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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ION/공개용 커미션글

Final Deal

W.범고래


*커미션 글입니다.
*약간 적폐/ 과몰입 금지
*소재주의



※인물소개 및 설정

캘리칼리 데이비슨:
시원시원한 성격. 형사 3팀에 근무하고 있으며 성질이 불같다. 그렇다고 무작정 달려들거나 나서는 성격은 또 아니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어느정도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만 사고를 치며, 취미는 취조중인 범인을 몰래 패기다. 나쁜놈한테 나쁜짓하는데 뭐 어떠냐는 식이며, 티가 나지 않게 패는 기술은 거의 최상급에 위치해있어 다른팀에서 배워갈 정도. 소소한 돈뜯기와 함께 없는 죄의식도 심어줄 자신이 있다고 말하지만 반장이 매달려서 하지말아달라고 애원하는 통에 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또다른 취미는 여행, 정확하게는 모험이며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을 밝혀내고 유명한 명소들을 직접 눈에 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여러모로 호기심많고 소년같은 마음이 있는 사람.

노스페라투 호드:
정의로운 성격. 불의를 보면 확실하게 나서며 캘리칼리와 다르게 어중간하지 않다.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앞뒤가리지 않고 나서서 도와주는 편이며 덕분에 한숨쉬며 뒷수습을 하는 것은 언제나 팀원들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정의감을 좋게 보며 오히려 자신들이 했어야 할 일을 해내는 호드를 아끼고 품는 편이다. 형사일에 들어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찰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수석으로 졸업해 이쪽까지 온 나름의 엘리트 출신. 범인을 잡는 센스가 좋고 배워가는 습득력도 빠른 편이라 여러모로 이쁨받는다. 형사 3팀에서 근무.


카르나르 융터르:
저승의 가여운 것들을 보살피는 차사. 무뚝뚝하고 무심한 얼굴과 다르게 다정하고 상냥한 성격이며 망자들에게 한해서는 더없이 자비롭기도 하다. 물론 악귀나 망령들에게는 단호하지만 엄연히 차사는 먼저 가엾어하는 마음이 먼저이기에 그들을 걱정한다. 행동은 차사의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사연을 들어주고 한을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악한 행동을 하고 나쁜 마음을 먹은 것은 응당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 의지와 신념이 확고하여 염라조차도 두손두발 들 정도로 은근한 고집이 있다.









이런 도랑에 빠져 죽어버려야하는 빌어먹을 미꾸라지 같은 놈! 캘리칼리의 시원스러운 욕설이 아직은 조용한 골목길을 우렁차게 깨운다. No Fuck, 욕은 안됩니다. 호드의 차분하고 타이르는 듯한 음성에 돌아본 캘리칼리는 씩씩거리며 곧장 손가락을 들어 용의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저택을 가리키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 눈앞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모른척을 하냐며 그게 형사가 되어서 할말이냐며 자신을 향해 윽박지르는 캘리칼리의 우렁찬 얘기를 태연하게 호드는 흘러넘겼다. 불같은 성격에 화끈하기까지 한 그가 눈앞에서 처벌받아 마땅한 일을 넘어가야 한다면 자신보다 더 괴로울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예상대로, 캘리칼리는 이내 욕설들을 중얼거리다가 그 망할놈의 자택수사 영장, 꼭 가져온다며 눈앞에서 놓친 용의자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아주 꼴좋게 눈앞에서 형사를 따돌린 용의자는 피식 비웃음을 머금고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그들이 수사하고 있는 사이비 종교, <자선교>의 교주로 보이는 사람이 인상좋게 미소지으며 대문을 교묘하게 가려 서있을 뿐이었다.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자택수사는 어렵다고 말하는 교주의 말에 버럭버럭 소리지르며 화내고 있는 캘리칼리가 더 안좋아 보이는 상황이었다. 소란스러운 목소리와 다투는 소리가 창밖을 넘어 들렸는지 마을사람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무슨 일이 난거냐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사이비가 한적한 동네 하나를 장악하는 것쯤은 흔하고 널려있는 사건 중 하나였다. 그리고 호드는, 사람의 마음에서 주는 불안을 알고있었다. 그것이 주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것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기에 그들의 당장 눈앞에 놓인 구원과 무조건적인 믿음이 주는 평안이 얼마나 안온한지도 잘 알고있었다.



"Stop, 이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선은. 복귀하고, Come back."



호드의 만류에 정신이 퍼뜩 든 캘리칼리 또한 살벌하게 바뀌어있는 기류를 알아차리고는 입꼬리를 비슥하게 올리며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조롱했다. 저런 하찮은 것에 기어이 인생 전부를 다 갈아넣어야 속이 시원한 족속들이 다 여기 모여있었단 말이지, 그래? 남의 손에 제 인생 쉽게 가져다바치는 벌레들의 소굴이었구만. 한마디 한마디 골라서 내뱉는 말들이 서늘하게 그들의 심장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호드는 더더욱 날카롭게 변하는 주민들의 눈빛에 슬쩍 캘리칼리를 가려주며 그의 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중에 제대로 수사허가를 받아서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은 알지만, 호드 역시 캘리칼리가 고집을 부리는 이유도 알았다.



자선교는 그들이 오랫동안, 그것도 반년을 빠듯하게 채울 정도로 오래도록 쫓았던 사람들이었다. 자선교에 미친 부모가 아이를 팔아넘기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이비에 넘어간 사람들이 밥먹듯 하는 일이었고 그것이 진짜 구원이라며 오히려 감사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그래도, 아이들 납치에 강제로 노역까지 시키는 것, 그중에서도 대들었던 몇명이나 이탈했다가 다시 잡힌 사람은 불법어선으로 팔아넘기는 것도 흔했다. 이게 나라인가, 이게 자신이 살고있었고 이제껏 몰랐던 배후인가 싶어 여러모로 충격받았었던 첫날을 호드는 기억했다. 장장 1개월하고도 3주가 넘어가는 시간만에 겨우 다시 잡은 꼬리였고 눈앞에서 확실한 증거까지 발견할 수 있는 자택까지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증거를 두고 그냥 넘어가겠는가. 이해는 한다만 호드 역시도 그들이 불안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고, 고양이보다 더 날카로운 살쾡이 같은 것들에게 뭐가 있을지 몰라서 불안했다. 그로인해 자신과 캘리칼리가 위험해질까봐, 지금도 눈에 핏발을 세우고는 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와 노역하는 소리가 들린다며 화를 내는 캘리칼리를 막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가벼운 실랑이였다, 그리고 사고였다. 막아섰던 호드가 실수로 몸을 트는순간, 캘리칼리가 앞으로 넘어졌고 호드는 자신이 들었던 것이 맞나 충격에 휩싸여 급하게 넘어진 캘리칼리를 잡아챘다. 그리고 그를 잡은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 호드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Oh My God,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했고, 예상조차 안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쪽 형제님은 과격했던 형제님과 같은 생각이 없어보이는데... 보내줄때 가시는 걸 추천드리지요."



여전히 나긋하고 따듯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토록 음흉하게 들리는 것은 아마도 그가 사람을 해치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호드는 떨리는 눈으로 교주의 손에 쥐어진 총과 발사된 총알,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박혀 무너져버린 캘리칼리를 붙들고 애써 풀어지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피가 후드득 떨어져 그대로 호드의 무릎을 타고 내려갔다. 당혹감에 간신히 빠져나온 말은, 구급차를 불러달라는 애원이었다. 그마저도 들어주지 않으며 자신의 뜻에 거역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냐며 그럼에도, 생각이 달라 아쉽다는 말을 한 교주와 그에 동조해 누구 하나 핸드폰을 꺼내지 않는 광경, 호드는 소름이 돋았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눈앞에서 총이 격발되었는데, 인간이라면 마땅히 반응해야할 일에 반응하지 못하는 흐리멍텅한 눈동자들, 결국 호드는 캘리칼리를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돌길과 포장되지 않은 길들을 넘어 간신히 달려가는 그의 다리가 휘청거리면서도 똑바르게 다른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목으로는 목청껏 구급차와 경찰차를 불러달라, 사람이 죽어간다며 외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넘어질 뻔한 다리와 후들거리는 걸음을 애써 놀리며 간신히 도착한 다른 동네에서야, 사람은 피갑칠을 한 그들을 발견하고 비명과 함께 경찰과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겨우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는 심장근처에 맞았고, 오래시간이 흘렀으며 지혈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 확답을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남기고서 수술실로 급하게 뛰어들어갔다. 뒤늦게 몰려온 형사 3팀과 동료경찰들에게 둘러싸여진 호드는 가쁜 숨을 조절하며 자리에 앉는다. 수술실 앞에서, 그가 할수 있는 유일한 것은 기도와 절망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구급차를 불러주었다면, 자신이 조금 더 잘 막아보았다면, 아니 처음부터 수사를 나갈 때 한명만이라도 더 데리고 갔다면, 수많은 후회와 가정들이 그를 좀먹어갔고 결국 마지막에 닿는 후회는 내가 조금 더 빨리 달렸다면. 하는 자책감이었다.



이내 의식없이 중환자실로 옮겨진 캘리칼리의 곁을 호드는 밤새워 지키며 남은 후회들을 끼워맞추고 있었다. 자신이 하지 못했고, 할수없었던 일에 대해서 탄식했고 캘리칼리의 섣불렀던 판단과 성급했던 행동에 대한 잘못은 지워지고 있었다. 하다못해 총을 쏘았던 교주에 대한 후회까지도. 조금 더 말을 유하게해서 설득했다면 무사히 빠져나가게 해주지 않았을까, 웅얼거리는 말들에 캘리칼리가 한심해하며 뒤에서 말을 붙인다. 여전히 삐딱한 자세였다.



'내가 저번에도 말했었는데-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벌어진 상황에서 가장 최악의 판단은 자책이라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는걸. 이것봐, 나 지금 멀쩡하게 서있잖아?'



비록 닿지는 못했지만. 캘리칼리는 눈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호드의 어깨를 두드린다. 이봐, 안들려? 네 잘못이 아니라- 손이 부드럽게 호드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그의 말은 완성이 되었을 것이다. 캘리칼리는 충격에 휩싸여 어리둥절해하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다시 호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두드려보려고 했다. 마찬가지로 그대로 스쳐들어가는 자신의 손을 보며 경악하고, 호드의 시선을 따라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그를 건드려보려고 시도해보았을 것이다.



어라, 원래 이게 이렇게 어깨를 두드려서, 주의를 끌고.. 둔탁한 감각이 느껴지고 그래야하는데 어라? 의문점과 당황스러움이 섞인 중얼거림을 입밖으로 흘러보내고 있을무렵 그의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린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맞습니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정확하게 부르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은 병원이었다. 캘리칼리는 의사라는 판단에 환하게 웃으며 돌아보았다가 온통 새카만 옷들만을 입은 남자를 보고 얼굴을 보기좋게 구겨버렸다. 병원에서 올블랙이라니 센스도 예의도 없는 남자였다. 게다가 그렇게 자기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면, 부르면... 기분이 나빠지고 엄청 찝찝해지잖아, 투덜거리며 불만사항들을 입안에서 굴리는 사이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새파란 눈동자를 어둠속에서 빛냈다. 다시한번, 캘리칼리 데이비슨, 맞습니까, 이번에는 확실하게 답을 재촉하는 물음이었다.



맞는데, 뭐요? 다소 까칠하게 나온 답변이었지만 신원확인에는 충분했는지 남자는 깊게 덮어쓰고 있던 중절모자를 벗는다. 옳게 찾아왔다고 묘한 미소를 지은 그의 입가에 낡은 세월들의 흔적이 보였다. 사람좋아보이는 미소였다, 내내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왈칵 털어놓게 생겼다고 생각하며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고있는 사이 차사가 입을 연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술시 일경에 사망하였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대가 보내오고 살아낸 생애들에 값진 가치를 있었기를, 매끄럽게 흘러나온 인사말에도 성격좋은 그가 답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앞서 발언한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흘려들을 수 없었던 그 단어, 사망死亡, 캘리칼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복잡하게 얽히거나 사회적으로 정의내려져있는 수많은 단어들중 하필 그 말만큼은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그러니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뒤졌다는 말이 아닌가? 결론에 도달하자마자, 캘리칼리의 우렁찬 목소리가 차사의 귓가를 사납게 때린다.



"안돼!!"


분명 차사에게는 더이상 고막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텐데도 무언가 분명 찢어진 것 같다고 느끼며 얼얼한 귀를 만지작거렸다. 이토록이나 우렁찬 목소리라니, 죽었다며 우울해하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안돼, 안돼. 나 아직 할일이 많다고? 그 빌어먹을 놈을 드디어 합법적으로 두들겨 팰, 아니 취조할, 이게 아니라.. 감빵에 보낼 귀한 기회였단 말이다! 게다가 내가 얘 하나 잡자고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그놈 못잡으면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또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해줬는데 이렇게 가는건 억울하지!! 게다가 나름 경찰이고, 나름 형사인데 총맞아 뒤졌다고 하면 내가 염라 앞에서도 고개들 자신이 없어, 쪽이 팔린다 이 말이야. 으응? 그러니까 좀 봐주면 안되겠나? 최소한 내가 걔 하나만 잡게해줘, 으응? 아니면 나 안간다고 여기 뻐팅기고 앉아있을거다!


차사임을 알고있는데도 그런 태도라니, 푸른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깜빡거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왔을 때에 보인 반응은 꼭 처음에는 공포였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처음으로 보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경외와 드물게 약간의 혐오감, 그러나 눈앞의 이 사람은 자신이 인간이 아닌 존재이던 아니던 상관을 하지 않는 듯했다. 편견도 없고 오로지 그가 세운 선악의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어 판단하는 모습, 어떻게 보자면 이 사람이 가장 정의롭다고 할수있는 것 아닌가? 의미없는 물음을 속으로 띄우며 차사는 슬그머니 올라오는 호감을 짓누르기 위해 되려 서늘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야할 길이 눈앞에 있음에도 거부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럼 기다릴테니 천천히 오시지요, 길은 터놓도록 하겠습니다."



허나 그 역시도 풋내기 차사는 아니었다. 안간다며 뻐팅기는 영혼들이 한둘도 아니었고, 오히려 메뉴얼까지 있을 정도로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표적인 '길'을 터놓고 차사는 알아서 빠지는 방법이었다. 죽은자는 마땅히 되돌아가야할 길을 가야하는 존재, 그러나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길은 틀어앉은 망자를 달래고 허기진 이에게 달콤한 음식을 제공해주듯 너무나도 유혹적으로 망자를 끌어당겼다. 한이 많아 도무지 못가겠다며 울며불며 매달리던 혼들조차도 결국은 길의 유혹을 못이기고 끌려나갈만큼 길의 힘은 대단했다고 했다. 아는 망자의 말을 빌리자면, 향긋한 냄새가 퍼지고 온몸이 그곳으로 알아서 가라고 아우성치며 정신마저도 그 길 하나에 올라야한다고 강요당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어찌되었던 좋은 기분은 아니라며 투덜거렸었지. 고집강하던 망자도 못이기고 끌려간 길이었으니 캘리칼리 역시도 곧 길에 오를 것이라는 차사의 예상과 다르게, 캘리칼리는 일주일이 넘도록 길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버틴다면 곤란해지는 쪽은 차사였다.



길을 펼쳤음에도 순응하지 않는 혼들은 위험하다, 악령이 될 정도로 깊은 한을 가지고 있거나, 인간이 가져야할 정신력을 뛰어넘었다는 뜻이기에. 차사의 눈빛이 달라졌다. 모처럼 선하고 굳센 혼이었기에 기왕이면 순순히 응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웠으나 일은 일이었다. 어쩔 수 없겠다며 사적인 감정은 없다 사인검을 뽑아드는 차사에게 캘리칼리는 와락 달려들어 그와 몸싸움을 벌였다. 혼.. 정도는 제압할수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인검을 빼앗기고 아예 팔까지 제압당한채로 차사는 이게 어떠한 종류의 망신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스스로의 차사 자격에 대해서 고뇌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이종격투기 선수나 군인들을 데리러 가는 차사들은 몸이 엄청나게 좋거나 이능력이 하나쯤은 있더라. 물론 그 역시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차사는 미간을 좁힌다. 그는 자신의 이능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쓰고싶지 않았다, 특히나 이토록 맑고 깨끗한 영혼에게는 더더욱. 그것은 일종의 신념과도 같았기에 염라마저도 은근히 눈을 감아주고는 하는 일이었다, 사실 쓰지 않아도 워낙 화려한 언변과 나긋한 말솜씨로 지금까지도 문제없이 망자들을 이끌어오던 그였으니 따질 것은 없었지만.



"이봐 차사 나으리, 내가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놈만 잡고 간다니까? 그놈 어차피 못잡으면 수십 수백명이 고통받을텐데 그럼 지옥 완전 포화상태될걸? 내가 막아주겠다는거야, 어차피 나한테 댁은 안된다는것도 알잖아? 아니면 그동안 내가 구해준 사람들, 그것도 그쪽 말로는 '덕'일 것 아니야? 그거 전부 써서라도 내가 그놈은 꼭 잡아넣고 가야겠어."



말도 안되니 억지 부리지 말라는 경고를 남기고자 고개를 비틀어 눈이 마주친 순간, 차사는 벙긋거리던 입을 그대로 다물었다. 간절하게 바라는 눈동자, 이 영혼은 악령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차사는 악령이 아닌 혼을 퇴치하거나 함부로 해할 수 없다는 규칙까지 떠오른 차사는 눈을 그대로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패배였다.



"그.. 하아.. 알겠습니다, 일단은.. 좀.. 놓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놓아주면 또다시 저 괴상한 길 보여주거나 그러는거 아니겠지?"


"안그럴테니 좀 놔주십시오. 이건 무의식적으로 제가 해결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군요. 윗선에 먼저 보고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차사도.. 사회생활을 하는구만."



어쩐지 측은해하는 눈빛으로 돌아보는 캘리칼리를 뒤로 하고 저승의 길을 연 차사는 곧장 그대로 걸어 염라의 집무실 문앞에 섰다. 숨을 고르고, 차사복장을 점검하고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집무실 문이 먼저 열리고 그 안에서 염라는 기다렸다는 듯 빤히 그를 마주했다. 들었는데 일주일동안 하나의 혼 때문에 속을 썩히고 있다고, 싱글거리며 올라간 입꼬리에서 장난기가 듬뿍 묻어나왔다. 마치 놀리고싶어 안달이 난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표정으로 키득거리던 염라는 마침내 박수까지 치며 깔깔 소리높여 웃었다. 천하의 카르나르 융터르가!! 혼 하나에 일주일이나 소비했단 말이지!! 게다가 지금도 빈손이고!! 이런 건 <저승에 이런일이>, 같은 데에 제보해야하는데 말이야. 염라의 짓궂은 말에 차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저승에 이런일이>라는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게다가 제보해도 그런 재미없는 프로그램 볼 망자도 없을 겁니다. 투덜거리는 차사의 말에 염라는 씨익 호선을 그리고는 우아하게 의자에 기대어 고개를 까닥 기울인다. 그래서 아직도 빈손인 이유는 뭘까나, 제 1급 차사 카르나르 융터르. 풀네임에 직함까지 불리는 경우는 언제 들어도 움찔거리게 만드는 호칭이었다.



그가 쌓아온 덕을 바탕으로 제게 협상을 시도했고, 제가 제압할 수준이 아니라 보고하러 왔습니다. 융터르의 말에 염라의 눈빛이 한기를 머금는다. 차사는 무조건적으로 영혼을 인도해야한다, 그것이 너희들의 존재 이유이자 일을 하는 목적이지. 너에게 있는 이능력은 장식인건가? 다소 날카롭게 찔러들어온 질문에 융터르의 표정 역시 어두워진다. 그것만큼은, 쓰고싶지 않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고집도, 캘리칼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굳세었기에 이번에 진 것은 염라였다. 일단은 보겠다며 때아닌 추가업무에 그가 잡고자하는 인간의 서류를 훑어보던 그녀의 눈꼬리가 사납게 올라간다, 이런 쓰레기가 잘도 이승에서 활개치고 다녔군. 이후 수백명을 바다에 수장시키고 수십명을 갈가리 찢어죽일 놈이야, 악독한 놈이군. 냉정하게 그가 저지를 죄업과 여태 저지른 죄업을 바라보던 염라의 눈이 노랗게 일렁거린다. 더이상 저승의 문제가 아니다.



염라의 입밖으로 나온 뜻밖의 말에 융터르가 고개를 들자, 염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서류를 쏘아보았다. 잡아야한다, 더이상은 이러한 죄업을 늘리지 못하도록- 헌데 우리는 이승의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고 마침 너의 망자가 그자를 잡기를 간절히 바라니 우리 거래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뱀의 혀처럼 유려하게 뻗어나온 '거래'라는 단어에 카르나르는 헛웃음을 지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그 무작정 선하기만 한 호쾌한 혼이 염라의 마음에 제대로 든 모양이었다. 그자가 멀쩡히, 다른 인간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온전하게 쓰레기 녀석을 잡아넣는다는 조건으로 네가 돕는 것이다. 어차피 네가 수거했어야할 영혼이니 공평하고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어찌 생각하나, 자애로운 척 손을 내미는 염라를 잠시 미운 눈으로 쳐다본 카르나르는 곧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겠습니다.



옳지,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의 제안, 아니 명령을 듣는 융터르를 쳐다본 그녀는 곧 시선을 돌려 모니터로 주의를 돌렸고 이내 어느새 불어난 일거리에 피곤한 사회인 같은 표정을 지은채로 나직한 욕설과 함께 일더미로 스스로 걸어들어갔다. 그녀의 집중을 깨뜨리지 않도록 조용히 물러난 융터르가 병원에 도착해서 본 광경은 신이나서 유령인채로 할수있는 모든 것들을 하고있는 캘리칼리였다. 간호사 옆에서 그녀의 펜을 탐내기도 하고 쉴새없이 조잘거리다가 병원장의 진열장에 놓인 골동품을 빤히 쳐다보며 이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입수를 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그러한 사람, 삶에도 죽음에도 동일한 모습이라니 어떠한 의미에서는 참으로 한결같이 대단한 영혼이었다. 융터르가 기척을 내자 병원장의 진열장에서 이건 페루의 어느 동굴에서 가져왔을 것이라고 확신하던 말을 끊고 방긋 웃으며 반긴다. 죽음을 거두러 오는 차사에게는 결코 짓지 않는 미소였다.



"왔는가! 어때, 내 제안은 받아들였고?"



자신이 쌓아온 덕이 모자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선행에 대해서 겸손해하지 않지만 과시하지도 않는다. 융터르는 염라가 이 영혼을 마음에 들어했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여러 조건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자네는 늘 말을 어렵게 하는군, 어떤 조건인데 그래? 저승과 이승의 구분은 엄격한 법이지요, 당신은 이미 죽은자, 그러니 망자의 영역에 들어 이승의 사람들에게 말을 전할수도 함부로 힘을 쓸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조력 및 협력은 저, 차사 카르나르 융터르가 대리하여 행할 것이며 범인 '서래구'를 잡는다면 그대는 일절 군말없이 차사를 따라 저승의 인도를 받는다. 이게 조건입니다. 그러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딱잘라 그리하겠다는 말에 가져왔던 염라의 '계약서'에 사인이 되어지고 머뭇거리던 융터르는 은근히 캘리칼리를 가게 바라보았다. 분명 저승가서 자신과 똑같이 부려먹힐 미래가 훤히 보이는 듯했다.



사서 고생하는 종이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캘리칼리가 푸하하, 경쾌한 웃음을 터뜨린다. 막힌 것이 한번에 터지는 듯 듣는이의 속까지 훤하게 펼쳐 터뜨려주는 웃음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긴하지, 그래도 뭐 재밌으면 된거지. 그나저나 오래전부터 차사역할을 했나봐? 말이 굉장히 옛날 것 같은데? 차사의 과거를 알고자 하지마십시오, 계약이나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군요. 떼잉- 딱딱하게 굴기는, 죽은사람하과 대화를 나누는 일도 흔치 않은 경험중 하나지, 아하하. 그래, 내가 하는 말이 산 사람한테는 안들린다고 했고, 내 말 전부 댁이 전하게 될테니. 우리 파트너인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어놓은 선을 불쑥넘어들어오는 말이었다. 파트너, 판트너.. 짝이라는 뜻이었지, 그가 내뱉은 단어의 뜻을 헤아린 카르나르의 눈빛이 깊었다. 짝이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이질적인 능력까지 가졌으니 더더욱 안되는 말이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가시지요. 애써 찌푸리며 흐려진 선을 다시 긋는 융터르를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캘리칼리는 손을 번쩍 내밀었다. 이제 파트너니까 제대로 소개하지, 나는 형사 3팀의 캘리칼리 데이비슨, 이라고 한다. 기이한 영혼,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를 흘겨보았다가 그대로 한숨과 함께 손을 잡는다. 좋던 싫던 둘은 결국, 까라면 까야하는 부하이기도 했으니. 카르나르 융터르, 입니다. 이름 한번 이국적인걸, 나 역시도 흔치않기는한데! 그럼 우선 저기 널브러져있는 친구부터 깨우자고, 응? 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여전히 미동없이 깨어나지도 않는 캘리칼리에게 엎어져 자고있는 호드가 있었다. 안타까워, 곧은 심성에 세상을 바꿀힘까지 있지만 그렇게 높은 자리는 무겁다 사절하고 소소한 도움으로 만족해하고 있으니- 중얼거리며 저도 모르게 호드의 운을 읊었던 융터르는 고개를 저으며 손을 뻗었다. 바라는대로, 그를 깨워야 무언가가 진행될 것이라는 짐작이었다.



"...Who..?"



반 정도는 잠에 취한 얼굴이었지만 반은 형사라고, 기척에 예민해져 깨어난 호드였다. 눈앞에 보이는 낯선 남자의 정체에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무렵 캘리칼리가 불쑥 입을 열어 어서 자개소개와 함께 사정을 설명해달라 재촉했다. 묘하게 신경에 거슬렸으나 그럼에도 바란다면 해주어야 하는 것이 계약의 내용이었기에, 융터르는 한숨과 함께 손을 내밀어 여전히 어리둥절한 호드에게 소개와 사정을 설명했다.



"저 앞에 뉘인 이의 한이 깊어 도와주게 된 차사, 카르나르 융터르라 합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그는 저승의 염라와 생전에 쌓은 덕을 담보로 계약을 하게 되어 이번 사건의 범인 서래구를 잡고나서야 승천하겠다 하여 이리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신세지게 되겠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보통의 사정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상황에도 호드는 몇번 눈을 깜빡일 뿐 전달받은 말을 천천히 곱씹으며 고민에 잠겼다. 그러니 정리하자면 캘리칼리, 선배님은 죽었으나 혼으로 남아 여기 있다는 것이고 서래구를 잡아 감방에 넣으면 비로소 승천하시겠다, 계약을 맺었다는 말이군요. 그리고 그걸 돕고자 차사, 융터르님이 오셨군. 표정으로는 소설쓰냐는 비웃음이 서렸지만 의심은 하는 표정, 캘리칼리는 그러한 믿음에 신이 났는지 융터르를 보채서 설득하라 일렀다. 캘리칼리와 호드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을 주르륵 나열하고 저승의 것들을 분별해 읽어주는 모습에서 차사라는 믿음이 확신이 되자, 호드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졌다. 아직 죽지 않고 서래구를 잡아 도와줄 수 있다는 희망과 그것으로 끝이 날 캘리칼리와의 인연, 그리고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표정이었다.



선한 혼이다. 착하다못해 멍청할 정도로 세상을 끌어안아줄 사람들이었다. 융터르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그들 앞에서 초라해지는 스스로를 잠시 비판했다. 죽었으나 아직 곁에 있는 캘리칼리 덕분인지, 호드는 금새 활기를 되찾고 스스로 이 사건을 해결해내겠다 호언장담했다. 팀장은 그가 가졌을 상처를 가늠했는지 아무말없이 허가해주었고 덕분에 의심없이 형사팀에 합류하게 된 융터르는 그들을 저승의 방식으로 돕기 시작했다. 우선은 그가 다시 종적을 감추어버렸으니 찾기 시작하는 것부터, 탐문수사를 이어나가겠다는 호드의 말에 캘리칼리가 눈썹을 들어올린다.



"가만, 나는 영혼상태이니 이곳저곳 다 둘러볼 수 있지 않나? 그럼 내가 더 찾기쉽겠군. 그놈은 내가 찾는다고 전해줘. 그리고.. 대신 증거와 소문들을 수집해달라고 말이야, 기껏 힘들게 잡아와도 증거불충분이면 싸그리 풀려나는 게 이 나라의 더러운 법이잖아? 증거만 잘 숨기면 무죄,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서래구는 캘리칼리, 그가 찾겠다고 하는군, 그리고 증거와 소문들을 수집해 정식으로 영장발부를 할수있도록 도움을 달라고 전해달라는군. 무의식적으로 저승이나 이승이나 똑같다고 생각되는군요."



"...Oh, 증거.. 그렇지요, 그것 때문에... 무리하셨지요.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확실히, 증거들을 모아 빼도박도 못하게 옭아매겠습니다. 반드시."



증거에 얽혀 죽어버린 캘리칼리가 생각나서 그런것인지 호드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찾아내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신중하게 여러부서에 연락해 증거모집에 도와달라는 전화를 돌리는 것을 보며 캘리칼리는 히죽 웃었다. 흐뭇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저렇게 열심히 일하니 자신도 힘내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캘리칼리에게 융터르는 급하게 떠나려는 손을 붙잡았다. 뭐냐며 퉁명스레 묻는 캘리칼리는 호드의 열정에 본인도 나서서 해야하지 않겠냐며 따져물었다. 설마하니 자기가 죽은 혼이라 융터르의 곁에서 떠나지 말아야하는 조건이라도 있냐 몇번이나 물어보고서야, 융터르는 간신히 답을 찾아냈다.



악령도 원귀도 많으니 위험하다는 답이었다. 캘리칼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자신이 어디가서 당하고 다닐 상이냐며 호쾌하게 웃어젖혔고 융터르는 그 말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확실히 선악에 치우쳐져있는 혼의 힘이었으니, 이만큼이나 선하다면 그만큼이나 악한 영혼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겠지, 그리고 이 마을, 넘어서 아직까지는 그만큼 나쁜혼은 없었다. 그러니 안전하다고 할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관할에서 사람이던 영혼이던 다치는 것만큼은 싫은 융터르의 걱정이었다. 머뭇거리던 융터르는 결국 한숨과 함께 제 정장에 달린 술을 집어 끊었다. 검은색의 술실에 검은보석, 그리고 옥색의 산호까지 단순해보이는 취향이었지만 훌륭한 술이었다. 그의 힘이 담겨있으니 유사시에는 쓰라며 쥐어주자 예쁘고 고운 술이라며 자신이 살아만 있다면 컬렉션 목록에 집어넣었을 것이라 유쾌하게 농담하고는 뒤돌아 그대로 사라지는 캘리칼리였다.



그 뒤로는 순조로웠다. 매일 밤마다 술을 받아가고, 전국을 샅샅이 뒤지며 서래구를 찾아다니는 캘리칼리와 그를 잡아넣을 합당한 명분을 찾는 호드,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서 방관자의 역할로, 그러나 때때로 도움을 주는 카르나르까지 기묘한 팀이었다. 남들의 눈에는 홀로 일하는 호드밖에 보이지 않았겠지만. 캘리칼리가 이번에는 강북쪽을 뒤져보겠다 말하고 난 후 사라지고, 점심시간이 되어 근처 식당에 간 호드와 융터르였다. 어디서나 모난 돌은 상처나기 쉽다고 그 좁은 식당에서도 호드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팀원을 잃고 미쳐버려 서래구를 목숨걸고 잡고싶어한다는 말이었다. 저런 소문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건지 결국 입이 모든 화를 부른다며 눈을 찌푸린 융터르와 다르게 호드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화나지 않습니까? 당신을 함부로 평가하고 멋대로 동정을 주는 사람들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예? 아뇨,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저런 말들에 시간과 마음을 쓰기에는, 바빠서."



남이 하는 말에 하나하나 신경쓰는 건 정신건강에 안 좋고, 무엇보다 거슬리지 않냐며 국밥을 시원스럽게 퍼먹는 모습에서 융터르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런가, 저런 말들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괜찮은 세상이었다. 후다닥 국밥을 입에 넣고는 다시 cctv관리실에 다녀와야겠다는 호드가 먼저 식당을 떠나고 융터르는 식어버린 국밥을 앞에 두고 멍하니 그가 남겼던 말을 곱씹었다. 자신의 이능력을 가지고 무어라 하는 말들은 많았고, 동정하는 이도 혐오하는 이도 많았다. 그런 말들이 하나둘이라면 신경쓰지 않지만 다수라면 들어보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신중히 생각했던 결과가 이것인가, 싶어 조금 허무하기도 했다.



그의 고민이 길어지는 사이 새벽 1시부터 강북을 샅샅이 뒤지고 온 듯한 캘리칼리가 지친기색으로 되돌아온다. 남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피곤한 낯으로 돌아와 영혼상태일 때의 가장 안 좋은 점은 잠을 잘 수 없는 것이라며 일갈한 캘리칼리는 정신적 피로는 어떻게 풀어야하는지를 물었고 융터르는 빙긋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사실 그가 생각한 것처럼 세상은 복잡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식은 국밥을 앞에 두고 한 숟가락도 들지 않는 그가 수상쩍었는지 아니면 사연이 깊은 이로 짐작했는지 사장이 슬그머니 다가온다. 국밥, 안 드실라우? 사장의 물음에 융터르는 고개를 젓고 국밥을 데워줄 수 있겠냐 요청했다. 그저 사연많은 이로 짐작했는지 사장은 군말없이 국밥을 데워주었고 그 사이 캘리칼리는 차사도 배고픔을 느끼냐며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을 보냈다. 융터르는 고개를 젓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밥을 그대로 맞은편에 둔다.



"..당신 것입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 망자가.. 밥도 먹을 수 있었나?"


"제삿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죠,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융터르의 말에 혹한 듯 캘리칼리의 눈빛이 슬그머니 국밥으로 향한다. 자글거리며 품고있는 열기를 드러내고 있는 뚝배기, 그 안에 담긴 모락한 흰쌀밥과 그 위에 송송하게 썰린 파, 야채들로 알싸하게 풍기는 향기까지 확실하게 맛있어 보였다. 자신이 수저조차도 들지못하는 망자의 상태라는 것만 아니라면, 저 다른 테이블의 형사들처럼 오늘의 근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잠복은 또 얼마나 빡셌는지에 대해서 토론하고 한풀이하며 그럼에도 내일도 오후도 이렇게 살아갈 자신에 대해서 얘기했겠지, 싶었던 아쉬움이 뒤늦게 밀려왔다. 미련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미련을 만들어주는군. 캘리칼리의 청안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융터르는 빙긋 웃으며 수저 한벌을 국밥 옆에 놓아둔다.



망자는 잠을 자지 않고 정신의 피로는 쌓이기만 하니 어떻게 풀지 제게 하소연하지 않았습니까, 한번 드셔보시지요. 누가 정성스레 기도하고 올려준 제삿밥은 아니지만 식당주인의 마음씨가 고우니 맛있을겁니다. 분명. 생전에도 그러지 않았냐 묻는 융터르의 위로가 조금은 마음에 닿았는지 캘리칼리는 머뭇거리는 손을 뻗어 수저를 들었다. 투명하게 투과되어버렸지만 분명히 잡히는 수저 한벌, 놀란 눈으로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캘리칼리에게 융터르는 흐뭇한 표정을 지어 해사하게 웃었다. 그것보십시오, 한번 믿어보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밥은 먹을 수 있습니다.


경계하던 손으로 밥을 들어올리고 마침내 한입을 입에 넣은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었다. 우는가? 싶어 다시 보았으나, 어느새 떨리는 눈동자는 굳게 빛나는 눈빛으로 바뀌어있었다. 미련은 미련이고, 이미 죽은 것은 죽은 것, 지나간 일에 매달려 후회하고 울며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끌어안고 사는 건 이쪽에서 사양이라며 도리어 공고해지고 더욱 단단해진 눈빛에 융터르는 입을 다물고 그의 용기와 의지에 찬사를 보냈다. 이러한 자라면 자신의 물음에 답을 주지 않을까, 우물거리던 융터르는 결심을 하고 캘리칼리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새 활기차게 반이나 비워버리고 있는 캘리칼리였다.



"그. 제가.. 당신한테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망자들 관리하는 차사도 모르는 게 있단 말이지!"



우쭐거리는 모습이 얄밉기라도 하면 미워할텐데, 신기하게도 그의 행동은 밉기커녕 싫지 않았다. 도리어 부러움마저도 느껴질만큼 그의 행동은 도리어 뒤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사실 별로 좋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사라고 하면 가지는 능력인데, 대부분은 인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하나씩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제 능력이, 안 좋은 편이라 염라께 허락을 구하고 안쓰고 있습니다. 인도에는 지장이 없어서 괜찮지만 사실 차사의 능력은 무의식이 반영이 된 결과입니다.


그래서 한명이라도 더 많이 인도하겠다고 생각했던 자는 더 많은 손을 불러오는 이능이 있거나, 더 다정한 목소리로 많은 이들을 위로해주겠다고 한 이는 홀리는 목소리를 가지게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정신을, 조절하는 이능입니다. 이리 오라하면 이리오게 되고, 저리가라 하면 저리가게 되어버리는 능력이지요. 망자임에도 혼이 빠진채로 이리저리 제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보기가 싫어서 안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 이능은 차사의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라, 저는 제 무의식이... 남을 조종하고 싶어할까, 두렵습니다."



오래 쌓아온 고민이 툭 털어놓아지자 조금은 후련해진 마음이었다. 캘리칼리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깍두기를 냉큼 두개 집어 입어 털어놓고는 답을 주었다, 너무나도 통쾌한 답을. 능력은 도구이고, 도구는 그저 사용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사용될 뿐인것. 어쩌면 자네 마음이 그럴수도 있겠지만 뭐 어떤가? 나쁜 마음으로 시작된 일이 좋게 끝날수도 있는데! 뭐든 해석하기 나름이지, 아까 말했듯 많은 손을 불러오는 녀석은 사실 많은 것을 탐하고 어떻게든 손에 넣고싶어하는 탐욕에서 비롯되었을수도 있고 고운 목소리로 위로하는 것은 좋은 노래로 사람을 홀리고 싶어할수도 있는 나쁜 마음일수도 있는데. 자신에게만 너무 빡빡하게 굴지말라는 캘리칼리의 말에 융터르는 멍하니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악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던 선한 마음에서 시작되었건 능력은 능력이고, 마음은 마음이었다. 그가 아무리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고 싶다는 무의식으로 발현했어도 저승에 가기를 두려워하며 우는 불안을 달래줄수도 있고 하루바삐 이승에서 벗어나고 싶어 초조해하는 이를 달래줄수도 있는 능력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능이 밉지 않아보였다. 머뭇거리는 융터를 앞에 두고 남은 국물을 들어 마시는 캘리칼리를 다시 본다. 그 사이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허공을 쳐다보는 그가 걱정되어서인지 염려하던 이가 슬그머니 다가온다.



"저기, 혹시.. 그. 요새 힘든 일 있거나 그런건 아니지요? 그.. 실례가 안된다면 말이오, 이 밥은 누구것인지.. 여쭈어도 되겠소?"


식당주인의 조심스러운 말에 캘리칼리가 웃음을 터뜨린다. 살면서 저 양반이 저렇게 얌전히 나오는 건 처음본다며 굳세고 우왁스럽게 한국밥이나 내어주던 사람이었다고 낮게 미소지은 그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잘 먹었다고 전해주시고, 그럼 난 마저 강남 아래 지나서 싹 다시 훑어보고 오지! 우렁차게 웃고는 뭐가 그리 급한지 후다닥 사라지는 뒷모습을 쳐다보며 융터르 역시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불안해하는 식당주인의 눈빛에서 상냥함을 읽은 그가 미소짓는다. 잘 먹었다고 전해달라는군요, 제 파트너가. 국밥 2인분의 값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융터르는 까닥, 고개를 기울여 인사하고는 호드를 찾아 서로 걸음을 향했다. 벙쪄있는 표정의 사장을 두고 서에 도착한 융터르는 쉽게 호드를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증거를 찾았다며 환한 낯으로 저에게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드디어 실질적인 증거를 잡았습니다, Finally! 해맑게 웃는 모습이 어린아이같이 천진난만해서 융터르는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자애롭게 웃고는 손을 뻗어 내미는 서류들을 받아들었다. 그가 기뻐하겠군요, 함께 봅시다. 회의실을 빌려 서류를 펼쳐본 그의 눈이 천천히 서류들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서래구, 그는 생각보다 더 철저한 사람이었다. 나이는 쉰 일곱, 먹을만큼은 그럭저럭 먹은 이가 탐욕스럽게 포교활동을 하고 사이비를 만든 것은 놀랍게도 열다섯이었다. 무려 30년이 넘도록 해먹은 짓거리에 썩지 않은 곳은 없었다. 게다가 꼬리도 아무리 감추어봤자 길어졌을테고, 호드는 그중 하나를 물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한 짓을.



호드가 찾아낸 증거는 인신매매와 장기밀매와 관련된 증거였다. 서래구와 거래하는 병원장과의 전화기록과 사라진 사람의 실종시기, 거래된 장소에서 발견된 핏방울과 DNA들, 전부 확실하게 잡아냈다고 웃는 호드에게 융터르는, 캘리칼리를 대신하여 칭찬해주었다. 훌륭하게 처리해주셨습니다. 사이비종교를 끌고있다는 증거까지 잡아주셨군요. 게다가 인신매매에 불법적인 일들까지 전부, 기특하십니다. 고생도 많으셨고요. 칭찬을 받아 기뻤으나 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기에 다시금 묘한 표정을 지었던 호드를 뒤로하고 융터르는 다시 서류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인근 공장에서 구해온 cctv에 낱낱이 찍힌 노역행위와 그들이 재배하는 마약류 식물까지 제대로 찍혀있는 사진, 그리고 그 공장주와 서래구사이의 전화 내역까지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근처의 공중전화에서 인신매매범과 거래한 것도, 일부러 cctv근처에서는 모자와 코트를 깊게 눌러쓰고 부러 피하는 기색까지 제대로 찍혀있는 짧은 영상까지 첨부되어 있는 고급 증거품들이었다. 벌써 그가 받을 죗값이 눈에 훤히 보인다며 깜방에서 이 정도면 50년, 잘하면 100년도 넘게 썩을 수 있지 않겠냐 희망찬 목소리로 말하는 호드의 말을 끊은 것은 냉정한 캘리칼리의 목소리였다.



"이 나라 법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거다. 아마 그토록 설치는데 뒷배가 없을리가. 그 든든한 뒷배 얻어서 몇년씩 깎아내리다보면 분명 5년정도만 빠듯하게 채울걸?"



투덜거리는 음성, 융터르는 씁쓸하게 뒤돌아 마찬가지로 시무룩한 캘리칼리에게 툭 물음을 던진다. 그 말도 전할 겁니까?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거리던 캘리칼리는 푸흐, 웃음을 터뜨리며 둘다에게 해준 말이었으니 전하면 좋겠다는 답변을 주었다. 이내 고개를 돌려 그리 쉽게 몇년씩 썩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해주자 호드의 표정이 와락 구겨진다. 그건 말이 안된다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짓된 믿음에 수십년을 던졌는데 억울하다는 말에 캘리칼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거짓된 믿음이었어도 그들이 그걸로 안식을 얻었다면 나는 그것도 믿음이라도 본다. 한순간이고 회피였지만 행복했잖아? 그래서 믿었잖아? 그럼 대가를 치르는 것도 억울해하지 말았어야지. 마땅히 그래야지. 특히 자신이 뭘 믿는지 알았음에도 벗어나지 않았다면 더더욱."



단호한 눈빛. 융터르는 그 눈빛이 문득 염라와 참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단호하지만 상냥하고 그릇된 길을 걸어버린 혼을 가엾게 여길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저 새파란 안광 가득 들어찬 서늘함이 저승의 한기와 닮아있었다. 감히 한낱 망자가 가질 눈빛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리 아끼고 예외를 두셨나, 염라께서. 혹시... 이 자, 죽으면 내 상사로 오는 건 아니겠지, 불안해진 융터르가 흘긋 캘리칼리를 바라보자 언제 정색했냐는 듯 푸하 웃음을 터뜨리는 그였다. 뭐 이렇게 말해봤자 자네만 듣고있으니 민망하구만! 그러니까 하고싶은 말은 그냥 사이비든 정식종교던 결국 믿는사람 마음이란 뜻이지! 책임지는 것도 본인이어야 하고! 캘리칼리의 호쾌한 말에 융터르는 한숨과 함께 나직하게 호드를 불러 그 말을 그대로 전할 뿐이었다. 결국 그의 할일은 캘리칼리의 말을 그대로 읊어주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던, 용기를 가지던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도 전부 그의 몫이었다. 그는 그저 행할 뿐이었고 융터르는 지켜보는 것이 유일한 일이었다.



그럼 이제 구속영장 받으러 가자! 호드의 힘찬 발언과 함께 반장에게 싸인을 받으러 가자 반장은 말없이, 준비해두었던 영장을 내밀 뿐이었다. 그들이 완전 엉뚱한 사람을 잡아와도 어느정도 용인해줄 것 같은 표정으로, 그렇게나 본인도 상처받은 표정으로 말이다. 하긴 그렇게나 소중한 사람이었으니, 융터르는 입을 다물고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자신에게는 그러한 존재가 있나, 되돌아보았으나 없었고 그렇다고 남의 자리를 빼앗아 꿰찰만큼 흥미가 있지는 않았다. 영장을 발급받은 호드의 표정이 다시금 일그러진다. 영장을 구겨지도록 붙들고, 중얼거리며 나직하게 새어나온 말은 후회였다. 이걸로 그를 구속한다면, 그래서 캘리칼리, 그의 업이 풀어진다면 다시는 못보는 것 아닌가. 그럼 괜한 짓을 하였나, 싶은 불안감과 더불어 그래도 가는 길 평안하게 닦아주는 게 동료로써 해주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 나직하게 웅얼거리는 후회들이 깊었다. 영장을 선뜻 내주었던 반장도, 그것을 승인했을 서장의 표정도 모두 하나같이 어두웠고 슬퍼보였다. 융터르는 찡그린 미간으로 제 옆에서 흥얼거리며 드디어 잡아넣을 수 있겠다 홀로 신이 난 캘리칼리를 쏘아보았다.



"....슬프지는 않으십니까? 전부 당신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있는데"


"뭐,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저승갈일이 없어지나? 죽었던 내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굳이? 슬퍼하는 건 고마워, 내가 그동안 해주었던 배려와 마음들이 가짜가 아니라고 증명된 것 같아서 기분좋은데? 게다가 형사가, 범인 잡다가 죽었어. 그래서 팀원들이 죄다 힘써서 그 사건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면 그건 형사로써 나는 호상이라고 생각하거든! 아 물론 고깝게 듣지는 말게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야."


"...됐습니다. 가지요."



그럼 안내할테니 후딱후딱 쫓아오라고! 막혀있던 것이 한순간 뚫리듯 푸하하 웃음을 터뜨린 캘리칼리의 앞장선 걸음과 그것을 한숨과 함께 안내하기 시작하는 융터르의 목소리를 따라, 호드는 운전대를 유려하게 돌렸다. 그들이 자주 잠복을 나갈 때마다 쓰는 봉고가 느릿하게 포장도로를 지나 비포장도로에 오른다. 덜컹거리며 돌부리와 정리되지 않은 길을 따르다가 그대로 정지.


캘리칼리는 혀를 차고는 융터르에게 말을 전해달라 부탁한다. 그 말을 하는 캘리칼리의 마음이 무겁게 일렁거리고 있어서 카르나르 또한 머뭇거리다가, 그러겠다고 동의했다.



"호드 씨, 캘리칼리 씨가.. 전할 말이 있다는군요. 그대로 읊겠습니다. 저 안에서 무엇을 보던 신경쓰지 말고 절대 눈 돌리지 말고, 그대로 걸어서 지하 1층을 지나, 똑같이 뭘 보든 상관하지 말고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가장 중앙에 있는 방을 찾아라. 지하 2층의 중앙방. 그곳에 그놈이 있어. 라는군요. 요지는 뭘 보든 절대 신경쓰지 말고 들키지 않게 조용히 가라는 것 같군요. 날쎄고 교활한 녀석이니 그런 걱정도 말이 되는군요. 그럼 저는 무의식적으로.. 여기서는 차사의 모습으로 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그래도 이것저것 챙겨주며 가꾸었던 복식이 한순간에 풀어진다. 호드가 챙겨주었던 목도리와 형사 3팀의 다른 인원들이 챙겨주었던 스웨터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공중으로 날리고 어느새 검은 모자에 검은 정장을 입은, 처음 캘리칼리를 데리러 왔을 때의 복장이었다. 어쩐지 기묘하게 느껴지는 한기와 서늘한 눈빛까지 그제서야 호드는 제 앞에 서있는 이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잠깐, 기다려달라며 공중에 정리된 의복을 받아 봉고에 잘 챙겨넣은 호드가 다시 돌아보았을 때 융터르는 차사임을 알아보고 몰려드는 망자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한서려 서슬파랗게 빛나고 있는 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제 옷자락을 붙들고 한번만 저승문을 열어달라, 제게도 기회를 달라 애걸하는 것을 쳐다도 보지 않는다. 캘리칼리 또한 그런 그의 차가운 면을 보았다. 옷자락을 붙들고 다시 한번 더 기회를 달라 애원하는 망자를 쳐내냈을 때였다. 무심한 표정으로 하나둘씩 뒤로 돌아 떠나게 한 그가 문득 고개를 돌려 캘리칼리를 바라본다. 그, 괜찮습니까? 뜬금없고 두서없는 질문이었지만 용케 알아들은 캘리칼리가 히죽 웃어버린다. 당연하지, 그냥 내가 범인 잡아넣듯 자네도 자네 할일하는건데 내가 뭐 할말이 가타부타 있겠어? 굳이 뭐 따지자면.. 음, 감상평이나 남길 수 있겠지. 언제들어도 참 명쾌한 답변이다. 융터르는 못이긴다는 듯 피식 웃어버리고는 중절모를 눌러써 표정을 가렸다. 그렇죠, 그래서 감상평은? 융터르의 질문에 어깨를 한번 으쓱인 캘리칼리는 허공에 앉아 고개를 기울였다. 그냥, 하는 일은 하는구나? 싶었을 뿐이지. 딱히 그런 걸로 내 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아, 파트너. 걱정말라고.


사람을 한번 나쁜 사람이라고 인식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을 되돌리는데에는 너무나도 오랜시간이 걸리지,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전부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버리네, 뭐.. 정말 어지간히도 꺼림직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야. 비효율적인 인식이로군. 그래도 독특하잖아? 그럼 된거지, 캘리칼리와의 대화에 호드는 헛기침을 하여 끼어든다. 망자의 언어로 둘이 대화를 나누시는 건 상관없는데, 이제 들어갈거라서 Be quiet. 호드의 손짓에 어깨를 으쓱한 융터르가 대답해준다. 망자의 언어이기에 살아있는 자에게는 안 들린다만, 제 배려로 호드씨께서 듣고계신 것 뿐입니다. 그래도 다물어드리지요.


어째 말투는 점점 캘리칼리의 능글맞은, 나쁘게 말하자면 뻔뻔한 것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추측을 하며, 호드는 자세를 낮춰 천천히 수상쩍은 폐가로 진입했다. 잠겨있는 문과 다르게 캘리칼리가 일러준대로, 아슬아슬하지만 적당한 크기의 창문이 있었다. 원래 이런건 불법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뭐 살면서 늘 합법적으로 살수는 없는 법이었다. 커다란 덩치와는 다르게 사뿐하게 내려선 호드는 순간 캘리칼리가 왜 그렇게나 신신당부했는지를 깨달았다. 들어가자마자 열악한 환경이 한눈에 들어찬다. 끙끙거리며 한방에 어지럽게 쌓여 잠을 청하는 사람들, 근육통에 온갖 멍들을 끌어안고 내일 하루는 좀 더 열심히 일을 해서 맞지 않겠다 다짐하는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감정이 복받쳐오른다. 화가나서 눈물이 날 정도로, 호드의 주먹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캘리칼리까지. 이승이 지옥이니 도리어 저승에서 지옥을 없애야 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조로 말했던 염라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융터르는 실감했다. 오늘 맞은 것은 일을 못해서 아니라 그냥 그의 운이 나빴고 그의 기분이 나빴을 뿐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쓸 권한은 없다. 그런 권리는 그 어느 신도 인간에게 쥐어주지 않았건만 어째서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어 그를 숭배하고 스스로 노예되기를 청하는지. 이를 악문 융터르가 고개를 돌려 폐가에 얽혀버린 망자들을 둘러본다. 사람의 일은 산 사람이, 망자의 일은 차사가 할일. 지금도 폐가의 창틀에 걸터앉아 오늘은 벗어날 수 있냐 노래를 부르는 아이와 키득거리며 미쳐 맨발로 잡초무성한 뜰을 뛰어다니는 망자들의 혼이 보였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눈을 감고 귀를 막아줄 수 있겠습니까?"



융터르의 부탁에 어렵지 않다며 순순히 이유도 묻지 않은 채로 행하는 캘리칼리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지긋한 미소를 지었던 융터르는 손을 펼쳐 망자의 길을 불러왔다. 한이 깊어 가야할 길을 가지 못했던 이들이여, 푸른실을 따라 붉은실을 따라 인연을 찾아 올라가소서. 차사의 언어로 읊는 주문에 폐가에 피묻은 손톱을 연신 박아넣고 절규하던 망자들이 일순간 융터르를 바라본다. 그리고, 악과 업으로 뒤덮여 사라졌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그대로- 원래의 모습으로. 가장 행복했던 때와 가장 찬란했던 모습으로 명랑하게 길 위에 올라 웃음소리를 내며 뛰었다. 망자의 길이 닫히고, 다시 거두어들인 융터르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짧은 말과 함께 고개를 틀어 여전히 말을 잘 듣고 끙끙거리는 캘리칼리를 건드렸다. 차사의 일은 끝났습니다, 이제 인간의 일이군요.



인간의 일, 캘리칼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호드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떨리는 눈동자지만 그럼에도 캘리칼리의 부탁대로 기척없이 참극속을 지나가며, 어떠한 면에서는 또 닮았군. 무심코 그런 생각을 입에 담으며 융터르 역시도 호드를 뒤쫓아 몇걸음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명색이 형사였고, 흥미로 시작해버린 자신과 다르게 진짜 정의감으로 형사일을 시작한 호드였다. 그런 그가 이런 참상을, 그냥 넘어가는 것은 생지옥을 걸어가는 것과 똑같으리라. 캘리칼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호드의 뒤를 쳐다보았다. 몹쓸 짓을 했어, 여러모로.


끙끙거리는 소리들을 지나 1층에서 드디어 지하 1층의 계단이었다. 다행히 보초는 꼬박거리며 잠에 취해있었고, 윤기가 흘렀으며 살도 포동하게 쪄있었다. 몇몇 놈들에게만 권력을 쥐어주고 마치 자신은 왕이라도 된 것마냥 굴었겠지. 가증스럽다. 캘리칼리의 얼굴이 구겨진다, 이런 꼴은 저승에 없을테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보려나, 어림짐작하며 문득 떠올린 자신의 미래에 캘리칼리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은 입가를 가렸다. 다음이라니, 망자에게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그럼에도- 한은 다 떨쳐내고 가게 해준다니 이것마저도 감사해야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다시 들어올렸을 때에는 전보다 더 참혹한 광경에 이를 악무는 호드가 서있었다. 캘리칼리 역시도 먼저 와서 보았으나 그만큼이나 화가났고 분노했었다. 다만 그의 경우 이러한 참상을 만들어낸 주범에 대한 분노와 혐오였다면 호드의 경우는 그들을 가엾어하고 구원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먼저였달까.



진짜 최악이네, 어렵게 흘러나온 말을 툭 내뱉고는 캘리칼리는 한숨과 함께 먼저 서래구가 있는 곳에서 기다린다며 그들을 스쳐 앞서걸었다. 미끄러지듯 흘러 사라진 캘리칼리의 뒷모습과, 호드의 뒷모습. 융터르는 그들을 하나하나 다 눈에 담고 핏발 선 눈으로 분노하는 호드를 바라보았다. 염라의 마음에 들만큼 선한 영혼이기는 하나 그만큼의 강단과 냉정함은 없다, 확실히 캘리칼리 그와 닮아있는 영혼이기는 했지만 이쪽이 좀 더 열정적이고 깨끗하달까, 영혼의 질을 가늠하고 있는 융터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드는 고개를 돌려 안을 쏙 빼먹고 그대로 껍질만 남은 몸뚱어리를 던져쌓어올린 시체산을 쏘아보았다.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융터르는 입을 열어 호드를 불렀다.



"호드씨,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더이상 억울하게 한이 남아 머물게 된 악령도 망자도 없습니다. 제가 오자마자 그들을 모조리 저승으로 보내줬습니다. 제각기 다른 얼굴빛을 하고서.. 그래도 이승을 떠났습니다."



울듯한 표정으로 돌아보고선, 머뭇거리다가 결국 다행이라며 힘없이 속삭이고 마음을 굳게 다져 다시 걷는다. 융터르는 순간 해사하게 풀어진 표정을 떠올리며 픽 웃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자신도 이 대책없이 착한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이들이 나중에 죽어 가야한다면, 인도자로써 매우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이런 작은 말에, 거짓말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믿어 다시 힘차버린 발걸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융터르는 한숨을 쉬었다.



"서래구, 현시간부로 당신을 장기밀매, 인신매매와 강제노역 등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변호사를 쓸 돈이 없다면,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



틀에 박힌듯 주르륵 대사를 읊는 호드의 눈시울이 붉었다. 얼마나 저 말을 하고싶었을까, 저 말을 내뱉고나서 흩어져버릴 카르나르와 캘리칼리를 후회했을까, 묻고싶은 말은 많았지만 답을 들어도 그것이 정답이 될수는 없었기에 융터르는 질문들을 삼켰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차가 오고, 정식으로 수사팀이 들어와 그 참상들을 보고 언론에 보도되고.. 재판을 받으며 검사와 변호사들이 날선 목소리로 죗값을 흥정한다. 그리고 캘리칼리의 예상대로, 서래구는 그가 예측했던 것보다 더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고작 30년, 호드는 자신이 고작 30년 썩게 하려고 캘리칼리의 목숨을 밟고 온 것이 아니라며 화를 냈지만, 이미 내려진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 도리어 지은죄보다 더 처벌이 무겁다며 찡찡거리는 어느 하찮은 벌레의 목소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저런 것도 인간이라고, 저런 것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서 사회의 법률로 심판하는 것이 옳은가? 재판이 끝난 이후 언제나처럼 캘리칼리의 병실 앞에 선 호드의 눈빛이 한순간 흐려진다.



"에헤이, 그런 마음 품는거 아니야!"


"...? 캘리..칼리.. 선배님?"


"엉, 나다. 이것 참 이렇게 나오니까 엄청 멋쩍은데..."



불쑥 들린 목소리는 분명 그의 것이었다. 당혹감에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곳에는 꿈에도 그리는, 그가 서있었다. 선배... 호드의 말에 캘리칼리가 활짝 웃으며 손을 벌린다, 그래 임마!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려는 순간 혹시 자신이 귀신을 보는 특별한 능력이라도 각성했나 자신의 몸부터 먼저 걱정하는 호드에게 캘리칼리는 바락 화를 내며 감동이 일초도 가지 않는다며 성을 냈고 호드는 픽 웃어버리며 감동이 오래되면 지루하다고 말한 건 선배 아니었냐며 응수했다.


캘리칼리가 돌아오게 된 사연은 이러했다. 사실 서래구의 재판이 시작되기 하루 전, 그들은 이미 저승에 다녀왔었다. 염라의 부름으로 뭐씹은 얼굴로 앞장선 융터르와 함께. 망자가 걸어야 할 길이 아닌 차사의 길로 가는 망자는 처음이라며 얕게 투덜거린 융터르와 그가 도착한 곳은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어느 건물이었다. 저승도 딱히 이승과는 다를바가 없었지만, 사람이 아닌 것들이라는 건 그 안을 돌아다니는 요괴와 신령들, 그리고 귀신들을 보면 쉽게 알수있었다. 언제까지 올라야하냐는 캘리칼리의 물음에 옥상까지 올라가야한다며 숨을 몰아쉰 융터르가 문을 열었을 때에는 쾌청한 노을바람을 맞으며 짧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염라가 있었다. 내 모습은 상상한대로 보인다던데, 자네 눈에는 어찌보이는가? 염라의 목소리는 기이했다. 사람처럼 생겼음에도 사람이 아닌 것ㅡ 융터르가 그렇게 쩔쩔맸던 이유를 알것 같았다. 알아서 기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환생하여 다시 되돌아오고 또 떠나가고.. 그렇게 이승에서 굴러 마음껏 더럽혀졌다가 종내에는 못 돌아오기도 하지만 그런 가여운 혼마저도 기억해야하는 외로운 자리, 그게 바로 나 염라일세, 그래 자네 눈에는 내가 어찌 보이나? 저 재미없는 차사의 눈에는 처음에 괴물로 보여서 인간의 모습으로 끌어올리는데에만 엄청난 시간을 쏟았지. 참 신통하게도 괴물의 모습이라면서 아무렇지 않아하는 것이 재미있었어. 염라가 수다스럽게 먼저 입을 열어 분위기를 풀었고 캘리칼리는 빙긋 웃으며 그러냐고, 염라의 말에 동조하며 그녀의 의도대로 이끌려주었다. 어찌되었건 자신이 망자라면 혼의 총감독관에게 밉보여서 좋을 것은 없지 않나, 게다가 캘리칼리는 남들의 호의를 사는 방법을 잘 알고있었다.



착한아이군. 이야기가 길어지자, 염라는 아쉬운듯한 표정으로 아까의 풍경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하늘을 쳐다본다. 매일매일, 변하지 않는 노을만을 간직한 하늘이라니,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다음으로는 지루할 것 같았다. 하늘의 묘미는 시시각각 변하는 색과 구름들이었건만. 캘리칼리의 생각을 그대로 읽은 듯 염라가 불현듯 웃음을 터뜨린다. 옳지, 하늘은 그러한 맛이 있어야 하지. 그러지 않은 이유는.. 이승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시키기 위함이라고 할까나. 염라의 말에 그러냐며 중얼거린 캘리칼리는 여전히 그녀와 비슷하게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염라는 그런 그를 탐스럽게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여전히 참으로 아쉽단 말이야, 이대로 그냥 죽어서 내 후계나 삼으면 딱일텐데, 그럼 저승은 나만큼이나 올바르고 현명한 염라를 가지게 되는거고 나는 드디어 몇천년만에 쉬는거고, 게다가 덤으로 표정 구겨진 융터르, 자네도 볼수있는거고! 이거 일석삼조이긴 한데.. 한입으로 두말하는 염라는 싸보이기도 하고 언약도 엄연히 약조니까.....


하지면 역시 아쉽긴 아쉬워. 이 자리는 너무나도 고독하거든. 염라는 모두가 잊어도 기억해야하는 것들이 많은 존재거든. 이를테면 저승도 이승도, 회귀와 환생도 오르지 못한채 버려져 자신의 업들을 끌어안고 있는 자들을 위해.. 허무로 간다던가, 종종 그러한 혼이 있다. 이것저것 더럽혀져 도무지 씻을 수 없는 업을 어떻게서든 끌어안고 연이라고 울부짖는 혼들이 말이야. 그들에게는 그 얽혀버린 것이 전부인 삶이었기에.. 나는 그들에게서 업을 빼앗을 수 없어. 가진 이가 그것을 연이라고 칭한다면 연이 되는 것이겠지...


언제나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리면 수십개의 눈동자가 나를 책망하고 수백개의 손가락이 나를 탓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옳다고 믿는다면 옳으니 따르라고 윽박지르며 설득하는 것이 바로 이 자리여야 한단 말이지. 그리고 나는 너무 오래도록 이곳에 있었어.. 오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 만일 내가 염라가 되기 위해 생겨난 존재가 아니었다면 벌써 고이고 고여 저 아래 지옥에서는 절규하는 소리에 귀가 찢길 것이지. 음? 너무 무서워하지는 말게. 자네가 해야할 일이 될수도 있어. 내 예상대로 자네 삶이 흘러가고, 자네에게 무슨 큰일이 생기지 않고 이대로 저승에 있는다면 말이지.


융터르, 그리보지말게. 언약이어도 약조는 약조였어. 자네와의 거래대로 일백일안에 잡아냈으니 마땅히 나도 보상을 내려야겠지. 이능을 거두어달라 청할줄 알았더니 그의 귀를 청할줄은 몰랐네. 뭐 상관없지. 자네 하나의 혼 때문에 저승 십왕들이 모조리 한자리에 모여서 한시진이 넘도록 회의하는 것은 처음일거야, 하하하. 아닌가, 한 200년 전쯤에도 있었나. 아니었나 모르겠군. 중요하지 않았나보지. 나라고 다 기억하는건 아니니까 말이야, 아 물론 꼭 해야하는 것은 하네. 그럼.. 나중에 보세. 기왕이면 빨리오고."



알수없는 말들을 주르르 늘어놓던 염라는 다시금 캘리칼리를 위아래로 훑으며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탐을 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집어삼켜질듯한 아슬아슬한 감각이 캘리칼리의 발목을 타고 올라온다. 오싹하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공포와 함께 선명한 탐욕에 움찔거리는 사이 염라가 한순간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활짝 웃는다. 약조는 약조, 지켜주어야지. 그냥 한번 보고싶어 불러보았어. 뭐 내가 통보해주어도 되지만 역시 눈앞에서 보내주는건 너무너무 아쉽단 말이지, 그러니 카르나르 자네가 다시한번 수고하게나. 그럼 이제 일하러 가야지~. 총총 걸음을 옮겨 그대로 옥상문을 열어젖히던 염라가 닫기 전, 캘리칼리를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린다. 자네가 수명을 다하고 올날을 고대하고 있겠네. 섬뜩한 감각이 다시한번 온몸을 휘젓고 어리둥절한 캘리칼리를 바라보며 융터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뒷처리는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았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그러니까... 염라께서 하신 말씀은 자비와 관련된 것입니다. 사실상 당신과 같은 영혼은 이쪽에서도 희귀한 편이라 저승에 두고싶지만 이승도 너무 혼탁하니 잠시 이대로 두는 편이 좋겠다고 부장들끼리 회의하여 내리게 된 결론입니다."


"응..? 그러니까.. 어.. 그말은.."


"네, 당신 안 죽습니다."



융터르의 선언과 함께 두루마리가 공중에서 펼쳐진다. 그안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자신의 인적사항, 어느년도에 출생하여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세세하게 적혀있는 두루마리를 보는 것은 퍽 신기한 경험이었다. 몇시 몇분 누구와 인연을 맺었는지 그리고 그 인연이 전생에 이어졌던 누구였는지까지 세세하고 섬세하게 적혀있는 글귀들은 아직 그가 볼수 없는 것이라는 듯 흐릿하게 쓰여있었다. 미래의 것은 텅 비워져있는 공백이었고, 두루마리의 종이재질은 이승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드러내듯 곱디 고운 연백색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아이보리색이라고 할까, 캘리칼리가 두루마리를 하나하나 쳐다보며 낱낱이 살피는 사이 융터르가 박수를 쳐 그의 주의를 돌린다. 놀란 표정으로 돌아본 그곳에서 융터르는 손가락을 들어 중앙에 붉은 인주로 찍힌 글자를 가리킨다. 자신이 읽는 것이 맞다면, 그 한자는 분명 歸이었다. 돌아갈 귀, 돌아올 귀. 어느 쪽이던 의미는 같았다. 여태 염라가 보여주었던 행동과 연신 내뱉었던 아쉽다는 말, 그리고 다음을 기약했던 말까지. 캘리칼리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내려진 처분이 무엇인지 판단하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하게 그는 눈치가 있었다. 그러나 확답하지 못한 캘리칼리가 은근슬쩍 융터르를 쳐다보며 머뭇거리자, 융터르의 입가에 계속 보여주었던 편안한 미소가 번진다.



"돌아가시지요, 그리고.. 다시 만날 일은 가능한 뒤로 미뤄두고 싶군요. 느린 재회를 기대하겠습니다."



간단한 인사말이었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몸이 빨려들어가는 감각이 그를 휩쓸고 땅바닥이 한순간 사라지는 감각에 흠칫 놀라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에는, 삑삑거리며 규칙적인 소음을 내는 기계와 함께 중환자실의 천장이 그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밖에 들려오는 형사3팀의 목소리, 아아 너무나도 그리웠던 목소리. 영혼상태일 때 그들의 목소리는 마치 물에 젖은 상태에서 들은 것처럼 먹먹하게 들려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확실하게 귀에 닿아 선명하게 전해지고 있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앞에서 머뭇거리는 기척과 혼란스러운 마음까지. 캘리칼리는 멍하니 밖에서 들려오는 호드의 지독한 혼란을 가늠했다. 그가 자신을 얼마나 따르고 있었는지와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캘리칼리는 비죽이 눈물이 나오려는 눈가를 짓눌러 닦아내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재회는 기쁘게 해야하지 않겠나. 게다가 이토록 기다렸던 재회라면 다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했던 재회라면 더더욱 환한 미소로 맞이하는것이 좋다. 언제나처럼, 그답게.



그리하여 캘리칼리는 다시 형사 3팀으로 복귀했다. 비록 반장과 서장의 강력한 권유-라고 쓰고 사실상 강제로 쉬게 만들어버렸지만-로 반년이나 쉬고 돌아왔지만. 그들 모두 캘리칼리가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는지 또 복귀하고 싶어했는지를 잘 알았기에 누구보다 성대하게, 환영식으로 맞이했다. 다시금 일상으로 되돌아갈 때였다. 또 엄청난 모험이기도 했지만-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모험이기도 했다. 생의 마지막 모험을 그런 식으로보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럼에도 저승이 꽤나 훌륭했던 것은 알기에 그는 다정하게 자신을 맞이하러 올 파트너를 기다리며 오늘도 삶을 향해 더 힘차게 한 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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