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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썰 백업/단편

향수

W.범고래
 
*초단편인 것이와요
*주제 <향수> 스터디 글


세상에는 다양한 향이 있고, 어떠한 향기에는 기억 또한 같이 묻어나오고는 한다. 의도하였던 의도하지 않았던, 추억의 한 부분을 움켜쥐고는 그날의 기분만을 끌어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향이 도와주는 효과는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고 자신하는 융터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향의 효과를 확실하게 경험하고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융터르가 가장 세심하게 신경을 기울여 고른 향이 은은하게 퍼져있는 곳이기도 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포근하고 따듯한 섬유유연제 향과 머리가 아프지않도록 조절해둔 리드스틱들의 갯수까지 무엇하나 그의 손길이 빠진 곳은 없었다.
 
 
섬유유연제의 향에 적응하여 그 향이 없어졌구나싶을 때쯤에는 1시간 간격으로 미리 꽂아넣은 향을 뿜어주는 자동분사 방향제의 것까지 골라둔 그의 꼼꼼한 성격이 돋보이기도 했다. 카르나르의 픽은 옅은 스모키향이었다. 절간냄새같기도 하지만 묘하게 묵직하고, 색으로 따지자면 모두가 입모아 회색빛이라고 말할 듯한 향은 그의 차분하고도 깔끔한 사무소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오히려 향을 위하여 사무소를 꾸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그는 냄새와 향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었다. 융터르는 눈을 찌푸리며 때아닌 불청객을 쏘아보았다. 물론 불청객은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눈치도 보지 않는 듯 바구니의 사과는 소품용인지 진짜인지 물어보며 기어코 한입 베어물었다가 텁텁한 스티로폼의 맛에 눈을 찡그리곤 은근슬쩍 뒤로 돌려놓는 대범함을 보여주었다. 아니 무례함인가.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이제 말리지 않는다면 저 양반은 저기 놓여있는 금빛 장식품도 유물이냐며 그의 주머니속으로 다이빙을 시킬 것 같아 급하게 손을 들어올려 그의 이름을 불렀다.
 
 
 
"캘리칼리 님."
 
 
 
아닌 척 천연덕스럽게 불렀느냐며 돌아서는 그의 태도만 본다면, 방금 돌아서며 눈여겨보았던 바랜색깔의 금빛 장식품이 사라졌는지에 대해서 그를 추궁할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지만, 융터르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짐작으로 그의 주머니 안에 자신이 찾는 것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미 그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을 찾아낼 방도는 없었기에 그저 나중에 비밀소녀나 소피아에게 연락을 돌려봐야 하나 조용히 리스트를 추가할 뿐이었다.
 
 
억지로 남아있는 상담용 녹차와 커피믹스를 그의 손아귀에 쥐어주고서야, 그를 쫓아내고 문을 닫은 융터르는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여전히 기분좋은 향이 부드럽게 사무실 내부를 감싸고 옆 건물의 피아노 학원에서, 어리숙한 아이들의 연주가 기분좋게 무거운 침묵을 쫓아주었다. 나른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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