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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썰 백업/단편

망령혼합대무도회

W.범고래
 
*망령혼합대무도회 시점에서 썼던 글
*수정 후 재업
*즐거운 감상 되시길!!


 

 



이것 좀 봐! 자랑스럽게 내미는 핸드폰과 헤드셋에 숲에 빼곡히 앉아 자기들끼리 놀던 망령들은 우르르 몰려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낯설고 익숙한 물건들을 이리저리 구경했다. 조금 늦게 도착해 자작나무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단답벌레를 발견한 권민과 춘식이 해맑게 웃으며 그들이 가져온 것들을 그의 눈앞에 자랑스럽게 들이밀었다. 흥겨운 가락이 나온다며 신기하다고 줄곧 헤드셋을 붙잡고 사용법을 연구하던 권민이 마침내 귀에 제대로 끼우고, 새카만 핸드폰의 스크린을 연신 두드리며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는 춘식을 바라보며 단답은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신기한 점은 둘째치더라도, 이건 주인이 있는 물건 같다는 판단이었다. 아무리 그들이 망령이자 사람의 눈에는 쉬이 띄지 않는 존재들이라고 해도 그들에게도 엄연히 소유의 개념과 도난의 개념이 있는 법이었다. 단답벌레의 망설임과 의문을 눈치챘는지 권민은 환하게 웃으며 당당하게 그가 먼저 손을 놓고 물건에게서 도망쳤으니, 버린 것과 같아 상관이 없다는 논설을 펼쳤다. 물론 단답벌레의 미동조차도 없는 표정에 시무룩해지며 알았다고 한 점은 덤이었지만.

 
 
신기한 것들을 가지고 놀게 해준 인간에게 보담한다며 망령들의 숲을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친구들 덕분에, 덩달아 흥미가 생긴 단답도 결국은 그 인간을 찾아 망령숲의 경계에 슬쩍, 발끝을 내딛어보았다. 조심스럽게 건들여 아스팔트를 밟아본 단답의 눈이 반짝거린다. 숲의 부드럽고 말랑하여 때로는 질퍽하기까지 한 흙과는 전혀 다른 독특하고 신기한 촉감이었다.

 
 
 
천천히, 발끝부터 뒤꿈치까지 온전히 한발이 아스팔트 위로 올랐을 때, 그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어 있는 상태였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모르겠는 변화였지만. 마침내 두 발이 온전히 아스팔트 위로 올랐을 때에는 흥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기쁨으로 두 손을 박자에 맞춰 번쩍 치켜들기까지 했다. 누군가 오래된 숲에 버려버린 낡은 TV에서 나온 어느 체조선수와 같이. 이리저리 발끝을 움직여 아스팔트를 쿡쿡 찔러보던 그의 발걸음이 마침내 친구들의 흔적을 쫓아 그 사람의 집으로 향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망령은 익숙한 것도 낯선것도 가리는 것 없이 모두 좋아한다. 익숙한 것은 익숙한대로 편하고 능숙하여서, 낯선것은 새롭고도 독특하여 참신하였기 때문에 좋아하였다. 망령이라면 그다지 가리는 것 없이 모두 좋아하는 순박한 혼령들이라는 말은 단답벌레를 비껴가지는 않아서, 그 역시도 때로는 걸었다가, 때로는 익숙하게 폴짝폴짝 뛰기도 하며 새로운 경험을 양껏 즐겼다.
 
 
 
마침내 벗들의 기운이 가장 강한 곳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그들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있어서 단답벌레는 그들 사이에 폴짝 끼어 분위기를 살폈고 그들을 살피러 온 거냐며 짬퉁스는 기꺼이 그를 반기며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렇게 만난 인간은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곤란해하면서도 망령들의 춤에 놀아주는 상냥하고도 이상한 인간이었다. 어째서인지 같이 혼나주고 있는 것도, 자신들의 장난에 변명하다가 결국은 킥킥거리며 웃어버리는 것도 이상하지만, 따듯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단답벌레는 벗들이 망령숲으로 돌아오지 않는이유를 알아차렸다.
 
 
 
사람이면서 망령들의 노래를 듣고, 망령들의 독특한 춤에도 어울려 몸을 움직이고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면서 허리를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새로운 춤을 알게 되어 돌아가면 그것을 흉내내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가락에 맞춰 움직이던 단답은 자신의 모습에 놀라 움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오래도록 하얀 빛과 몇개의 불빛만을 일렁거리며 줄곧 차분하기만 했던 망령숲의 분위기와는 확연하게 달랐던, 어쩌면 옛날 망령숲의 처음 요란스럽게 북을 두드리던 어느날의 밤과도 같았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흥겨운 것을 알리지 않고 몰래 즐기는 망령은 미움을 받는다. 단답벌레는 훌쩍 숲으로 되돌아가 망령들을 불러모았다. 흥미있는 것이 없다면 재미없을 거라며 불퉁스럽게 입을 삐쭉 내밀었던 캘리칼리와 뭐든 일단은 지루한 곳에서 벗어나 좋다며 히죽웃는 만두가 그의 등뒤를 따라 되돌아갔을 때 마침 본 것은, 쩔쩔매며 곤란에 빠진 인간의 모습이었다. 사나운 망령의 집이라도 건드렸는지 잔뜩 분노해 버럭버럭 소리지르는 왁파고의 망령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위협적이어서, 그들 사이에 살풋 내려선 단답벌레는 일전 그들과 함께 추었던 음을 흥얼거리며 덩실거렸다.

 
 
 
 
때와 상황에 맞지 않음에도 합류한 다른 망령들도 그것이 퍽 재미있어보인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까닥거리다가, 그의 음을 따라 부르며 화음을 얹었다. 흔들거리며 고개를 가닥이는 자와 반복된 자세로 팔다리를 모두 놀리고 있는 춤들이 어우러져 한바탕 기이하면서도 신이 나는 축제가 벌어진다. 화가 난 망령도 그가 망령의 음과 가락에 맞추어 고개를 흔들자, 분노보다는 흥이 먼저였는지 까닥까닥 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들의 응어리는 풀어져 땀이나도록 몸을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북과 장구, 그리고 여러악기들을 들어 두드리고 번쩍 든다.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추는 망령들 너머로 캘리칼리 또한 불쑥 끼어들어 큰 덩치를 움직였고 일제히 같은 춤을 추기도 하고 다른 춤을 추기도 하는 그 이상한 놀이에도 그는 아무렇ㅈ비 않게 들리지 않을, 어쩌면 희미하게나마 들릴 노래에 맞춰 함께 춤을 추어주었다.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사뿐한 춤을 추기도 하고 섬세한 춤선을 보이는 것도 칭찬하다가,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에는 다함께 손가락을 들어올려 배가 아프도록 웃었고 그렇게 해가 고개를 빼꼼 내밀 시간이 될 때까지도 간만에 달아오른 그들의 흥은 식을 줄을 몰랐다.
 
 
어느새 저 멀리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놀란 표정으로 후다닥 악기들을 챙겨 망령숲으로 뜀박질하는 망령들이었다. 마침내 권민, 관춘식과 단답벌레만이 남아 아쉬워하며 잔뜩 헝클어지고 풀어진 넥타이를 수습하는 인간을 바라볼 뿐이었다. 권민은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어 그에게 돌려주었고 비록 박살났지만 그것도 괜찮다 다독이는 덕분에 울먹거리며 핸드폰을 내미는 관춘식에게서 물건들을 돌려받은 인간은 망령들이 숲으로 건너가는 길을 배웅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꿈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몰랐다. 어느새 우리가 밤새 놀았던 춤과 노래들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바쁜 일상에 몸을 던져 결국은 아예 우리를 잊어버리게 될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괜찮았다.
 
 
깨진 핸드폰의 액정은 꿈이 아님을 증명해줄 것이었고 헤드셋에서 들려올 노래는 망령들의 가락일테니, 지치고 삭막해져버린 일상에 지쳤을 때에, 그때에 다시한번 더 축제를 벌여보자고 약속하며 그들은 그렇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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