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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썰 백업/단편

그늘

W.범고래
 
*스터디주제: 그늘
*고메무썰
*짧썰


매미소리가 상쾌하게 귀를 뚫으며 뜨거운 열기를 가라앉혔고 이때가 아니면 언제 울어보겠냐는 듯 우렁찬 하모니를 뱉었다. 정수리를 뜨겁게 달궈 조만간 구워진 감자와 자신중에 누가 더 노릇하냐 하면 단언 자신의 정수리를 꼽을만큼 뜨거운 날이었다.
 
 
훈련장의 수련인형을 두들기는 소리가 점점 힘없어지고, 마침내 정오에 다다른 시각에 맞춰 해가 중천에 걸리자 그나마 남아서 수련인형을 향해 매섭게 목검을 찔러넣던 검투사마저도 항복을 표하며 급하게 그늘로 들어간다.
 
 
훈련장 옆에 아슬아슬하게 올려놓은 그늘막과 그 아래에는 이미 빼곡하게 더위와의 싸움에서 진 검투사들이 늘어져있었고 제각기 황제가 내려준 보은과도 같은 얼음물에 바짝 마른 목을 축이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차라리 비라도 한바탕 내려 정수리라도 식혀주었다면, 아니 지금 온도로는 비가 내리면 단체로 머리에서 김이 나는 진풍경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웃길텐데. 무심코 떠오른 상상에 저도 모르게 키득거린 고메무스에게 이미 진이 다 빠져 늘어져있던 루서키다스가 고개를 들어 묻는다.
 
 
 
"뭐가 그렇게 웃기십니까...?"
 
 
 
루서키다스의 질문에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상상력을 들려줘도 될지 잠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고민한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거리낌없이 방금 상상한 상황을 말해주었다. 뭐 음흉스러운 것도 아니고 굳이 숨길필요는 없으리라. 단체로 머리에서 김이 날 것 같다는 말에 잠시 그 상황을 상상해보려는 듯 고민하던 루서키다스는 이내 푸하, 그와 비슷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재미있겠다는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장관이긴 할 것이었다. 어느 광대의 몸짓도 그것보다 웃기지는 않으리라.
 
 
 
얼음물의 한기에 코끝이 쨍하게 아린다. 얼음이 잔에 부딪혀 맑은소리를 내고 직사광선에 진절머리를 치며 길어진 머리를 묶어올린 고메무스가 흘긋 시선을 내려 루서키다스의 잔 속의 얼음을 바라본다. 약탈이라도 할 것 같은 눈빛에 얼음은 관리자에게 말하면 더 받을수있다는 정보를 내놓아야했던 루서키다스였다. 만족스럽게 나무잔가득 얼음을 받아본 고메무스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저녁쯔음에는 제발 안 더웠으면 좋겠다는, 여기 그늘에 늘어져있는 모든 검투사들의 희망과도 같은 말을 부루퉁하게 내뱉는다.
 
 
 
"저녁즈음엔 그래도 해 떨어지니 조금쯤 낫겠지."
 
 
 
실로,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더운 날이었다. 온갖 고생 다해보고 작년 한여름에도 검투경기를 펼쳤던 그였으나, 오늘 경기를 하라고 하면 차라리 기권을 할만큼. 다행스럽게도 열사병을 걱정해 오늘 모든 상업은 휴무를 권고했다는 자애로운 황제의 말에 그들 역시도 쉬게 되겠지만 말이다. 목검과 훈련용검이 아무렇게나 내버려진채, 그들의 여름은 그렇게 그늘아래에서 한숨 쉬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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