 아쉬움을 보이며 머뭇거렸고, 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큰 상자들을 치우고, 판매된 상품들의 빈자리를 파악하며 바쁘게 노트에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각자 할일을 하느라 바쁜 사이 유독 둘만 고요히 있는 것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드림캐쳐, 사실건가요?"
 
"....아뇨!"
 
 
 
고민은 짧았고, 혜지는 아까보다 더 당찬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부정했다. 뜻밖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뢴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괜찮은 금액이었고, 합당한 가격이었는데.. 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평생을 악몽을 안 꾸는거에요, 매번 찝찝해하며 일어날 일도 없고 언제나 아침은 상쾌할 겁니다. 그럼에도 싫으신가요? 다시 한번 구매의사를 물어보는 뢴트의 질문에 혜지의 대답은 아까보다 더 빨랐다.
 
 
네, 싫어요. 단호한 거절에 뢴트는 아쉬워하며 손가락을 튕겼고, 가벼운 손짓에 드림캐쳐는 순식간에 그의 손안으로 되돌아와있었다. 뭐, 고객님의 선택이니까요. 다만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의 질문에 혜지의 눈이 반짝거린다. 생기있고, 누구보다 또렷하게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야 당연히 꿈도 내거니까 그렇죠!!"
 
 
 
이유는 그녀답게 예측불허의 말이었지만. 꿈도 내것이니 당연히 가지겠다는 당당한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지 않았다. 악몽을 꾸고 찝찝해하는 것도 내 마음이고 아침에 찜찜하게 일어났다가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더 상쾌해진 마음으로 잊어버리는 것도 내 삶이니까! 혜지의 올곧은 말에 뢴트도 더는 묻지 않고 그저 그렇냐며 웃어넘겼다.
 
 
그럼, 재밌었어요!! 발랄하게 인사를 남기고는 빠르게 출구로 뛰어가는 것도 곧 밝아올 아침에 만날 친구들을 위한 마음일지 궁금해하며 뢴트는 여전히 정중하게, 그녀를 배웅했다. 다시오시길 기다리겠습니다, 고객님. 잊지마십시오, 당신의 상상을 꿈으로 만들어주는 드리밍 백화점입니다. 언제나 힘들고 지칠 때, 저희는 곁에 있겠습니다.
 
 
 
"....음.. 기분나쁜 꿈이었어."
 
 
 
눈에 따갑게 비쳐오는 햇살과 함께 청명한 분홍색 눈동자를 뜬다. 경쾌하게 지저귀는 참새 소리와 익숙한 맷비둘기 소리, 그리고 이제는 여름이 되어 제법 더운 바람이 불어오는 창문을 바라보며 혜지는 벌떡 일어나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한다. 그녀는 자신의 생애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굳세게 부딪히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도망치는 것은 모양새도 안좋고! 그렇기에 그녀는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러 오늘도 밖으로 달려나갔다.


+)TMI: 악마는 상상을 못한다는 설정이라 대신 다른 사람의 상상을 감상하기 위해 화폐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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