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기온_ 2023. 5. 8. 21:25

W.범고래
 
 
*두목님썰
*소재돚거해서 쓰는 글
*쓰고 나서 약간 울컥하기까지함...
*추억보정주의


우리 학교에는 인기만점 선생님이 있다. 뭐 어느 학교나 인기많은 선생님이 한둘은 있는 것이 진리이지만, 우리 학교는 좀 과하게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오죽하면 팬카페를 만들어달라고 성화를 부릴 정도일까. 덕분에 선생님 쪽에서 좀 기겁을 하는 편이다, 그것도 요새들어서는 즐기고 계신듯하지만.
 
 
처음 쌤과 만났을 때는 상당히 강렬한 만남이었다. 그도그럴것이, 수근거리며 제각기 교실에서 이제 막 친해진 친구를 붙잡고 수다를 떨 때, 드르륵 문이 열리며 등장한 것이 다름아닌 고급스러운 와인색 셔츠에 검은 정장을 입고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저 사람은 누구이며 잘못 교실을 찾아왔다고 생각을 할 것이었다. 면도도 하지 않은건지 아니면 다시보니 고급스럽고 관리되어져 있는 수염이 까끌하게 있고 천연덕스럽게 들어와 조용해진 아이들에게 한번 피식 웃고는 교탁에 서 책 피라며 짙게 썬팅된 선글라스를 들어올리는 사람이, 자신들의 교사일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었고 앞으로도 모르고 싶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어 벌어진 입밖으로 나오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어 씁 좀 괜찮을지도 라는 생각으로 바뀌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원래 학생들이란 취향이 까다롭고 갈대보다 더 변덕스러운 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던가.
 
 
 
"자아, 나는 <앵보> 선생님이라고 한다. 보다시피 맡고있는 과목은 기술가정이고, 생긴 건 기술만 쥰내게 잘하게 생겼지만 가정적인 것을 가장 좋아하는 따수운 선생이니께 쫄지는 마시구요. 첫날부터 수업하자고 그러면 야유 나오려나?"

 
 
 
능글맞게 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반응을 이끌어내는 모습까지 영락없이 베테랑다운 모습이었고, 소심한 학생들의 야유에도 모른척 페이지 17부터 들어가자는 말에 어느새 첫모습에서 강하게 쫄아버린 학생까지도 망설임없이 우우~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책을 덮는 선생님이었다. 그럼 Q&A나 진행하자는 말에 첫질문부터, 쌤 깡패냐는 물음이 날아들었고 앵보쌤은 어깨를 으쓱이며 지금은 아니라는 답변을 남겨주었다. '지금은'? 이라며 다시 웅성거리는 것을 손을 휘저으며 에헤이, 끊어내고는 다음 질문이 날아든다. 쌤 3대 몇쳐요? 널 3대안에 끝내버리기에는 충분할 것 같은데, 테스테 함 해봐? 거봐 깡패라니까, 에헤이, 아냐~. 농담이야 농담, 너네는 농담도 못 알아먹니? 떼잉 그렇게 재미없게 살면 안돼요~. 아이를 타이르는 듯 말하면서도 내용은 과격하고, 장난스럽기 그지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주자면, 쌤이 진행하는 수업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목공실습 때에는 다같이 화단에 앉아 사포질이나 벅벅하는 꼴을 보며 여기가 공고냐며 키득거렸지만, 은근슬쩍 힘에 부쳐하면 잘 좀 해보라며 도와주던 손짓과 조금이라도 위험한 장난을 치면 서늘하게 경고하는 것까지 교사로써는 완벽한 쌤이었다. 비록 모습만큼은 교사로써.. 모범적이지는 않았지만.
 
 
쌤은 깡패라고 하기에는 무게가 있어보이고 마피아라고 부르기에는 가벼워보여요. 이런 캐릭터 잡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하셨다나... 그래서 저희도 쌤이라고 부르지 않고 두목이라고 불러도 돼요? 되겠냐!! 화를 바락 내며 되겠냐고 꾸짖으면서도 복도 가득 울리도록 "두우모오오옥~~~"이라고 부르면 못이기는 척, 아니 진심으로 붉으락거리며 달려오시곤했다. 그뒤로 그 쌤의 별명은 두목님이 되셨다지. 또다른 별칭으로는 "보스"가 있었지만, 그건 잘 부르지 않기도 했다. 이른바 구별칭, 현별칭이라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쒸익거리며 너희는 내가 진짜 나쁜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타박을 놓긴 하지만 전교생이 알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그가 남을 해하기는커녕.. 그러니까..음, 이런 비유가 맞나 싶지만. 피를 보는 것보다는 놀려먹고 튀기를 즐긴다는 것을. 미워하는 상대가 있다면 보지않으면 그만이고, 계속 봐야한다면 직접 떠나는 것이 진리라며 단순한 논리로 은근 사람의 마음에 묵직하게 위로를 던져주는 쌤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 쌤의 진가가 드러나는 때에는 바로 수학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레크레이션을 진행하는 조교의 간드러지는 진행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깔깔거릴 무렵 나오는 일명 선생님들의 장기자랑 타임. 평소 엄격하고 싸늘한 선생님도 재주 하나만 있으면 아이들의 모든 존경을 한번에 살수있는 기회에서 아이들은 일동 앵보쌤을 가리켰고 곧이어 나오는 화려한 춤솜씨와 놀라운 체력에 박수를 치며 레크레이션 진행조교도 놀라워했다. 이어나오는 노래타임에서도 문제없이, 아니 오히려 진행 자체를 씹어먹을 정도로 부드럽고 깔끔한 노래에 박수는 물론 타반 선생님들조차도 놀라워하며 그반 학생들을 부러워하며 바라봤다. 덕분에 과자가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는 나 잘했지? 라며 으스대는 선생님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다.
 
 
 
가아끔 학교밖에서 마주치면 마을버스가 기름 넣는 거 들킨것마냥 화들짝 놀래서는 괜스레 왜, 뭐, 선생님도 문화생활 즐기러 왔거든? 이라며 포스터를 한아름 들고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술은 싫다면서 꼬옥 소중하게 담배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나, 덕분에 담배를 피는 불량학생들도 앵보쌤의 지도만큼은 들었다지. 그게 무서운 외모 때문인지 그건 맛이 없다며 진짜 즐길줄 모른다는 타박을 놓는 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같이 교장교감쌤한테 불려가 설교를 듣는 것도 까칠한 아이들의 마음에 콕 박혀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른이 혼나는 풍경은 아무래도 잘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니까. 아니면 가끔씩 진지하게 말해주는 조언들 덕분일지도.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는 좋은 어른이었고, 좋은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것을. 자신은 부정하겠지만 그의 수업을 들었거나 그의 학생들 중 대다수는, 그의 모습을 미래로 꿈꾸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 즐거워하는 삶. 꿈을 놓지않고 천천히 걸어나가는 삶을. 그렇게 아이들과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걸어가주는 선생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