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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ION/공개용 커미션글

뱀사냥

W.범고래

*약간의 적폐 있음
*과몰입금지











미치겠군. 며칠이나 계속 이어지는 사건사고들에 쉬지 못한 캘리칼리가 마른세수를 하며 급하게 눈을 감았다가 뜬다. 뻑뻑해진 눈꺼풀이 욱씬거리며 충혈된 눈동자를 자극했고 덕분에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욕설들이 점점 구체적인 저주로 변해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일련의 사건사고들. 전혀 연관도 없고 다르기만한 사고들의 중심에는 망할 그 '그놈'이 있었다. 확실히, Nonsense. 방금 막 탄 믹스커피를 캘리칼리에게 내밀며 호드는 고개를 끄덕여 캘리칼리의 의심에 동의했다.


자신의 치마가 너무 짧느니, 온갖 폭언과 함께 성희롱적인 발언을 한 교사를 우발적으로 죽였던 여고생도, 직장내에서 왕따와 괴롭힘을 당해 아직 근무중인 직원이 많았던 시각에 불을 질렀던 직장인도, 하다못해 시끄럽단 이유로 어린아이를 폭행했던 한 남성과 그저 자신은 정의를 집행했을 뿐이라며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던 살인범까지 모두 하나같이 공통된 말을 했었다.



전 그냥 하고싶었던대로 단 한번 해보았을 뿐인걸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자신의 상관이냐며 도리어 자신들 역시도 피해를 받았으니 이 정도쯤은 용인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며 각자의 논리를 펼쳤던 사람들의 진술을 떠올리며 호드는 남은 커피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와작, 종이컵을 아예 공처럼 구겨버린 캘리칼리 역시 퀭하게 들어가버린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릴 뿐이었다. 젠장, 이제는 숨쉴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욕설을 무심하게 흘려들으며 호드 또한 그들의 진술을 다시 떠올렸다. 분명, 교사를 살인했던 여고생은 그날도 어김없이 폭언을 듣고 분개하며 야자를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우연히 학교앞에서 파는 포장마차를 발견해 오뎅이라도 먹고갈까 멈춰섰다고 했지. 그리고 오뎅을 먹는 동안 표정이 안 좋아보이는데 무슨 걱정이 있냐며 상냥하게 물었던 '아저씨'가 있었다고 했다. 예전 학생들은 노력한만큼 돌려받지만 요새 학생들은 그 이상을 해내야 간신히 대가를 돌려받는 것이 안타깝다며 평소 학생들이 흔히 가지는 불만과 우울감을 건드렸다고 했다. 자신의 신세에 공감해주는 그의 말에 신이 나 교사의 험담을 했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한번뿐인 인생인데 그런 사람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깝지 않으십니까? 용기를 가져보십시오, 겨우 생기부 때문에 소중하고 귀중한, 단 한번뿐인 학창시절을 이렇게 더럽힌다면 그리고 그걸 그저 넘어간다면 당신의 한이 되지 않겠습니까? 학창시절이란 결국 청춘의 시작부라고 할수도 있는 빛나는 시간입니다. 그런 시간을 즐기는 것도 아까운데 말이죠, 무의식적으로 그건 옳지못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결국 말은 번지르르하게 했으나, 실상은 복수를 부추기는 말들이었다. 호드 또한 다 마신 종이컵을 구겨버리며, 캘리칼리의 손에서 곧 새로운 물질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종이공을 낚아채 쓰레기통에 넣는다. 웅얼거리며 범인에게 붙일 새로운 별명, 아니 욕설을 고민하고 있는 사이 호드 또한 사건파일들을 꺼내어 그가 했던 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붉은 선으로 그려진 사건의 발생장소와 파란 마카로 쓰여진 접선시간이 쓰여진 칠판을 바라본다. 캘리칼리의 이마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호드의 눈에서 곧 빔이 나갈수도 있을 것 같을 때 그제서야 서장에게 신나게 까이고 돌아온 반장이 그들에게 휴가를 마지못해 준다. 이틀 동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차라리 놀러다녀오라며 부러워죽겠다는 표정으로 훌쩍거리는 반장을 뒤로 하고 실로 오랜만에 서의 바깥으로 나온 그들은 멍하니 벤치에 앉는다. 사건을 생각하지 말라고 해도 결국은 떠오르는 것이 형사의 생활이었고 경찰의 행동요령이었다.



"이런,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익숙하게 들린 목소리에 약속한 듯 고개를 돌린 그곳엔 반가운 미소를 짓고있는 카르나르 융터르, 그가 있었다. 융터르! 간만이군!! 캘리칼리의 힘찬 포옹을 슬쩍 피한 융터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반겨주는 호드에게 고개짓으로 인사하고 얼결에 같이 인사한 호드는 캘리칼리를 붙잡고 소근거리며 묻는다. 아시는, 분입니까? 비록 그의 목소리가 숨겨지지 않을만큼 크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융터르는 안 들리는 시늉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자네는 신입이었지 참, 하도 베테랑처럼 굴고 실력도 나름 생각의 회로도 몇십년은 이쪽에서 일한 것과 같아서 착각했었지만 엄연히 호드는 형사가 된지 이제 겨우 1년이 되어갈까 하는 신입이었다.



그러니까, 이 녀석 아니 이분은.... 뭐라고 설명해야하나? 기대했던 설명이 아닌 전혀 다른 안내가 나왔으나 전혀 불쾌하지 않은 듯 융터르는 오히려 기분 좋게 웃음을 지었다. 제 소개는 제가 하도록 하죠, 솔직히 저희가 좀 애매한 관계인 것만큼은 맞으니 말입니다. 오, 그래 맞아. 애매한 관계! 그럼 둘이 잠깐 얘기하고 있으라고. 자판기에서 뭐라도 사오겠다며 소리없이 걸음을 옮겨 사라지는 캘리칼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융터르는 입꼬리를 올렸다. 참 당당한 분이십니다, 보고있으면 괜히 저도 같이 힘이 나는 것처럼요. 캘리칼리를 향한 융터르의 자비로운 평가에 호드는 고개를 기울이며 그를 훑어보았다. 평이, Generous하군. 특이한 말버릇에 또렷한 청안을 뜨고 깜빡거리던 융터르가 픽 웃어버리며 그에게 손을 내민다. 평이 후하다니, 그런 말을 좀 많이 들어보기는 했습니다. 저는 카르나르 융터르, 형사 4팀에.. 비공식적인 도움을 주고있는 사람입니다. <비공식적>인 도움이라, 호드는 자꾸만 피어오르는 의심을 애써 외면하고 그의 손을 잡아 악수를 나눈다. 형사 4팀에 1년전 들어온.. Hord.입니다. 발음이 굉장히 이국적이라며 뛰어나다는 칭찬을 먼저 하는 융터르에게 호드도 조금씩은, 경계를 늦출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호드의 특이한 말버릇도 상관없이 오히려 발음이 좋다 칭찬하였으며 캘리칼리의 거칠고 제멋대로인 성격이 용감하고 당당하다며 긍정적으로 보아주는 사람, 누가보아도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를 의심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오히려 주변에서 감히 이렇게 좋은 분을 의심하냐며 한심스러워할만큼 좋은 사람, 그러나 그렇기에 호드는 도무지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부정적이 면 또한 존재해야하는 법임에도 그에게는 도무지 나쁜 면이 보이지가 않았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며 주말마다 공원산책을 하며 성경과 불경들을 공부하고 옛 지혜에 대해서 토론한다는 취미, 괴랄하기 짝이 없었지만 공원에 술취한 노인들마저도 다독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본 이후에는 의심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착할수가 있는건가.



"얘기 잘 나눴나?"



음료를 사온다더니 본인 마실것만 야무지게 산 캘리칼리에게 호드는 눈을 찌푸리며 센스가 없고 배려도 없다 한숨을 쉬었고 융터르는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며 형사들이 무슨 돈이 있겠냐며 도리어 그를 위로해주었다. 하나하나, 조금씩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안 걸리는 것은 없다지만... 호드는 묘한 이질감으로 고개를 기울여 캘리칼리에게 눈짓한다. 이 자리를 빨리 뜨자는 그의 눈짓을 알아들은 캘리칼리가 경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겠다는 말로 얼버무렸고 융터르는 의심한점없이 그러라며 가던길을 향해 마저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그가 완전히 떠나고서야 호드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융터르가 수상하다며 내뱉은 말에 캘리칼리의 잘 뻗은 눈썹이 찡그려지고 싸늘하게 되묻는다. 그 말을 책임질수 있겠냐는, 낮고 서늘한 목소리에 호드도 초조해진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의심하는 습관은 좋다, 그것으로 단서가 잡히는 경우도 빈번하기에,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의심은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고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낼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신중했다. 호드는 오랫동안 고민하였고, 생각했던 근거와 여러 정황들을 나열하며 융터르에 대한 그의 의심을 토로했다. 캘리칼리 또한 형사의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캘리칼리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는 융터르의 정체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4팀에게 무슨 협력을 해주었는지에 대해서 얘기해준다. 5년전, 심증만큼은 확실한데 아주 섬세하고 머리가 좋은 살인범이 있었다고 했다. 호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건이야 아직도 술만 마시면 4팀의 형사들이 줄기차게 얘기하는 사건이 아니던가.



교묘하게 증거는 남기지 않으면서 확실하게 사람만 죽이고 물건도 돈도 하나도 손대지 않았다는 희대의 연쇄살인범, 심증만큼은 누구보다 확실하게 그 사람이었지만 형사들이 아무리 윽박질러도 달래고 어르고 온갖 말들을 다 해도 입 하나 열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던 그의 입을 연 것이 바로 융터르였다. 이전부터 조금씩은 도움을 주었던 그였지만 본격적으로 4팀의 명예인원이 된 것이 그때부터였다고 말하는 캘리칼리의 눈이 아련하게 그날을 추억하는 듯했다. 어떤 수를 썼는지 들어가서는 조곤조곤 말만 하는데에도 돌같이 꿈쩍않던 남자가 으르렁거리고 화를 내고 소리까지 지르며 격양된 감정을 보였다고, 아예 울기도 하며 감정을 끌어낸 후에서야 받아낸 자백으로 4팀의 반장은 마침내 승진을 했다. 도와준 답례로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말에 그는 공치사들을 거절하고 그냥 자신은 심리공부를 하는 사람일 뿐이라며 유유히 떠났다고 했다. 그날이후로 정말 안될 것 같은 사람들을 붙잡았던 경우에만 불러 도움을 받았다며 추억들을 회상한 캘리칼리가 히죽 웃으며 호드의 머리를 마구 흩어놓는다. 호드가 그보다 더 큰 키였음에도, 신입을 달래는 베테랑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형사랍시고,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의심한 것이 기특하다며 드문 칭찬을 한 캘리칼리가 호언장담한다. 자신 또한 의심을 해본 적이 있고 아주 지독하게 몰아붙여본 적도 있었으나 괜찮았다고, 확실히 그냥 심리공부나 하는 사람이었으며 드물게 재능이 있을 뿐이라며 호드의 불안과 의심을 덜어낸 캘리칼리는 어깨를 으쓱인다. 이참에 고기나 먹고 든든하게 복귀하자는 말, 호드는 피식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거칠고 제멋대로 구는 것처럼 보여도 캘리칼리는 감이 뛰어난 편이었으며 형사로써의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이었으니 오히려 의심을 한번 했다면 정말 끝장을 볼때까지 물어뜯었을 것이다. 이거 다시 뵈면 사과라도 해야겠다며 잘 익은 소고기를 입에 넣으며 호드는 생각했다. 덜익은 건 좀 안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덤이었지만.




이틀간의 꿀같던 휴가가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캘리칼리와 호드는 신명나게 일과 서류에 파묻혀야했다. 범인들을 데리고 와서 심문하고, 기록한다. 아무리 그들이 베테랑 형사라고 해도 살인자의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살인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그 안에서 단서와 힌트들을 찾아내는 일이 익숙해질수는 없었다. 특히 해맑은 표정으로 망치로 어떻게 사람의 머리를 부쉈는지, 그리고 얼마나 끔찍하게 그의 뇌수와 뇌가 빠져나왔는지를 설명하는 고등학생의 앞에서라면.. 비위상해서 오늘 점심은 아예 먹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캘리칼리는 내려오려는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린다. 이래서 내가 머리가 빠지는거야, 툴툴거리면서도 착실하게 다음질문을 쏘아붙이는 목소리에 여고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환하게 웃는다. 그놈, 캘리칼리는 이 일련의 사건들 사이에서 공통된 '그놈'을 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에덴의 뱀처럼 평화롭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꼬드겨 사회의 법을 어기게 만드는 그 사악한 혓바닥. 뱀에게 당한 녀석들은 전부 눈앞의 사람처럼 홀가분한 표정으로 의연하게 죗값을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반성하곤 했다. 형량까지 짧게 받는 편이었으니 잡아넣는 자신들마저도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이놈의 뱀새끼 잡으면 내가 혀를 자르던가 뽑던가.. 캘리칼리가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고개를 치켜든 것은 방화로 3명을 죽이고 14명을 중상입힌 직장인 남성이었다. 뭐라구요? 여태 조용하고 순순하게 심문에 참여하던 그의 목소리에 날이 서있었다. 캘리칼리는 와락 얼굴을 찌푸리며 뱀에게 당한 사람의 특징에 하나를 더 적어내려간다. 뱀새끼를 아주 추종할 정도로 좋아하고 따름! 느낌표까지 야무지게 붙인 캘리칼리에게 다시 말해보라며 침착해진 목소리로 묻는 방화범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일어선 캘리칼리가 심문실을 나서고 서류를 반장에게 툭 넘긴다. 뱀새끼에게 당한 놈들 공통점, 홀가분해하면서 순순히 심문에 참여한다. 자신이 옳은 일을 했으며 그러나 그것의 대가를 받아야하는 것을 수용한다고 함. 뱀을 아주 좋아하며 그의 신념에 깊이 동감하는 것처럼 보임. 고작 세줄남짓한 설명에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반장을 신경도 안쓰고 나온 캘리칼리 컴퓨터 앞에서 녹음본을 글로 옮기고 있는 호드를 건드린다. 어이, 나가자.



"뭐.. 실마리는 좀 잡으셨습니까?"



호드의 물음에 당연하지, 캘리칼리가 담백하게 답했고 그 대답은 저놈때문에 못살겠다며 뒷목잡고 바닥에서 뻐팅기던 반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뭐!!!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일어선 반장의 행동에 캘리칼리는 화들짝 놀라 왜 소리를 지르냐며 쭈그러졌고 반장은 실마리를 잡았으면 말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버럭버럭 소리질렀다. 뒤늦게 자신감을 되찾은 캘리칼리도 함께 반장과 언성을 높이며 자기가 잡은 증거들과 실마리를 풀어낸다. 증거가 뭔데! 뱀의 활동범위랑 영역 조사했네! 그래서!! 오늘은 A-032동에서 나타날 예정이고!! 그리고!! 뱀의 먹잇감으로 딱인 아주 우울한 애들 후보를 골랐네!! 잘했어 임마!! 됐어!! 누구랑 같이 갈거야!! 호드!!



둘의 힘찬 대화를 들으며 무심하게 고막에 피는 안나나 확인하던 호드는 불현듯 나온 제 이름에 당황하며 고개를 들어올린다. ME? 어, 너! 갈준비해, 당사자와의 합의되지 않은 출장소식에 패닉에 빠지기 직전인 호드를 잡은 것은 반장이었다. 황당해하며 오늘 정리할 서류와 기입해야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 토로하려는 순간 반장은 그의 어깨를 지그시 짓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호드의 모든 걱정거리를 떠안을 아름다운 단어를 한마디 해주었다. 야근없음. 일은 나중에 다른놈한테 넘겨줄테니 캘리칼리를 따라가라는 말, 호드는 자꾸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그 일거리를 떠앉을 대상자인 듯한 반장의 썩은 표정을 보았다. 그러죠, 낮게 키득거린 호드가 그런데 왜 캘리칼리의 말에 그토록 확실하게 따르려는 것이냐고 묻고 반장은 슬픈 표정으로 책상 위 가득 쌓인 서류철을 보며 답해주었다. 캘리칼리가 감이 좋으니까, 운도 좋고. 꽤나 머리도 좋고... 나는 안 좋은데, 마지막에 소심하게 중얼거린 말은 능숙하게 넘기며 호드는 캘리칼리를 새삼 다시 보았다. 감각이 좋다라, 뭐, 고작 1년차인 자신보다는 9년이나 형사질을 한 그가 더 잘 알겠지라고 생각을 정리하며 그의 뒤를 따른다.



실마리가 무엇입니까? 물어오는 호드의 말에 캘리칼리는 얼굴을 붉히며 소근거린다. 사실 카르나르, 그 양반한테 손 좀 벌렸다. 그의 솔직한 고백에 호드의 황당해하는 표정과 함께 수사과정을 일반인에게 공개한 것이냐며 타박하는 말이 그를 덮쳤고 캘리칼리는 두손을 들어올리며 우물거린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어려운 걸 어떡해, 그 양반도 구체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았어. 오히려 힌트들만 줬다고, 내가 알아서 조합한거야. 깊은 한숨과 함께 그런 의미가 아니지 않냐며 호드가 째려보고 캘리칼리는 금방 당당하게 그가 주었던 힌트들을 나열한다. 카톡했었거든.



[캘리칼리] 융터르, 내가 오랜시간 '뱀'을 쫓고있는 거 알고있지?
[카르나르] 물론입니다. 드디어 도움을 요청하시는건가요? 기쁜 마음으로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캘리칼리] 아니, 뭐 그런건 아니고... 뱀의 활동범위라던가, 타깃 같은 게 도무지 감이 안잡혀서 말이지
[카르나르] 뱀.. 활동범위라, 글쎄요. 활동시간이 저녁이라고 하였으니 아마 직장인같은 사람이 아닐까 싶군요. 매일 같은 시간대에 나타난다는 것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캘리칼리] 오, 벌써 하나가 풀렸잖아! 역시 머리가 좋군. 그럼 타깃은?
[카르나르] 그것도 애매하군요, 범인들의 공통점이라던가 그런게 있습니까?



S, STOP. 호드의 말에 미끄러지듯 내려가던 스크롤이 뚝 멈추고 캘리칼리의 불쾌해하는 얼굴이 대신하여 비춘다. 뭐, 왜. 활동시간까지 다 말해주셨습니까? 아니.. 뭐 물어보려면 그래야지. 전부 뱀을 만났던 시간대가 저녁인 건 맞잖아? 자신이 전하려던 뜻은 그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교묘하게 피해나간다. 이 스킬을 심문할 때 쓰면 참 좋으련만. 호드는 반장이 왜 고혈압인지 알것 같다고 생각하며 마저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캘리칼리] 다들 심리적으로 지쳐있었거나 원한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더라고. 근데 되게 사소한 원한 말이야. 싫어하는 상대라는 건 누구든지 있을 수 있는 건데 그걸 건드려서 계속 자극한 모양이더라고, 아주 야비하게 말이지.
[카르나르] 유감스러운 일이군요. 타깃은 스스로 말씀해주신 것 같은데, 그걸 토대로 수사를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캘리칼리]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군! 좋은데. 뭐 충고라도 한마디 해주지?
[카르나르] 범인이 매일같이 가는 길이 달라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의외의 장소에서 나타날지도 모르니 수색지역을 넓혀보는 건 어떻습니까?
[캘리칼리] 우리 인력부족이라 안돼, 다른거는?
[카르나르] 그 사람의 활동시간대가 달라질수도 있다는거죠. 매일같은 하루만 어떻게 살겠습니까, 가끔은 아침에 나올수도 있죠.
[캘리칼리] 좋은 생각이야, 충고 고맙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이를 악물고 간신히 목구멍으로 밀어넣은 잔소리 덕분에 오늘 저녁은 아주 든든할 것 같다고 생각한 호드였다. 그럼에도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었고 나눈 대화들도 다시 주워담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귀하신 머리를 굴려서 찾아낸 가해자가 될 피해자는 누구죠, 호드의 질문에 캘리칼리는 간만에 쓴 머리 덕분에 욱씬거리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답해주었다. 후보는 겨우 둘, 첫번째는 친구의 폭행죄를 강제로 뒤집어쓴 억울한 학생, 두번째는 노숙자로 오인받아 매일같이 공원에서 쫓겨나는 어느 노인. 호드의 어벙한 표정에 캘리칼리는 으르렁거리며 호드를 붙잡고 쏘아붙이듯 설명해주었다. 물론 발은 착실하게 그들이 있을 곳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둘다 심리적으로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을 정도로 내몰린 상태다, 그리고 뱀의 활동영역은 여기까지가 한계이고, 게다가 2개월마다 사람꼬시는 주기까지 딱 맞아, 그러니까 오늘내로 둘 중 한명에게 분명히 접근할거다. 나머지 증거들은 서에 가서 나중에 설명해줄테니까 넌 노인, 나는 학생 찾으러 간다. 노인의 위치는 니 폰으로 실시간으로 전송될 거니까 다녀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허겁지겁 세고등학교로 향하는 캘리칼리의 의지에 호드 또한 고개를 굳게 끄덕이고는 탑골공원으로 달려나갔다. 곧 저녁이었고, 뱀은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무분별하게 보이는 타깃들에게 접근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추정중이었으니.



호드가 먼저 탑골공원에 도착해 본 곳에는 오늘도 공원관리자와 싸우고있는 노인이었다. 우선 그가 뱀의 타깃이 되지 않게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그의 목적, 호드는 사근사근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고 노인은 큰덩치로 제게 다가오는 호드를 발견하고 바락 소리를 질렀다. 어딜 내려다보냐며 성을 내는 노인의 냄새는 코가 예민하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심한 악취였다. 어르신, 이분들은 이분들의 할일을 하는거여서요, 숨을 크게 들이쉰 후 하루종일 외웠던 메뉴얼대로 읊으며 달래기 시작한 호드를 한편으로, 캘리칼리 또한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시간은 저녁 8시 27분, 뱀의 영역에서... 융터르를 보게 되었을 줄은, 그리고 그의 앞에는 왜 타깃예정자인 학생이 앉아있는지. 캘리칼리는 이를 악물고 최악의 가정을 지우고자 애썼다. 그럴리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불과 2시간 전에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카르나르"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른 이름에 융터르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어보인다. 반갑습니다, 우연이군요. 그래, 우연이다. 캘리칼리는 불안하게 피어오르는 가정을 뒤로 미루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인데, 정말 우연이야. 뭐하고 있었나? 캘리칼리의 질문에 융터르는 빙긋 웃으며 눈앞에서 훌쩍거리며 우는 학생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었다. 그저... 가여운 아이를 만나서, 좀 달래주고 있었을 뿐이지요. 가여운 아이, 타깃으로 삼을지도 몰랐던 아이.. 캘리칼리의 파란 눈동자가 또렷하게 융터르를 바라본다. 그래? 고민상담을 해줬을 뿐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님에도 죄를 대신 짊어지고 있더군요, 안쓰러워서.. 그저 그것은 이 아이 잘못이 아니라 말해주었을 뿐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내 고민상담도 들어주겠나? 캘리칼리의 질문에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 것인지, 융터르는 고개를 까닥이며 그를 살핀다. 왜 이제서야 그의 눈이 서늘하다고 느낀건지.



꾹 다물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융터르의 입술이 열리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무엇이죠? 기다렸다는 듯 나오는 질문에 캘리킬리 또한 살기를 드러내며 고민을 드러낸다. 내가 말이야, 7년 동안 쫓아다닌 어느 악독한 놈이 있어. 이 뱀같은 새끼는 교묘하게 혓바닥으로 이리저리 사람을 농락하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놈인데, 언변이 어찌나 화려한지 다들 깜빡 속아넘어가서 아예 회개까지 하고 그러더라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상한거야, 뱀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7년전, 자네가 이사를 왔을 때와 똑같은 시기였어. 뱀이 이사를 온 이후부터 이 동네의 범죄율이 아주 미미하게 증가하게 되었지. 그리고 뱀은 언제나 우리의 다음 사건이 무엇인지, 다음에 해야할 일과 해결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친근하게 우리가 집중적으로 순찰도는 그 구역만 피해서 타깃을 노렸더라고. 내가 잡을만하면 빠져나가고, 드디어 잡나 싶으면 또 방해하며 말이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네가 우리를 도와주었을 때마다, 우리는 뱀을 추적하고 있을 때였어. 드디어 단서를 잡았다 하면 이 사건을 잊지 않았냐며 우리가 찾지못했던 증거를 불쑥 가져오곤, 해결해주었지. 또 드디어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한순간에 탁 놓치고.. 그때마다, 자네는 우리 주변에 있었네. 그러니.. 미안하지만 자네는 이 질문에 똑바로 대답해줘야겠어. 손가락으로 호드를 부르는 코드를 누르며, 캘리칼리는 긴장감에 질문한다.



"카르나르 융터르, 자네가.. 내가 쫓던 뱀인가."



침묵이 숨을 잡아먹은 것 같았다. 융터르의 청안이 눈꺼풀에 깜빡거리더니 곧 융터르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푸흐흐, 낮게 깔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온 대답은, 긍정이었다. 감각이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때에는 또 예리하시군요. 무의식적으로 방금, 형사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흐음, 그렇다고 답하면 어떻게 하실겁니까? 심장에 묵직한 충격이 닥치는 것 같다. 때마침 도착한 호드는 특유의 빠른 눈치로 카르나르가 뱀임을 알아차리고 함께 입을 다문채로 그를 다시 바라본다. 두쌍의 눈동자가 압박하는 것은 버티기 어려웠는지 융터르는 순간 학생을 다독이던 손을 치웠고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불꺼진 학교로 되돌아간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빌어먹을 그 표정, 가해자가 되어버린 그들이 짓는 표정이었다. 캘리칼리는 이를 악물고 호드를 향해 외친다. 잡아!! 퍼뜩 정신을 차린 호드가 학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커터칼을 손에 쥔 채로 학교로 달려가는 학생의 뒤통수만 보일 뿐이었다. 캘리칼리와 멀어져가는 학생을 번갈아 보며 혼란스러워하는 호드에게 캘리칼리가 목청껏 가!!!라고 외쳤고 누구를 쫓을지 결정한 호드가 학생을 향해 달려간다. 남은 캘리칼리 또한 융터르를 경계하며 사납게 몰아붙인다.



왜 그랬나, 무슨말인지 모르겠군요, 왜 그랬어, 우리가 우스웠나? 그 질문은 역린을 건드린 모양인지, 융터르의 눈썹이 찡그려진다. 처음이었다, 그가 불쾌해하는 표정을 짓고있는 것은, 그러고보니.. 항상 웃는 낯이던, 무표정이었지. 진짜모습이 이건가, 허, 실망스러웠다. 캘리칼리는 표정을 숨기는데 능숙한 사람이 아니었고, 솔직하게 살아왔으며 항상 느끼고 있는 모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융터르가 그의 실망과 배신감을 읽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에 속하지도 못했다. 실망하셨군요, 그럼 사기꾼을 눈앞에 두고있었는데 당연히 실망하지 않겠어? 매섭게 몰아치는 말에 융터르는 어깨를 으쓱인다. 사기꾼이라니, 말이 심하시군요. 제가 뭘 사기를 쳤습니까? 니가 바로 내가 7년이나 소비해서 붙잡고 싶어했던 뱀이라는 걸 왜 말안했어, 캘리칼리의 물음, 융터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그럼 제가 저를 잡아 족치겠다고 피끓이는 분 앞에서 제가 바로 그 족칠 사람입니다, 라고 소개할 줄 알았습니까?



"그럼 뭐였나, 여태 계속 전달해주었던 힌트랑 범인 잡게 도와줬던 것들은 다 뭐였냐고!!"



캘리칼리의 물음, 그리고 융터르는 환하게 웃는다. 그들이 끌려가며.. 제가 도움을 주었던 그들이 했던 말들, 기억나십니까. 융터르의 말에 캘리칼리는 뇌리를 스치는 말들을 조합한다. 그리고 이내 떠오른 생각은, 캘리칼리의 모든 것을 부정하기에 충분했다. 덜덜 떨기 시작하는 손끝을 발견한 융터르의 눈이 생글 휘어진다. 억울해요, 진실이 반드시 밝혀질거라고 믿겠습니다. 5년전.. 그 일, 니가 했던 거였냐, 눈을 좀 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업을 위한 소의 희생이었죠. 태연하게 캔커피를 기울이는 융터르의 손에서 그것을 쳐내며, 캘리칼리는 파르르 분을 억눌렀다. 그를 때려서는 안된다, 지금 융터르는 그 어느 죄도 저지르지 않은 일반 시민이었다. 씨익, 섬뜩한 그의 미소에서 캘리칼리가 뒤로 주춤 물러선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정하고 친절하게 우리와 대화를 나누었던 그 사람이 맞는건가, 싶었던 두려움이었다. 날아가버린 캔커피를 아쉽게 쳐다본 융터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가 되어버린 캔을 줍는다. 분리수거 통을 찾아 시선을 옮기며 융터르 또한 입을 열어 그의 혼란을 한중 더 무겁게 쌓는다.



"뭐, 그래도 제가 했던 말들은 전부 적어도 거짓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사람을 죽였고, 제 말에 용기를 얻어 각자 해야할 일들을 해냈을 뿐이죠. 제가 했던 일은 그저 그들의 용기를 부추기고 올바른 행동을 하게 두었을 뿐인 것, 그게 끝입니다."


"넌 사람을 죽이도록 만들었어."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평범하게 잘 살 수 있었던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었다고!!"


"아니요, 아닙니다."



융터르의 부정에 캘리칼리가 반박하고자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어느새 새파란 빛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아닙니다, 기억과 추억이라는 것은 쌓이는 것이죠, 가장 아프고 가장 빛나고 행복했던 찰나들을 제외하면 그것들은 전부 기분과 감정으로 남아 추억이라는 형태로 무의식에 남아있을 뿐입니다. 평범하게 잘 살 수 있었다니요, 아닙니다. 희롱당했던 여고생은 나이든 남성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무의식적으로나마 경멸하게 될 것이며 회사의 직장인들에게 왕따를 당한 남성은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상처들은 전부 기억속에 남아 평생을 함께 할 것인데 그것을 잘 살고있다라고 표현해서는 안되지요. 저는 무의식에 상처를 받고 피해를 받은 가여운 사람들을 구해준 겁니다.



너무나도 확고한 의지와 신념이었다. 그렇기에 캘리칼리는 입을 다물었고, 반박을 할수가 없었다. 할말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저는 그들을 살인자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살인자였던 사람을 사회밖으로 끌어냈을 뿐입니다. 제가 하는 행동은 숭고한 의지이지요, 사회에 숨어있는 악마들을 끌어내어 그들을 회개시키는 일, 아름답지 않습니까? 네 말에 홀린 사람들이 살인자가 되는 것에 전혀 책임감을 못 느낀다는 말이지, 융터르는 눈을 찌푸리며 그의 말에 기분이 나쁜 기색을 드러낸다. 책임이라뇨, 제가 그걸 왜 책임져야합니까? 저는.. 일종의 심판자이자, 인도자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무의식 속 상처들을 건드리며, 그것에 자극받아 살인자가 되는 자들과 그럼에도 묻고 살아갈 선인들을 골라내는 심판자. 누가 그 알량한 자격을 쥐어줬지? 제가 스스로 쥐었습니다. 원래 이런 것은 악역이 하나 정도는 맡아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진심으로 자신이 선한 심판자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동의까지는 못해준다, 캘리칼리가 이를 악문채 저를 노려보자 융터르는 낮게 키득거리며 하긴, 모르시겠다며 그를 조롱한다.



"현 시점에서.. 저는 그저 일개 시민이지요, A동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며 그 어느 불법적인 일도 저지른 적이 없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런 사람. 저를 잡아갈 명분이... 증거가 있으십니까?"



없다. 없으면서 뻔히 묻는 융터르의 얄미운 얼굴에서 캘리칼리는 고개를 숙여야했다. 없다, 딱 잘라 밀어지는 말투, 융터르는 캘리칼리가 저에게 선을 그었음을 알아차렸다. 참.. 솔직하시다니까, 이래서 제가 당신은 싫어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항상 본모습으로 살아가시니까요, 게다가 그것이 옳은 것이라니 세상이 엄청난 도움이 되는 거죠. 감언이설이었으나 결국은 그의 삐딱한 시선에 걸맞았다는 뜻이었다. 소름끼쳤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마음가는 대로 행동했던 것들이 누군가의 이상이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 정상인의 이상이 아닌 비정상인의 이상에 걸맞았다는 점이. 마치 인형이 되어 그의 손위에서 그가 원한 춤을 춘 기분이었다, 불쾌감이 발목부터 타고올라와 슬그머니 어루만진다. 캘리칼리의 눈이 흔들리자 융터르는 흐음, 손에 들고있던 찌그러진 캔커피를 바라보며 웃는다. 전 방금전까지만 해도 학생의 고민상담을 들어주던 그저 지나가는 한 사람이었고, 그 아이는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안부인사를 하다가 마시던 캔커피로 맞았죠, 자 이 상황에서 누가 악인이라고 해야하죠? 아, 걱정은 마십시오. 전 당신을 폭행으로 고발할 생각따위는 없습니다.



융터르의 질문들, 목소리와 단어 한글자 한글자가 너무나도 따끔하게 벤다. 덜덜 떨고있는 캘리칼리의 손아귀에서 핸드폰이 띠링, 문자알림이 울리고 겨우 들어올려 킨 화면에는, 엉엉 울며 호드의 품안에 안겨있는 아이의 사진이 있었다. 역시 이 방법은 잘못된 것 같다며 말린 형사에게 안겨 우는 아이, 기묘하게 홀가분했던 표정이 아니라 고민과 걱정을 떠안았으나 그럼에도 지고 나아갈, 평범한 사람의 얼굴, 캘리칼리는 무언의 안도감으로 스르륵, 긴장했던 몸을 푼다.



아쉽군요, 좋은 표정이었는데. 망쳐버리시다니. 유감이라며 어느새 다가와 사진을 함께 본 융터르를 밀치며 폰을 숨긴 캘리칼리가 그를 쏘아본다. 아쉽지만, 여기서 서로 헤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일부터.. 마주칠 날이 많아질 것 같군. 캘리칼리의 협박성이 짙은 말에 융터르는 눈을 꿈뻑거리다가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 예, 자주 보겠습니다. 자신은 전혀 걸릴 것이 없다는 태도.. 누가 이기나 그래 해보자고, 무려 7년이다. 7년동안이나 쫓았으니... 그를 막기 위해서 7년쯤은, 더 소비해도 괜찮을 것이었다. 누군가를 타깃삼아 매일같이 쫓아다니는 일만큼은 자신있는 그였다. 줄기차게 그를 방해한다면 결국 언젠가는 뱀도 독을 품은 이를 드러낼 것이었다. 그때가 되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럼 다음에 뵙죠, 뵐수있다면.. 융터르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아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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