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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썰 백업/합작

[합작]신념

W.레기온
 
*합작 [남향앵: 버츄얼을 지켜줘!] 참가작입니다
*합작공개 링크
*신청: 빌런 남궁혁/ 히어로 향아치, 히어로 앵보


"우린 각자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지. 서로 다른 진영에서. 자네와 나의 차이는 단지 그뿐일세."

 
 
 
많이들 오해를 하고있소만, 나는 히어로가 싫지않네. 세상만사에 불만이 있고 사회의 체계와 시스템에 불만이 그득하게 쌓여 결국은 과격한 행동으로 사회의 만악을 옮기는 빌런, 일명 테러리스트들 사이에서 불퉁한 입술을 삐쭉 내밀고 말하는 음성에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빌런들의 시선이 곧장 그 말을 내뱉은 무례하고도 오만한 빌런에게로 향한다.
 
 
짙은 흑빛을 품은 남색에 가까운 머리색과 이제 막 해가 진 듯 어둑한 푸른빛을 머금은 옷, 그리고 그 위로 고급스러운 흰색 실로 분명하게 새겨져놓아있는 정교하고도 섬세한 용무늬와 짙은 금빛을 품은 노란눈동자를 가진 끝내주게 잘생긴 이 사내가 바로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빌런이 되시겠다.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사내는 마저 말을 이었다. 애초에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을 구해내는 의로운 협객을 어찌 나쁘게 보겠나? 나는 단지 그들이 보다 더 훌륭한 협객이 되기 위한 장애물이 되기를 기꺼이 자처할 뿐이네, 순탄한 길을 걸은 자보다는 험난한 길을 걸은 자가 더 다양한 상황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런 의미로 나는 이곳에 나온 자네들의 생각이 궁금할 뿐이오.
 
 
 
"...어...떠한.. 생각을. 말씀하시는건지..."
 
 
 
침을 꿀꺽 삼키며 우물쭈물 나온 질문에 마침 딱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었다는 듯 시원스러운 미소로 사내가 빌런을 돌아본다. 방금 나는 영웅, 협객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논하였네, 그렇다면 빌런으로써 응당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란 무엇이겠나! 제대로 대답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열정적인 시선에 슬그머니 눈동자를 그대로 도르륵 굴려 바닥으로 향하는 빌런들의 행동을 보자, 사내의 환한 미소는 실망감과 함께 일그러져버렸다.
 
 
 
"아.. 기대했는데, 실망스럽군."
 
 
 
잠깐의 침묵, 진심으로 애통해하는 그의 등뒤로 검푸른 오라가 흔들거리자 설마 하는 눈빛이 불안하게 사내에게 닿는다. 정말이지 안타까워, 나같은 훌륭한 빌런이 있으리라고 기대했건만, 안타까워. 그렇다면 내가 그 훌륭한 빌런으로써 가져야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알려주겠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사람은 하나의 목적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네, 애초에 인간이란 너무나도 복잡한 생물이기 때문이지. 사내의 금안이 천천히 어느 빌런에게 닿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하게 도망치는 빌런의 꽁무니를 흘겨보며 사내는 지루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ㅡ, 알려주기는 할 것이네.
 
 
 
"나는, 이 세계에서 능력이라는 것들이 전부 사라졌으면 좋겠네. 주먹다짐에서 누군가 죽지는 않지, 다만 칼싸움에서는 누군가 죽기도 하네, 이렇듯 싸움이란 무엇으로 싸우냐가 중요한 것. 지금 이 세상은 틀려먹었네, 초능력이라는 아주 커다란 칼을 들고 서로를 향해 망설임없이, 생각없이 휘두르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형태이니!!
 
 
그러니 나는, 능력을 지우고자하네. 이 세계에서, 영원히!"
 
 
 
자상한 웃음과 함께 도망치려던 빌런의 다리를 붙잡은 사내의 미간이 환하게 펼쳐진다. 어찌나 아름답고도 고아한 웃음인지 보는이로 하여금 멈칫하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라, 빌런은 도망치려던 것도 잊어버린채 멍하니 사내의 미소에 홀려 그대로 멈추어버릴 뿐이었다. 착하다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일어선 사내의 손끝에는, 빌런의 능력으로 보이는 것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반쯤 의식을 잃은채로 제 능력을 돌려달라 벌어진 입밖으로 간신히 소리를 내었을 때에는, 이미 그것은 사라지고도 없었다. 새카만 그림자에 먹혀진채로,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어져버린 제 능력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빌런을 등뒤로, 사내는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이런, 늦었네!! 그리고 그런 그의 등뒤로 정갈하고도 규칙적인 발걸음소리가 따른다.
 
 
 
"자, 그럼 이 비틀린 세상에서, 초능력이라는 것들을 모조리 지워버리러! 가봅세!"
 
 
 
호기롭게 걸음을 옮기는 이 사내의 정체는 바로 역대 사상 최악의 빌런, 남궁혁이었다. 능력은 현무ㅡ타인의 능력을 완전히 소실, 혹은 일시적으로 잃게 만드는 능력. 그리고 그런 그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자들을 바로 MANDU라고 불렀다. 이어 선명하게 송출되던 영상이 뚝, 끊기고 검은화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울때 정적을 깨우는 목소리가 나긋하게 울린다.
 
 
 
"방금까지 보여준 것이 바로 이 사상 최악의 빌런, 남궁혁의 영상이네. 자, 이제 몇번째인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이 남궁혁이 스스로 만들어낸 집단, 일명 능력제거에 혈안이 되어서 눈 시뻘겋게 뜨고 돌아다니는 망나니들, <창천회> 대책 회의, 시작하네~.
 
어, 자리비운 놈들은 전부 다 체크해놔. 나중에 월급에서 깔거니까. 어딜 회의에 참석도 안하는 버르장머리를 배워와서는 이런 곳에서 써먹고 있어? 니들 월급은 탕비실의 간식으로 탈바꿈할거다."
 
 
 
나른하게 깔리는 목소리로 살벌한 소리를 늘어놓는 사내의 명찰에는 선명하게, 향아치, 라는 이름 세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퀭한 표정으로 오늘도 난장판을 보고 놀란 시민의 신고를 받아버린 것이 이제는 좀 지긋지긋한 그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아니면 당연하다고 할지 일반 민간인들은 거의 건들지도 않아서 아직까지는 여론이 썩 나쁜편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향아치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요소였다. 애초에 저런 난폭한 녀석을 누가 왜 좋아하는거냐며 마이크를 킨채로 투덜거리는 말에, 모여있던 히어로들은 방금 전 그의 너무나도 훤칠한 미모를 떠올리며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얼굴에 개연성이 있다는 말을 하면 총사령관님이 정말 화내려나. 그런생각들을 하며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그것이 못마땅한 향아치 총사령관의 분노가 참지못하고 먼저 왈칵 터져나온다.
 
 
 
"아 말들 해. 누군가는 저 세상모르고 날뛰는 망나니를 잡아들여야 할 것 아닌가, 그러려고 모인 대책본부 아닌가? 국민들 세금으로 녹봉 받아먹는 입장에서 하루빨리 저런 빌런들을 치워야 시민들이 안심하고 다닐 것 아니겠는가 말이야."
 
 
 
그렇게 쉬우면 현장업무에 직접 던져드릴까, 싶은 마음을 꾸욱 참고있는 다른 히어로들을 대신해서일까 상쾌한 항의가 벌컥 예상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새카만 정복의 넥타이는 제대로 묶지도 않아 언제봐도 여러모로 대단한 흉부에 하느작거리며 흔들리고 있는, 험악한 인상의 히어로였다. 언뜻 붉은빛이 도는 새카만 선글라스와 그 너머로 타오르는 듯 열정적이고도 뜨거운 적안, 그와 반대로 향아치만큼이나 야근을 뛰어 퀭해진 다크서클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인상만 보고는 얼핏 빌런으로 오해해 신고를 당해도- 실제로 몇번이나 신고가 들어와 아예 히어로 명찰을 달랑거리며 가지고 다닌다. 빌런 쪽에서 스카웃도 몇번 들어온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인- 한번쯤은 고민해볼만한, 얼굴이었다.
 
 
 
"망할 영감탱, 그럼 어르신이 나가서 직접 뛰어보시던가요! 능력을 없애버리는데 어떻게 싸워? 게다가 저놈 은근히, 은근히가 아니지 딱봐도 육체파잖아요! 더럽게 강하다구요!"
 
 
 
너 어차피 능력 있으나마나잖아. 능력자들끼리는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디스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한껏 상처받은 표정으로 사내가 울먹거린다. 커다란 덩치에 수염까지 까슬하게 난 아저씨의 모습으로 그러는 것이 퍽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사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있는데 안하는 것과 없어서 못하는 것은 언연히 다르다는 반박을 내뱉었다.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는 것이 결코 기가 죽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러던가 말던가 저멀리 울리는 늦은 여름의 매미소리마냥 아예 듣지도 않는 향아치에게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까운 요소로 작용했지만.
 
 
 
"어어, 그래 나도 밥은 잘 먹었네. 배식에 고기국수가 나와서 맛나게 먹었지."
 
 
"이 노인네 또 안 듣고있네. 이봐요 노인네야! 현장에 한번 던져줄까?"
 
 
"아니, 또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그러나."
 
 
 
불쑥 다가온 사내의 가슴팍에 선명하게 매달려있는 Hero. Angbo앵보라고 쓰여있는 명찰을 지나 그대로 금방이라도 터질듯 씩씩거리는 붉은 눈동자로, 시선을 옮기며 향아치의 표정이 팍 구겨진다. 딱 보아도 귀찮아죽겠는데 자꾸 따지고 들어오냐는 식이었다. 인력을 좀 늘려달라고!! 어제도 야근이고 오늘도 야근 확정이고 난 언제 집에 들어가서 우리 애들 보는데?! 지금 우리 사무실에 두목 언제 오냐고 눈물 그렁거리는 애들이 있어요!! 투덜거리는 앵보의 말에 향아치의 표정이 사납게 굳는다. 그건 안될말이지, 지금 창천회 쪽만 신경쓰면, 다른쪽 빌런들은 아예 포기하겠다는 말 아닌가? 그럼 남궁혁 제외하고 다른 빌런들한테 시달리는 불쌍한 국민들은 내버려두자고? 애초에 자네 할일이 바로 그 빌런을 잡는 히어로 아닌가? 그러려고 입사했고 각자 자기 신념대로 행동하기로 한 것 아니었어?
 
 
매섭게 들어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살벌하게 히어로들을 찌르고 대충 또 둘의 공방전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눈치챈 히어로들은 회의테이블에서 일어나 다소 급하게 회의실을 벗어났다. 말빨로는 어딜가도 결코 뒤지지 않을 실력이라니까,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나온 히어로가 한숨을 돌릴 무렵, 곧 분에 이기지못하고 한두명만 빼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는 앵보의 외침이 회의실을 넘어 날카롭게 퍼진다. 뒤이어 집에 좀 들어가자는, 밖에서 듣고있는 모든 히어로들이 눈물을 머금고 격한 공감으로 헤드뱅잉을 하는 서글픈 직장인의 절규도 이어졌다.
 
 
 
"요새 인력난이야 임마!! 그렇게 한두명씩 빼가면 거리는 누가 지킬건데! 사람은 누가 지킬거고!! 암튼 나는 이 이상의 인력은 안되네, 못물러나. 안돼, 돌아가. 안 빼줄거야. 애초에 자네도 나름 A급 히어로라는 직책을 달고서 창천회 하나 못 막는게 말이 되는가? 아이고 두야.. 이러니까 인력난이지. 자네같이 쓸모없는 인력을 뽑아서는 둘곳도 없어요."
 
 
"지금 말 다했어? 나는!! 정신계 능력쪽이라서 몸싸움에는 약해! 싸우고 지지고 볶는 건 아프자나!! 무섭단 말이야!"
 
 
 
사람이 두뇌를 써야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일갈하는 앵보의 덩치를 다시 위아래로 훑으며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날아갔다는 표정을 지은 향아치를 향해 입술을 비죽 내민다. 뭐, 왜. 뭐. 불만있어? 한숨과 함께 향아치가 이내 내놓은 답변은, 매우 뜻밖의 것이라 벽에 바짝 붙어 도청하던 다른 히어로들도 놀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럼 같이 가는걸로 하지."
 
 
"그래!! 진작에 빼줄 것이.. 엣, 엇. 음? 어? 에? 에엥? 에에에엥?? 어르신이?!!"
 
 
"뭐임마! 같이 간다고 해도 난리야!?"
 
 
"아니. 어, 뭐.. 그.. 아냐. 괜찮아. 물론. 물론 환영이지만.. 괜찮겠어?"
 
 
 
안괜찮다! 당황스러워하며 어버버거리는 앵보의 걱정에 단호하게 니때문이라며 선을 긋고 그대로 문밖으로 나온 덕분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쫑긋 귀를 세우던 히어로들이 그대로 무너져내린다. 기껏 뽑아놨더니 일반인보다 더 월등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하는 일이 기껏 엿듣는거냐며 한심해하는 시선, 아니 정확하게는 경멸에 가까운 시선으로 무능함을 낱낱이 쳐다봐준 향아치가 한숨과 함께 상부에 보고를 하러 사라지고,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있던 앵보가 그대로 나오면서, 히어로들은 감탄으로 그를 맞이해주었다.
 
 
 
"이야아아~!!! 어떻게 한거야, 저 까다로운 양반을 구슬린거야? 저 양반 현장 잘 안나오는데 대박! 엄청 몸 사리잖아!! 기껏 좋은 능력 타고나서는 움직이지도 않고 말이야~!"
 
 
"어? 어르신 무능력자 아니었어?"
 
 
"응? 앵보 님 모르셨어요? 향아치 님 능력자세요."
 
 
 
얼굴로 느낌표를 표현하라고 한다면 저 사람만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란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얼굴에 히어로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그에게 말해주기를 머뭇거렸다. 진짜 모르는 표정인데 설마 총사령관님이 숨긴 거 아니야? 의도적으로 말 안하신거면 우리도 말 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웅성거리는 그들 사이로 드디어 얼굴에서 !를 치운 앵보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고 인상을 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빼고 지들끼리만 자꾸 떠들지 말라는 뾰로통한 표정이었으나 안그래도 험악한 얼굴을 가진 그를 바라보는 직장동료들의 마음은, 딱보아도, 아니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가 좋게좋게 말할때 순순히 비밀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뭔데요?"
 
 
"어.. 아.. 이거 참.. 말하는게.. 이거 허락된건지 모르겠는데... 총사령관님 능력은 <어둑시니>에요."
 
 
"? 그거 요괴 아니에요? 저 양반 요괴였어? 요괴는 특수종족으로 취급..."
 
 
"아니아니, 그냥 명칭만 그런거고, 사실상 능력은 원래 하나로 딱 집어서 설명하기가 어렵잖아요. 타겟의 약점이라던가 물리적, 정신적으로 취약한 부분까지 파악이 가능한 능려으로 알고있어요. 그래서 사실 앵보님이랑 사령관님이랑 같이 다니면 되게 좋은 시너지인게... 앵보님의 능력은 정신계쪽이잖아요? 정식 명칭은 <장산범>이지만. 환상이라던가 환각같은 거.. 만들어낼수도 있고."
 
 
"그렇죠."
 
 
"사령관님이 타겟의 트라우마라던가 정신적으로 약한 부분을 알아내면 앵보님이 트라우마를 형상화 시켜주는 것, 그러면 거의 대부분의 빌런들은 약해질텐데 말이죠, 일단 정신적으로 강한 녀석들은 생각보다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걸로 한창 우리도 뜨거운 논쟁을 벌였었는데ㅡ"
 
 
"난 그런 공격은 안해."
 
 
 
주르륵 읊어주는 와중 단호한 어조가 그들의 대화를 끊는다.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앵보는 고개를 돌려 저멀리 사라진 향아치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그는 무언가 결심한듯, 다시금 단호한 어조로 고개를 젓는다. 정신계 공격은 안해, 안할거야. 사람이 비열하게 트라우마 건드리는 거 아니야. 그 말에 한 히어로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반박한다. 안하면 시민이 죽는다고 하더라도요? 그 말에 조금 움찔한 듯, 앵보의 눈동자가 선글라스 너머로 잠시 흔들린다. 그러나 이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온 대답은, 긍정이었다.
 
 
응, 안할거야. 차라리 내가 직접 뛰어서 막는 편이 낫지. 기껏 좋은 능력을 타고나서는 대체 왜, 라며 진심으로 의문에 가득차 수근거리는 히어로들을 두고 요즘은 히어로들도, 빌런들도 지켜야할 선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다는 향아치의 푸념을 떠올리며 곧 울릴 출동사인을 대비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이어 기다렸다는 듯 요란스럽게 울리는 사이렌소리와 함께, 앵보는 차량에 탑승해 향아치와 함께 현재 남궁혁이 출몰한 장소와 그가 하고 있는 행동을 실시간으로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았다. 쾌활한 듯이 웃음소리가 울리고 온통 새파랗게 맞춰입은 옷은, 언뜻 보기에는 거대하고도 광활한 파도가 몰려오는 듯한 압박을 느끼게 한다. 창천회 일원들의 눈동자는 굳건했고 마치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광적인 믿음의 한가운데에서, 남궁혁은 입꼬리에 호선을 그린채로 온화하게 시민을 향해 다가갔다.
 
 
 
"기다리게, 소형제여. 자네는 이 세상이 마음에 드는가?"
 
 
 
나왔다, 그 질문. 앵보가 주먹을 움켜쥔채로 타오를 듯한 눈동자로 스크린을 쏘아본다. 끼고있는 헤드셋 너머로, 떨던 시민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긍정하는 답변이 흘러나왔다. 네? 좋, 좋아요. 긍정의 대답에 시원스럽게 웃고있던 남궁혁의 얼굴이 한순간에 무표정을 지었으나, 순간이었을뿐 이내 소형제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굳이 설득할 생각은 안하겠따는 답과 함께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
 
 
 
"그건 자네가 능력자이기 때문일걸세. 나는 생각이 달라. 이 세상에 태어나는 능력자 중 80%는 살아가는데에 이상없는, 평범한 능력이지만.. 몇몇은 눈에 띄는 능력이기에 한평생을 숨어지내야하는 이도 있고, 너무 강한 능력을 타고나 원치 않음에도 사방에 능력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네. 또 몇몇은 아예 그러한 능력조차도 타고나지를 못해 열등한 사람으로 분류되어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지.
 
사람을 완벽하게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이 복합적인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지. 사람은 사회에서, 남들과 교류하며 살아야 하는데 단지 타고난 것만으로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니, 억울하지 않나! 나는 그러한 차별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기 위해 기꺼이 빌런이라는 악명을 뒤집어썼을 뿐이네. 어떻게 보자면 저들에게, 나는 히어로지.
 
하하하! 그럼 자네에게 묻겠네, 나는 자네에게는.. 빌런인가, 히어로인가? 그 구분은, 누가 결정짓는건가?"
 
 
 
시민을 향해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손을 뻗고, 남궁혁이 천천히 시민의 능력을 빼앗으려는 순간 향아치의 확성기가 날카로운 기계음을 내며 그들의 행동을 멈추었다. 귀가 얼얼하게 아려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짙은 금안이 천천히 향아치를 향해 돌아간다. 저 노인네, 안죽고 살아있었군. 안보이길래 어디가서 죽은줄 알았더니, 명이 길어! 하하하하!! 칭찬인지 저주인지 모를 소리였으나, 그를 잡기위해서 반년은 넘도록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는 앵보와 향아치는 잘 알고있었다. 저 녀석 저거 순수한 감탄이야, 열받게.
 
 
 
"빌런 남궁혁, 지금이라도 멈추고 이대로 항복하면 감형해줄 수 있다."
 
 
"흠? 애초에 나는 사형 아닌가? 언론에 보도되기로는 그렇게 되어있던데? 사형에서 감형이면, 무기징역인가? 하하하하! 나는 갇혀사는 것은 질색이네!! 사람이 햇빛을 보고 살아야지!!"
 
 
"남궁혁!! 지금 장난하자는 거 아니다."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앵보의 머리를 한번 후린 후 다시금 풀어지려던 긴장감을 잡은 향아치의 말에 연신 싱글벙글 웃고있던 남궁혁의 얼굴이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저 노인네는 저래서 재미가 없어, 농담도 못하게 하니. 무표정해진 남궁혁의 얼굴을 향해, 향아치가 다시금 확성기에 대고 전혀 씨알도 안 먹히는 '설득'을 시도해본다. 애초에 이런 과정 없이 그냥 다 잡아죽이면 되지 않냐고 궁시렁거리는 광역계 능력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채로, 향아치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네 주장은 모순이야! 이미 지금 태어나고 있는 아이들의 99%는 능력자다! 넌 그들에게서 평범함을 빼앗고 있는 것과 같아!"
 
 
"나는 그 1%의 차별받는 아이들을 위해 움직이는걸세! 차별은 나쁜 것이지 않나! 나는 모두가 똑같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네!"
 
 
 
어떻게 보자면, 그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면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것이 좋을지,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좋을지 선택하는 신념의 문제였다. 그리고 히어로는, 다수를 지키기로 결정한 진영일 뿐이었다. 그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까, 남궁혁은 굳은 표정을 풀고 다시금 따스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네를 이해하네, 자네는 다수를 지켜야하는 공무원일 뿐이지. 그렇다면 대부분의 역사에서 그랬듯, 이긴 사람의 신념이 실천될 뿐이네. 우린 각자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지. 서로 다른 진영에서. 자네와 나의 차이는 단지 그뿐일세. 남궁혁의 조곤조곤한 말에, 향아치의 표정이 굳는다. 천천히 확성기를 떨어뜨리는 손길에 앵보는 쓰고있던 헤드셋을 벗고, 오늘도 답답할만큼 꽉 맨 넥타이를 손보며 차량에서 내려 빼곡하게 거리와 하나의 지역을 뒤덮은 푸른 물결을 바라본다.
 
 
 
"오늘 거 보너스 받아낼거야, 진짜. 씨잉, 딱 봐도 견적 씨게 나오잖아."
 
 
 
부루퉁한 입술로 투덜거리던 앵보는 뻐근한 몸을 움직이며 금방이라도 저 푸른물결 사이로 뛰어들 준비를 한 그의 호흡이 천천히, 가다듬어진다. 저돌적인 자세를 바라보며 한숨을 폣속부터 깊이 끌어모아 푸우욱 내쉰 향아치는 그에게 인이어 하나를 던져주며, 고개를 까닥인다. 내가 시키는대로만 움직여라, 이놈아. 엑, 싫은데. 아, 그럼 쟤네한테 가서 뚜드려맞던가. 쉽게 가는 길을 알려준다고 해도 난리야. 아유, 어르신 농담이죠 ,왜 그렇게 속이 좁아요. 만담을 나누는 그들을 저멀리서 지켜보며 남궁혁은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어 그들을 향해 곧게 겨누었다.
 
 
 
"그거 아는가! 히어로는 그 누구도 죽여선 안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실천하는 것에 불살을 끼워넣지 않네! 그런 말랑한 각오로 이곳에 서있지 않아! 창천회 전원!! 너희가 믿고있는 신념을 지켜라!!"
 
 
 
달아오르는 분위기, 한층 거세진 파도가 되어 넘실거리는 그들을 보며 오늘밤은 야근일 것 같다고 중얼거린 앵보가 인이어를 귀에 꼽는다. 이내 그의 전용무기인 빠따와 수많은 능력을 가진 히어로들이 그의 곁에 서며, 그들의 눈 또한 선명한 이채를 머금는다. 제각기 자신이 지지하는 히어로들의 사이드킥이 함께 공동의 적, 푸른 물결의 주인을 겨눈다. 남궁혁의 검끝이 하늘을 향하는 순간을 신호탄으로 요란한 환호소리와 함께 푸른물결이 히어로들과 함께 뒤섞인다.
 
 
 
[자네 눈앞에 있는 이는 낭심이 급소일세, 자네답지 않게 죄책감 가지지 말고 치게나!]
 
 
"이 노인네가 진짜아ㅡ!!!"
 
 
[오, 거기! 그 낭자는 오른쪽 어깨가 약점이니 그대로 내리찍으면 되네!]
 
 
"나 이거 마음에 안든다고오ㅡ!!"
 
 
 
싫다싫다 칭얼거리면서도 향아치가 시키는대로 후려갈기는 앵보와 굳이 그의 의지를 알기에 일부러 육체파의 지시들을 내리는 향아치. 은근히 합이 잘 맞아가는 둘을 멀리서 진지하게 쳐다보던 남궁혁이 싱긋 상쾌한 미소를 짓는다. 이제 막 히어로 쪽이 승기를 잡을때쯤이었다. 불길한 미소와 함께 창천회끼리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것이, 딱 보아도 이곳에서 전력을 드러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며 답은 후퇴.
 
 
 
[어어, 저거 저눔 시키 저런 표정 지으면 안되는데! 야, 앵보도령, 앵보도령! 지금 당장 저녀석한테 환각걸어!]
 
 
"어, 어? 환각? 환각 나 너무 오랜만에 거는건데?! 뭐, 뭐걸어야 하는데?"
 
 
[너어는 정신계 능력이면서 그것 하나도 갈고닦지를 않았어? 이런 무능한 녀석! 아이고, 아무거나!! 급해 임마!]
 
 
 
아이씨 진짜 아무거나가 제일 어려운 주문인거 알면서!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을 뻗은 앵보가 남궁혁에게 보여준 환각에 남궁혁이 움찔 놀라며 뒤로 주춤 물러난다. 푸른 창천회의 옷을 입고 두건을 두른 아이, 그 아이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된채로 그를 올려다본다. 대협,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에요?  그 말에 남궁혁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물론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그의 뜻대로 금새 새하얀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환각으로 바뀌었지만 순간적으로 보았던 그 짧은 찰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그의 상처가 되리라. 언제 당해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능력이다. 이래서 능력은 이 세상에서 전부 없어져버려야 마땅한 것. 불편한 환상을 털어내며, 그는 애써 당당하게 검을 들어올린다. 창천회 전원! 콤보 A를 펼치도록!
 
 
 
[코, 콤보 A? 무슨 합동공격인건가? 수비진영으로 대비해!]
 
 
"어어? 아, 알았어! 전원 수비대형으로!!"
 
 
 
일시적으로 모이는 히어로들을 향해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창천회는 품안에 있던 연막을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에 던져 터뜨리며, 유유히 사라졌다. 지역 하나를 메울만큼 많았던 푸른 파도는 어느새 사라져있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할 준비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히어로들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서서히 걷히는 연막너머로 보이는 것은 건물과 건물사이에 걸려있는, 한 현수막이었다.
 
 
 
[하하하! 뺑이 열심히 치게!]
 
 
 
그들을 향해 해맑게 웃고있는 남궁혁의 얼굴까지 박혀있는 푸르고 예쁜 색깔의 현수막. 아, 좃됐다. 인이어 너머로도 느껴지는 분노에 급히 인이어를 뺐음에도, 이내 저 고얀놈이라며 상상할 수 있는 비속어없는 욕설들을 내뱉는 소리는 스피커를 뚫고 찢어질듯이 흘러나왔다. 곧 사령관님!!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것을 보아선 뒷목잡고 넘어진 것 같은데 뭐, 알빤가! 내심 완전히 끝장내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앵보는 꽉 잡고있던 빠따를 조심스레 내린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멀어져가는 헬기에서 지켜보던 남궁혁의 시선이 흘긋 어둑하게 물들어가는 밤하늘을 향해 휘어지며 수많은 열망을 담은 눈동자를, 지그시 감는다.
 
 
우리는 결국 서로를 끝장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서로의 신념으로 부딪혀올 것이다. 그리고 먼저 그 신념이 부러진쪽이, 승리자가 되겠지.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동기의 정이라던가 이웃집의 정같은 것은 낄 사이가 없다. 많은 것이 정리된 눈동자를 번뜩이며, 남궁혁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음! 다음에는 봐주지 않겠소이다!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헬기들을 쳐다보며 앵보의 시선 또한 차분해진다. 다른 진영일 뿐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같네, 안정과 평화. 다만 그것을 누리는 범위가, 소수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뿐이지. 남궁혁이 한 말을 다시금 되새기며 앵보는 언젠가, 대학시절 자신은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의로운 협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던 햇빛 따갑던, 어느날을 떠올렸다. 다음에는 진짜 잡을거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앵보의 입가에도 다정한 미소가 서린다.
 
 
언젠가는, 모두의 신념이 부러지고 이루어진 날에는 다시금 그날처럼 옥상에 앉아 노을을 보며 맥주 한캔씩 마시자고 다짐하며. 셋은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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