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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썰 백업/단편

To The Sky

W.범고래


*스팀펑크 썰
*과몰입금지
*스팀펑크 옛날에 썼던거랑 같은 설정임

 


찌르륵거리며 우는 새소리와 함께 경쾌한 아침이 희뿌연 창으로 올라온다. 저절로 뻑뻑해진 눈꺼풀을 깜빡거리던 뢴트게늄은 곧 요란한 경적소리와 함께 흐릿해진 하늘을 노려보았다. 또 아침이 밝아버린 모양이었다. 야작을 하느라 엎드린 채로 잠들었던 덕분인지 서늘한 한기와 함께 눈앞에 완결나지 못한 기계장치들이 즐비하게 늘어져있다. 허리를 피며 고개를 드니 우드득거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척추가 팝핀을 연주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아카데미의 흔한 아침풍경과 비슷하기는 했다.
 
 
 
여전히 흐릿한 시야를 좀 깨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자신과 비슷한 자세로 드러누워 잠들어있는 친구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 와중에도 본인은 귀하신 몸이랍시고 가장 비싼 담요를 두르고 엎어져있는 비즈니스 킴과 참 자유분방한 자세로 어떻게 안 쓰러지고 있지 싶은 자세로 자고 있는 히키킹, 그리고 고상하게 자고 있는 해루석까지. 훈훈한 광경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하나의 프로젝트를 달리고 마무리 짓기 위해서 고난도 역경도 함께 해쳐나가는 청춘의 이야기를 싫어할 사람은 없으리라, 뢴트게늄은 빙긋 입꼬리를 당기며 그들의 담요를 모조리 빼앗아들었다. 인생은 원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 일어나세요 이것들아, 해떴어. 우렁찬 그의 목소리와 함께 몸을 고이 감싸주던 온기를 빼앗긴 덕분인지 혼비백산한 얼굴로 주섬주섬 일어서는 친구들을 보며 뢴트게늄은 첫 입학당시를 떠올린다. 그때에는 이렇게 친근하게 굴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하이테크 아카데미,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위용넘치던 이름이었나. 처음 그곳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을 때에는, 왕립 측에서 비행선을 독점했을 때부터였다. 날때부터 하늘을 날기위해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그는 하늘을 사랑했고, 귀에 얼얼하게 스치는 바람소리를 사랑했다. 그런 그것을 고작 그들의 땅따먹기 놀이인 전쟁에 쓰겠다니 그럴수는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늘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했고, 온전히 새들과 평화의 공간이어야 했음에도 그 불변의 규칙을 왕립측이 깨고자 한다는 사실에 참을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막을 힘은 없었고 연합국에 들어가 싸우자니 그것도 싫었지만. 결국 그가 택한 방법이 하이테크 아카데미였다.
 
 
 
뭐 학부생이라면 비행선을 어느정도 허가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몰랐고 반쯤은, 사실이긴 했다. 학부생이 되어 끝장나는 비행을 보여주겠다는 욕심 반, 그리고 나머지 반은, 노동자 조합 출신이라며 입학원서조차도 보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낸 면접관에 대한 반감이었다. 노동자 조합 출신들은 사납고, 게다가 군수조합이라면 더더욱 안된다고 못박고는 색안경을 끼고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면접관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라면 수월하게 해낼 수 있겠지만, 뢴트게늄은 자신의 덩치와 면접관의 비실한 체격을 흘겨보고는 그렇냐며 능글맞게 웃을 뿐이었다. 진짜 콱 죽여버릴수도 없구 말이야.
 
 
 
"에이, 그러지 마시구 거기 추천서나 한번 봐요. 저 되게 귀한 인재입니다요? W의 추천서잖아요, 자격증도 세계에서 단 일곱명밖에 안 가진다는 공중전투 기술 1급이고. 이거면 그쪽 아카데미에서 발벗고 뛰어나와서 모셔가야하는 거 아니겠어요?"
 
 
 
다소 비굴한 태도에서 오만한 태도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말하다보니, 정말 꽤 자신이 우위에 서있다는 것을 느낀 그였다. 전쟁준비를 하고 있고, 거기에 왕립국에서 세운 아카데미에 공중전투 기술사 1급이 들어온다? 이건 왕립국의 호재였다. 확실히, 쳐다도 보지 않았던 원서를 W의 이름과 함께 자격증을 들먹이니 면접관의 어깨가 움찔거린다. 그럴리가, 노동자 조합 애들은 무식해서 자격증 같은 거 없을텐데.. 출신에 대해서 참으로 민감하신 분이시네~. 뢴트게늄은 히죽 웃으며 또렷하게 쓰여있는 추천서와 자격증을 팔랑였다. 하지만 댁눈으로 보고있지 않슈. 면접관의 눈이 흔들린다.
 
 
 
기술사 1급, 노동자 출신. W의 추천서와 군수 조합 출신.. 한참이나 망설이는 듯 쉴새없이 흔들리던 눈동자가 뚝 멈추고 마침내 그가 입을 벙긋거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카데미의 손해일세. 만약 들어와 공중전투와 관련된 지식들을 가르쳐준다면, 아카데미의 다른 과목을 들을 수 있게 해주지. 속이 뻔히 보이는 수였다. 그렇게 기술만 쏙 빼가지고는 버리려고 하시겠다. 껌의 단물처럼 빨아먹히고 버려지는 것은 사절이다. 뢴트게늄의 입꼬리가 비슥이 올라간다. 이럴 줄 알고 아까 머리를 굴려 생각해낸 교칙이 있다.
 
 
 
"이것 참, 곤란하네요. 제가 아카데미의 제 1법칙을 알아봤는데 말이죠, <출신과 국가에 상관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과 능력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교칙이 사실상 하이테크 아카데미의 상징 아니었나요?
 
 
제가 여기서 거절당해서 돌아가버리면, 제가 엄청 슬퍼서 마구마구 소문을 내고 다닐지도 모르겠네요. 하이테크 아카데미는 자신들이 상징이랍시고 내세운 제 1교칙조차도 못 지키고 출신과 국가에 색안경을 끼고 보더라-. 라고 말이죠."
 
 
사실은 왕립국과 연합국 사이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칙이었지만, 자유국 출신인 그가 들먹여도 할말이 없는 교칙이기도 했다. 명예라는 위대한 가치를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그들이 모욕을 흘려들을 수도 없겠지. 이죽거리며 과장되게 들먹인 이야기에 면접관의 이가 바드득 갈린다. 저런, 치아 관리는 잘 하셔야할텐데. 요새 기술이 아무리 좋아졌다 한들 결국 치아는 평생가는 거 아니겠어요? 이는 잘 관리해야죠. 덧붙인 비아냥에 붉게 물들어가는 면접관의 얼굴을 즐겁게 감상한다.
 
 
결국 변덕많은 가을의 노을마냥 물들어진 얼굴로 면접관이 들어올린 것은 ACCEPT 도장이었다. 그럼 그렇지, 우쭐거리며 팔짱을 끼는 뢴트를 못 미덥게 쳐다보면서도 면접관은 궁시렁거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교칙까지 들먹인 이상, 여기서 거절하면 그의 뒤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그대로 돌아가버릴테지. 그리고 그건 면접관이 잘리기에 최적의 핑계가 될 것이었다.
 
 
 
결국 입학허가서를 들고 웅장하게도 펼쳐진 강당에 들어섰을 때, 그는 사람들이 가득 몰려있는 무리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수십명의 여학부생들에게 둘러싸여 곤란한 미소를 짓고있는 남자가 우선이었다. 다정하게 손을 들어올려 거절하면서도 흘러나오는 미성은 남자가 들어도 기분좋을만큼 훌륭한 소리였다. 게다가 수근거리는 소문을 훔쳐들으니, 기계공학 1급이라는 것까지. 머리도 좋고 외모도 좋다, 성격도 나쁘지 않으니 훌륭한 친구가 될수도 있겠다고, 작게 중얼거린 그는 다음 무리에 고개를 돌렸다.
 
 
 
 
하이톤의 목소리로 이죽거리고, 비아냥거리면서 교수들과 함께 범생들이들에게 둘러싸여있는 풍경, 이건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신기한 장면이었다. 교수들이 자신보다 한참 어린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배움을 청하고 여러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쭐거리며 쉬운 일이라는 듯 답해주는 그를 보며, 뢴트는 지난날 교재를 사러 갔을 때 들었던 얘기를 떠올린다. 전기공학에서만큼은 따라올 자가 없다고 아카데미 학장이 찾아갔다지. 얼마나 실력이 뛰어나면 왕립군 측에서 세운 아카데미에서 연합군 소속인 그를 찾아갈 정도인지, 조금은 부러웠다.
 
 
 
마지막은.. 그냥 그린듯한, 미남이었다. 흠모하며 벽뒤와 기둥 뒤에 숨어서 그의 신경에 거슬리지 않게 볼을 붉히고 소근거리는 여학부생들. 뢴트게늄은 순간 자신이 아카데미가 아니라 고등학부에 들어왔나 착각이 들만큼, 청춘스러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의 옆구리를 더욱 시리게 만드는 요소들 중 하나이기도 했고. 어쨌거나 그에게는 왠지 볼 대신 눈시울이 좀 붉어지는 장면이었다. 시선을 즐기며 새하얀 백발을 봄바람에 흩날리고는 새파란 하늘을 닮은 눈동자를 깜빡거리는 것도, 새하얗고 긴 속눈썹을 깜빡거리는 것마저도 우아했다. 저 녀석은 100% ㅡ 공학부생은 결코 쉽게 100%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거늘 뢴트게늄은 망설임없이 확신했다 ㅡ 왕립군소속일 것이다. 그가 입고있는 새하얀 셔츠와 코트, 그리고 크로바트까지 완벽하게 귀족다운 모습이었으니. 거기까지 결론이 닿자, 그의 시선은 조금 측은해졌다. 신분을 노리고 달려드는 녀석들도 많겠다는 가여워하는 표정이었다.
 
 
 
입학식이 시작될 시간에 가까워지자, 그들이 각자 자리를 옮기며 배정된 좌석으로 향했고, 무리속의 주인공인 세명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에는 여학부생들이 환호를 지르기도 했다. 장래가 밝고 잘생긴 사람들끼리 모여있다니 확실히 눈과 귀가 즐겁기는 했다. 그가 저 세명의 옆자리에 앉아야한다는 사실만 뺀다면 즐겁게 그들 사이에서 박수도 쳐줄 수 있었을텐데. 시무룩하게 인파를 뚫고 나가는 그에게 수많은 어깨빵이 있고서야, 그는 마침내 또렷하게 적혀있는 자신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빌어먹게도 왜 하필 이 자리인건지 관리자를 찾아가 멱살을 잡고 한번 흔들어보고싶었지만, 사나운 눈매로 그들을 훑어보고 있는 관리자를 발견하고 생각을 조금 고쳐먹었다. 음, 그래. 자리가 뭐가 중요하겠어. 그렇지, 그렇지.. 인기 짱인 사람들 옆에 붙여놓던 오타쿠 옆에 붙여놓던... 그래도 후자가 마음은 더 편했을텐데. 아쉬웠지만 결국 자리에 앉은 그에게 시선이 몰린다.
 
 
 
'쟤는 뭐임? 왜 해루석님 옆에 앉지?'
'몰라, 저번에 봤는데 뭐 기계공학이었나 거기 신청한 명단에 있었던 것 같은데.'
'기계공학? 나 거기 정원 다 차서 신청 못했는데! 그럼 쟤 때문에 해루석님이랑 같은 수업 못듣는거임?'
 
'아니, 해루석님은 에어테크학부 수업 듣는다고 하셨는데.'
'그래? 그럼 비킴님이랑 아는 사이인가?'
'그럴리가! 나 쟤 자유국 출신으로 알고있음'
 
'그럼 쟤는 대체 왜 앞에 앉은거야? 저기 우등으로 입학한 사람들만 앉는 곳이잖아?'
'히키킹님처럼 엄청난 천재인건가?'
'그럴지도!'
 
 
 
아뇨, 평범한 사람입니다만. 그들의 말을 뚫고 꼭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더욱 관종이 되겠지. 애써 입을 꾸욱 힘주어 닫으며 뢴트게늄은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 자리가 우등으로 입학한 사람들만 앉는 자리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여러모로 불친절한 설명서, 삐쭉 튀어나오려는 입을 갈무리하며 설명서를 조만간 태우던가 찢어버리던가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상념을 깨운 것은 예의 그 미성의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전 해루석이라고 해요. 혹시 어떤 전형으로 입학하셨는지 호기심으로 여쭈어봐도 될까요? 첫만남에 상냥하고 정중한 인사에 손색없이 공손하고 물꼬를 트기에 참 적절한 질문, 뢴트게늄은 다시 한번 그의 인성과 센스에 감탄했다. 자격증 전형입학으로 들어왔다고 답하자마자 밝게 얼굴이 펴지며 혹시 수강할 예정인 과목이 뭐냐고 묻는다, 웅얼거리며 기계공학이라고 답하자 자신이 도와줄 수 있겠다며 싱글벙글 웃는 그의 따스한 제안에 거절할 수 있는 간크고 (아직도 뒤에서 여학부생들과 남학부생들_그 사이에 남학부생들은 대체 왜_의 시선이 따가웠다) 무례한 사람은 없으리라. 있다고 해도 내일 아침 아카데미의 고물처리장에 기어들 사이 묻혀있지 않을까.
 
 
 
그들 사이의 대화를 들었는지 불쑥 새하얀 손이 그들의 시야 사이를 뚫고 들어온다. 내 이름은 비즈니스 킴이라고 하네, 왕립군 출신이며 왕립군 소속이지. 자유학부 소속이지만 마도공학을 좋아하네, 그러니 마도 공학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다면 바로바로 내게 고해서 알수있도록 하게, 천민들. 묻지도 않은 인사를 내미는 그의 태도는 아까 전의 해루석과 참으로 상반되는 자세였지만 오히려 그 자세가 더 익숙해지리라, 어쨌거나 나쁜 사람같아보이지는 않으니까, 뢴트게늄은 이래봬도 사람을 보는 눈만큼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지 뭐, 짧은 그의 대답에 눈을 찡그렸지만 존대어를 쓰라고 굳이 강요하지는 않는 태도부터, 이미 그는 보수적이지는 않다는 증거였다. 보통 귀족 같았으면 바로 데리고 다니는 하인 불러서 망신을 줬거나 때렸을지도.
 
 
 
"무야, 인사하는 분위기인 거무니까? 저는 히키킹구, 히키킹이라고 불러주시면 되무니다. 와타시도 기계공학 수업이니, 친하게 지내무니다!"
 
 
 
뒤에서 새하얀 빛과 함께 반짝거리고 있는 기절공학기계만 아니었다면 그 인사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텐데, 뢴트게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받아들어 악수를 했다.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가 악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기절시켜버렸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속셈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때를 떠올려보면 지금 풍경은 상당히 기이하기는 했다. 이렇게나 친해질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따스하고 추억필터가 씌워진 과거회상을 끝낸 뢴트게늄은 여전히 아련한 눈빛과 부드러운 미소로 히키킹을 바라본다. B부분 45-2부분에 일곱번째 나사 풀려있어. 과제 똑바로 안하지, 여기에 우리의 학점이 걸려있다. 몽키스패너와 렌치를 살포시 내려놓고는 내가 이래서 팀플이 싫다고 바락 소리지르는 것을 들으며 네명은 적극적으로 그의 말에 동감을 표했다.
 
 
 
그래도 이때 아니면 언제 비행선을 만들어보겠냐며 달래는 말에도 동감을 표했지만. 결국 그들은 한숨과 함께 설계도를 들고 해야할 일을 해나갈 뿐이었다. 언젠가 그들의 손에서 완성되어 구름을 뚫고 새의 영역에 도달하여 청량하게 맞이할 높은 바람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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