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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City

레기온_ 2023. 1. 3. 19:54








딸랑거리며 작은 쇠방울이 썩 괜찮은 소리를 내며 울린다. 느릿하게 새파란 시선이 옮겨가고 그의 숨결을 담아내는 마스크에 새하얀 입김이 대답을 대신하여 반짝거린다. 낡은 컴퓨터를 고집하는 그의 성미대로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팬이 소음을 만들어내어 도리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흔한 담배하나, 약하나 하지 않으면서 방문하는 이들을 위하여 나이트시티의 지긋지긋하고 어떻게보자면 정체성에 가까운 향을 항상 피워주는 그의 배려에 눈물겹다고 할까 아니면 그것조차 그의 센스와 수완이라 칭할까. 둘 중 의미와 이유가 어떻던 간에 확실한 것은 방문객들은 그를 일반적인 픽서보다 더 높게 쳐주거나, 아니라면 그럼에도 정상적인 픽서로 쳐주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마스크를 단 한번도 벗지 않으면서 커피는 늘 김이 났고 오묘한 원두의 향이 너그럽게 그들의 폐에 온화하게 퍼지며 차지했다.



바깥에서는 시끄럽고 요란한 음악을 틀어둔 채로 위협적인 말을 하며 시정잡배짓이나 하는 갱단원들이 돌아다녔고 눈이 아프도록 번쩍거리는 네온사인들을 찌푸린채로 바라본 단답벌레는 블라인드를 내려 아예 그들을 시야에서 차단해버렸다. 한동안 일거리를 달라 징징거리며 올 용병들도 없었고, 보낸 사람들만 무사히 돌아와 자신몫의 돈만 잘 받아먹으면 끝날 일들, 픽서의 역할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단순히 연결해주고 신뢰를 준다고 하여 만사 오케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픽서의 역할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내심이라고 생각했다. 단답벌레는 아주 오랜시간동안 얼마나 시간이 걸리던 일을 맡긴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이 있었다. 그것이 아마 그가 대형 길드와 로펌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픽서의 자리에 오른 긍지라고 생각하며 청소부는 기계적으로 그의 사무실에 어지럽혀진 먼지와 구겨진 종이들을 치웠다.



BD중독에 빠져 쾌락만을 쫓아 결국 아사하기 직전 자신을 구원해준 것도 그 중 한명이었고, 어쨌건 이 삭막하고 화려한 유리도시 속에서 사람이라는 것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청소부는 생각했다. 굶어죽어가던 자신의 몸 부품들을 다 뜯어내고 도망친 갱단원들, 도적들을 물리치고는 저를 두툼한 손으로 들어올려 인간의 모습을 띄게 해준 리퍼닥처럼, 좋은 사람들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는 말을 믿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나도 먼저 바뀌어야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청소부 또한 어느정도 볼만한 몰골에 어엿한 직장까지 준 것이 바로 그 아니었던가. 뼈져리게 후회하며 살려달라 인간답게 살고싶다 애원하는 그에게 픽서는 고민하다 싸늘하게 시선을 주었다. 청소, 단조로운 단어 하나였지만 금방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것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연결된 인연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무한한 선물이었고.



-차르륵.



"뭐야, 픽서 없어?"



들어오자마자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언사였지만 나이트시티의 일원치고는 상당히 정중한 편이라는 것도- 어찌보면 여기 와서야 반말이 아니라 존댓말이, 용건부터가 아니라 친밀한 사이라면 안부인사부터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정상적인 인사라는 것도 알았지만. 청소부는 고개를 숙여 그들에게 인사하고는 문을 두드려 픽서를 불렀다. 블라인드를 내린 방안에서 고고하게 앉아있던 그가 새파란 안광을 일렁거리며 눈을 뜨고 들어오는 그들이 언제 우왁스럽게 들어왔냐는 양 상냥하게 웃으며 빌빌기는 것을 보며 청소부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카리스마있는 눈빛으로 내리깔며 고개를 까닥거리는 작은 움직임으로 충분히 제어해내는 상황들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물론 그와 같은 위치에 그런 성격이라면 자신은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고보니- 정기검진날이었지. 청소부는 오늘 퇴근하고 자신의 첫번째 은인에게 다녀올까, 생각하며 오래된 수화기를 들어올려 '카르나르' 라 선명하게 저장되어 있는 번호목록을 가볍게 누른다.



전화연결음이 나고, 곧 나른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는 안내음이 들리고 청소부가 주저리주저리 제 몸상태에 대해 나열후 곧 저녁에 약속이 없다면 정기점검을 받고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전히 나긋한 어조로 잠시 기다리라 하는 카르나르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달력을 넘기는지 팔락거리며 두꺼운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대신하여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시간이란 금보다 더 값지고 온갖 기술들보다 더 귀하다 중얼거리던 카르나르의 평소 말버릇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그의 성격다웠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르고 그것을 실감할수가 없어 무의식적으로나마 흐르는 것을 육안으로나마 확인해야한다고 낡고, 닳아 오히려 더 희귀해진 그러한 종이달력을 고집하는 그처럼.



게다가 삐끄덕거리며 잘 움직여지지 않는 오른 무릎과 왼쪽 팔의 관절부분 또한 손보아야할 것 같다고 생각에 담아두며 자연스럽게 청소부는 자리에서 떠났다. 단답벌레는 민감한 촉각센서로 충실하고 성실한 청소부가 퇴근까지 알뜰하게 마치고 마무리지었다는 것을 알고 무심하게 다시 시선을 돌려 거래자 앞에서 고개를 단호하게 젓는다.



"그 용병은 어차피 죽었을거라니까요? 아라사카 건이었잖아요, 당연히 갈기갈기 찢겨져서 이미 어딘가에서 팔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놈을 기다리겠다구요? 단답벌레, 우린 거래자이지 않습니까.


실패한 패를 버리고 새로운 장사를 다시 틀 수 있는 그러한 사람. 그러니 새로운 것을 다시 해봅시다. 저희랑 같이요. 그 아라사카 건, 제게 넘겨주시기만 하면 그 버려지고 실패한 녀석까지 잘 발견해서 데리고 온다니까요?"



그리고 아마 그 용병은 너희쪽에 붙들려있거나, 아니면 이미 너의 말대로 해체되어 나이트시티의 굴다리 아래에서 뒹굴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단답벌레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단 한치의 양보도 없다는 고갯짓에 눈을 찌푸린 거래자가 으르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고 후회할거라는 의미없고 하찮은 위협만을 남긴채 자리를 뜬다. 화풀이 상대라도 찾기위해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지만 이미 퇴근시간을 넘긴지 30분이 지나가는 것을 청소부가 붙어있을리가 없었다. 결국 짜증만 내며 괜한 물건만 쏘아보고 나가는 갱단원들을 흘겨보며 단답벌레는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그도 솔깃한 제안들이었지만, 단답벌레는 자신이 준 믿음이 얼마나 굳건한지 알고있었다. 온몸이 해체되고 다시 팔려나가도 결국은 기어서 되돌아와 의뢰를 완수했다고 웃으며 보고했었던 한명의 테키를 알듯이. 어쨌건 맡기기만 한다면 끝까지 해내는 그를 그만큼이나 믿고 기다려준 것도 그가 유일했다. 물론 좀 값이 비싸고 중간에 떼먹는 것이 꽤 많지만 만족스러울만한 것을 얻는다면 그것만 가지는 것처럼. 그러고보니... 최근 주황머리의 그녀, 비밀소녀와 함께 듀오로 이동하고 다닌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이번엔 또 얼마나 두둑하게 벌어와서 제 앞에 히죽거릴지, 단답벌레는 나름 설레는 마음으로 대기하며 편안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푹신한 남청색 등받이가 새파란 빛을 웅 일렁거리며 흔들렸다.



계속 짙은 습기를 머금고있던 공기가 마침내 무겁게 떨어져내리기 시작한다. 무엇인지 모를 물질이 섞여 흐르지만 방수기능조차도 없는 사람은 더이상 나이트시티에 없었기에 우산하나 펼치지 않고 무심하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남았다. 스쳐지나가나는 비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카르나르는 빗소리가 난다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남자의 팔에 새로 제작한 의수를 끼워넣으며 비가 오고있다 답하여주었다. BD중독에 시달렸던 사람들 중 대다수는, 자신의 감각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좀 씁쓸하긴 하지, 융터르는 불안에 가득 찬 눈동자로 자신이 보고있는 천장조차도 거짓일까, 환상일까 싶어 끝없이 저를 부르짖는 남자의 어깨를 토닥여 진정시켜주었다. 남자는 카르나르의 확실한 답변에 다행이라 말하며 마취제의 효과로 어눌한 발음을 냈다. 흐트러진 말들이 허공에 무심하게 스쳐지나가고 지난 추억과 기억들을 그리워하는 이야기가 담긴 노랫소리를 흥얼거린다.



"궁상맞게, 뭐하고들 있었어요??"



늘어지도록 하품하며 등장하는 걸음에 물기는 한점도 남아있지 않았다. 카르나르의 시선이 제 발에 향했던 것을 알고 피식 웃으며 물기는 확실히 털어냈다 기기가 많아 안그래도 예민한 것들 사이에서 자신이 그런 몰상식한 재앙을 불러오겠냐며 히죽거리는 넷러너, 뢴트게늄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형광등 빛에 반짝이며 빛을 반사했다. 그래도 호되게 당한 이후로는 나름 몸을 사리는 것이 그나마 요즘의 안식이었다. 더이상 죽어가는 누군가를 눈에 담는 것은, 카르나르조차도 더이상은 용서가 안되는 장면중 하나였으니.



"..머리끝이 조금 상했는데."



스파크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또 몰래 한탕을 뛰고는 제게 숨기고 흔적 중 하나인지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엄격해진 눈동자에 뢴트게늄은 아니라며 웅얼거렸지만 그의 앞에서 약해지지 않는 사람은 적어도 이 구역에는, 없었다. 투덜거리고, 머뭇거리며 뻐팅겨도 결국은 그의 진료의자에 몸을 뉘이는 뢴트였다. 나 이거 싫은데.. 무서운데.. 다 큰 어른이 덩치는 산만해서는 꿍얼거리는 말들을 싹 무시하며 카르나르는 냅다 그의 머리카락을 자세하게 살폈다. 끝이 그냥 갈라진건가 싶었더니 살짝 타들어간 흔적, 카르나르의 시선이 서늘하다 못해 빙하기에 가까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고 제 잘못은 알았는지 스리슬쩍 눈동자를 굴려 그대로 시선을 피해버리는 뢴트였다. 단답벌레에게서 받은 일들은 그래도 거의 다 자신도 들었다만 머릿결을 나름대로 관리하는 그가 신경못쓸 정도였다면, 아니 잠깐, 나 괜찮, 괜찮은- 말을 뚝 끊어내며 멋대로 진료기구를 쑤셔넣자 떠오르는 노란 경고등에 불이 들어오고 그때부터 입을 다문채로 눈치만 살근살근 보기 시작하는 그였다.



대체, 그렇게까지 몸을 상하고 기꺼이 내던지면서까지 얻어낸 재화라는 가치가 그토록 높은 것인가, 비통함과 한심함으로 뢴트의 시선을 쫓고 진땀을 빼며 엉성하게 시선을 피하는 그를 카르나르는 지긋이 바라보았다. 어차피 더 하지말라 말린다고 하여도 한달내로 또 이런걸 달고오겠지. 카르나르는 한숨을 쉬었고 그제서야 조금 숨통이 트인건지 허둥지둥 뢴트가 손을 들어올린다. 아, 이번에 그 뭐냐 의수랑 의족들이 좀 많이 빠졌었잖아? 요 근처에 갱단원들 싸움나서! 그래서 수가 부족했을거구! 그래서 내가 더 벌어와서... 채워주려고..했지..... 미안. 안그럴게, 다음부턴 절대 안 그럴게. 당당했던 목소리가 1분도 되지 않아 그대로 쭈그러드는 목소리로 바뀌고 어느새 다시 슬쩍 눈치만 보기 시작하는 그에게 카르나르는 한숨과 함께 의료스크린을 띄운다. 조금 붉게 달아오른 신경만 제외한다면, 정말 이번에는 사리긴 했는지 제법 멀쩡한 몰골이기는 했다.




냉기를 흘려보내자 신음을 내뱉으며 급하게 제 팔을 붙드는 것을 억지로 눌러놓으며 카르나르는 아마도 지금 그의 신경과 혈관에 흐르는 냉기보다 더 차가울 것 같은 제 시선으로 그를 제압한다. 저려오는 팔에도 머뭇거리며 카르나르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 것을 보면 어느정도 먹히긴 한 모양이었지만. 처치가 끝나자 자신의 호흡기를 내밀며 냉기를 채워달라고 했고 여긴 충전소가 아니라면서도 부러 더 좋은 질의 결정을 찾아 채워주는 그를 보며 히죽 웃는다. 자고 가도 되냐며 천연덕스럽게 물어오는 말을 들으면 또 정신을 차린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봐도 허락한 걸로 알겠다며 그대로 내달려 회복실로 꽁지빠져라 달아나는 뢴트에게 한소리하고 싶었지만, 그건 그가 깨어나 슬그머니 빠져나갈 때 붙들어도 될 일이었으니 카르나르는 허, 웃으며 눈을 감아 자비로움을 보여주었다. 아예 제 전용 베개까지 챙겨온 것을 보면 말려도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는 뜻이었지만. 이전 눈이 아프도록 분홍빛이었다는 옛 소문처럼 그는 분홍색 베개를 들고 회복실의 구석을 차지해 제 몸을 둥글게 말고 들어가있었다. 똘망한 눈동자로 몇번 눈을 깜빡이던 그의 경계는 카르나르의 회복실 전체로 울리는 나른하고 차분한 오르간소리와 피아노 소리의 합주에 천천히, 착실하게 풀어졌고 곧 그는 편안한 자세로 낮은 콧소리까지 내며 잠에 들었다.





매번 신세만 져서 미안하다며 스리슬쩍 들어오는 테키에게 카르나르는 고개를 저었다. 뭐,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더이상은 의미도 없는 인사치레이니. 이 친구 좀 봐줄 수 있겠냐며 들어올린 상체만 아니었다면, 마저 그 정겨운 인사를 나누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아, 놀라지 마십시오. 전 선량한 시민이니까요. 기계처럼 일정한 톤으로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재미있기까지 하다.


이러니 제가 무의식적으로 요상한 사람들을 모으고 다니는 괴짜라는 소문이 도는 것 아닙니까. 낮게 토로한 불만사항에 눈을 찡그린 그가 아아, 목소리가 낮아서 울립니다, 안 들립니다! 뚝 말을 끊어냈고 그런점에서도 밉지 않아, 카르나르는 자리에서 일어서 의수와 의족들을 찾으러 일어섰다. 아무래도 나는 늘 져주는 사람이 되려나봅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할게요. 대신 산테라도 하나 건져줄까요, 밀리테크 것은 어때요? 대가라고 덜컥 받기에는 공급처가 너무 수상한데 말이죠. 카르나르의 우아한 거절에 비밀소녀는 아쉽다며 눈을 돌렸지만 온 얼굴을 검은 복면으로 가린 수상쩍은 남자에게 계속 시선을 주는 것으로 보아 나름의 동료라는 것이겠지.



이번엔 안 봐드립니다. 확실하게 돈으로 받아낼테니 준비해두십시오, 툭 내뱉는 말에 웃는 비밀소녀를 지나쳐 소피아를 들어올린 카르나르는 그대로 치료실 및 수술실로 들어가며 그녀의 새파란 시선에서 벗어났다. 백색, 눈아픈 파란색과 지긋지긋한 네온사인의 화려한 불빛들 사이에서도 희귀한 주황머리라는 점이, 그녀에게는 이점과 단점 모두였다. 그럼 이제... 뭐를 할까요, 혼잣말로 중얼거린 비밀소녀가 훌쩍 진료실 의자를 넘어 가볍게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나직하게 퍼지는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동료의 수리를 기다렸다.



"어쩌다 이렇게 되신겁니까, 이렇게 되기도 쉽지않을텐데요."



진심으로 신기하다는 듯 묻는 카르나르의 말에 되려 더 황당하다는 식으로 반응한 소피아였다. 예? 나이트시티의 일원이 아니신겁니까? 저런, 그렇다면 이 장면은 좀 충격적일 수도 있겠군요! 팔다리는 다 어디에 던져둔 주제에 참으로 당당하기 짝이 없는 말버릇이었다. 어처구니없이 쳐다보는 카르나르의 시선을 피해 자신이 얼마나 화려한 삶을 살았는지를 나불거리기 시작한 소피아의 말은 요약하자면 결국 업보라는 간단한 말이었다. 평소 그의 주장대로라면 꽤 좋거나 좋아보이는 물건들을 기업이나 갱단이나 일반적인 상인이나 전혀 상관하지 않고 그의 동의없이 '빌렸고' 돌려주는 것을 실수였던 고의였던 잊은 그를 찾아와 결국 팔다리를 전부 뜯어낸 채 버렸다는 결론, 카르나르는 이마를 짚으며 의수와 의족들을 내려놓았고 입은 살아 그래도 기왕 뜯겼으니 새로 달 때는 좋은 걸 달아야하지 않겠냐 말하는 그에게 조금의 미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테키라고 호기심을 반짝거리며 이것저것 달라 요구하는 것은 좀 짜증났지만, 그럼에도 카르나르는 진중하게 그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팔다리를 맞추어가고 있었다.



업그레이드는 신중해야한다, 그리고 다운그레이드 역시도 신중해야한다는 그의 모토에 따라 적합률과 상승률을 세밀하게 계산하여 살핀다. 덕분에 그의 뒤를 슬그머니 스쳐 지나가는 뢴트는 잡지못했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그래도 역시 자기 잘하지 않았냐 키득거리며 의뢰로 벌어왔던 돈 뭉텅이를 냅다 카르나르의 계좌에 던져주고는 사라졌다.


아쉽군요, 저런 사람이 제 친구였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저도 불우이웃이거든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로 나불거리는 소피아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낸 카르나르의 손가락이 다소 거칠게 소피아의 신경과 연결하고 아프지도 않은지 소피아는 심드렁하게 뢴트를 자신에게 소개해줄 생각은 없냐 물었다. 호구라는 생각이겠지, 카르나르는 고개를 저으며 무시했다. 그나저나 이번엔 밀리테크 것을 가져왔으니 좀 성이 났을지도 모른다며 중얼거리는 소피아의 말, 그리고 요란스럽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카르나르는 이를 악물고 이번에는 진심으로, 소피아를 쏘아보았다. 자신의 평화로운 안식처이자 모두의 안식처, 대피소와 같은 이곳을 혼란으로 물들이려는 사람은 얼마나 친했건 소중했건 간에 더이상은 용서할수가 없었다.



"...나가십시오."



"기,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진심입니다, 한번만.. 믿어주십시오!"



머리가 아프도록 생경하게 울리는 경고음과 사이렌 소리를 뚫고 나가라고 카르나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아까전까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 묻는 그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섬뜩한 살기들을 흘리며 소리치지도 않고 위협하는 카르나르의 모습에서 소피아는 허둥거리며 급하게 달랑거리는 팔을 들어올리며 무해함을 증명하고자 애썼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 외치는 소피아의 모습에서 몇번이나 터지려던 분노를 참은 카르나르가 고개를 까닥이고 곧 그 방법이랍시고 자신을 쟤네한테 던져주면 된다는 말을 해결책이랍시고 말하는 소피아의 모습에서 카르나르는 실로 오랜만에 고혈압을 느꼈다. 더이상 아프지 않아야 할 터인 뒷목을 붙들고 카르나르는 소피아의 어깨를 내리눌러 금방이라도 창밖으로 뛰어내릴 기세인 그를 말린다.




이래서.. 전부 삔또가 이상하단 말입니다. 다 뭐 자기 몸뚱어리를 헌 종잇짝보다 못하게 대하니- 혀를 차며 찌푸린 미간이었으나 적어도, 화가 나보이지는 않았다. 소피아는 그제서야 진정하며 복면 너머 눈으로 방긋 웃는다. 화 풀리셨습니까? 한숨과 함께 어쨌거나 이사는 할거라며 그리고 그 비용도 전부 소피아에게 달아둘 거라 경고하는 카르나르의 뒷모습을 보며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을 듣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얼굴을 전부 가리고 있던 눈만 내놓고 있던 전혀 상관하지 않는 사람도 처음이었고 그래도 테키랍시고 자신의 몸에 달아줄 것을 섬세하게 고르는 손길과 하나하나 물어오던 배려들까지. 소피아는 단번에 이곳을 마음에 들어했다. 본래 원래 원하는 것은 당장 손에 넣어야 만족하는 그런 화끈한 성격이었는데 말이죠, 이번에는 좀 시간을 들여서 정성을 쏟아 가져봐야겠습니다. 카르나르의 귓가에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중얼거린 소피아는 다시 창밖의 번쩍거리는 붉은 경광등을 바라보며 그럼 저 꼬라지를 어떻게 해결할까, 궁금증을 키운다.



"그럼 어쩌시려는 겁니까?"



소피아의 물음에 카르나르는 덤덤한 시선으로 시끄럽다 욕하며 물건들을 집어던지는 빈민가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 마을의 거의 전부가 카르나르에게 호의적이며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니 당연히 안 좋은 시선으로 보며 그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COP들을 몰아내고자 애썼다. 벌레들의 반항조차도 되지 못하겠지만, 카르나르의 입가에 한순간 풀어진 미소가 번지고 그것의 대상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가 지켜내고 도와주어 마침내 그들이 버티는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뿌듯하고 흐뭇해하는 미소. 소피아는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웃는다. 아, 저 생각보다 더 당신이 좋아질 것 같군요. 속말을 삼키는 소피아의 시야에 한 남자가 난리를 피우며 사고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를 보며 카르나르는 시선에 아련함, 후회를 담는다. 오랜시간 이곳에서 살아왔기에 가질 수 있는 가장 날것의 감정을 떠올린다. 닳고 닳아 의미가 없어졌지만.



"친구입니다. 걱정할 필요는.. 무의식적으로 없을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럼 덕분에 부동산업자를 보러가야할테니 거기서 대기하시지요"



"네? 아니 잠깐, 그럼 제 팔은..!"



"벌입니다. 대기하시지요."



허! 소피아의 어처구니없어하는 목소리를 뒤로 흘려들으며 밖으로 나가는 카르나르를 맞이한 것은 그의 예상대로 태연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캘리칼리 데이비슨, 그였다. 당당하게 COP이라 쓰여진 복장을 입고도 낭만과 우정이 먼저라며 항의하는 부하들의 말을 깨끗하게 잘라먹고 있는 그에게 카르나르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알고있는 부동산업자에게 걸음을 옮긴다. 걸음을 옮기는 카르나르를 보자마자 조르륵 붙어 요청하지도 않은 호위를 핑계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는 캘리칼리를 무시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딱 봐도 피곤해질 것 같은 일인데 이참에 관두지 않겠냐 권유하는 것도 결국은 걱정에서 비롯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적하지 않는다. 넌 사고를 끌어들이는 사람들을 데리고 있다는 말 또한 얹고 그냥 싹 정리하고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떻냐, 마지막은 결국.. 돌아오지 않겠냐는 물음까지 도착했을 때에는 그들은 이미 업자의 앞에 있는 상태였다. 돌아가지 않습니다. 단호하게 말을 긋고는 들어가버리는 카르나르의 뒤통수를 아쉽게 바라보며 캘리칼리도 현장으로 복귀한다. 하기싫다고 말하면 뭐 끝까지 않하는 황소고집이기도 하니. 애초에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해주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캘리칼리는 무전기를 들어올렸다. 상황종료-.



상부의 채근하는 말을 씹으며 그대로 무전을 내린 캘리칼리의 시야에 섬뜩한 시선들이 들어온다. 목숨을 넘어서 인생자체를 구원받은 마을사람들의 매서운 눈빛들이야 각오했다지만 이런 종류는 조금 위험한데 말이지... 오싹하게 피부로 느껴지는 살기에 고개를 들어올린 캘리칼리는 헛웃음을 짓는다. 이 친구 내가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잖아? 섬뜩한 파란색 눈동자의 픽서- 저건 왜 저기있는거야? 아니 애초에 저 녀석 대기업들에서 스카웃 제의까지 받던 놈 아니었나? 새파란 안광으로 자신의 등에 달린 임플란트를 탐내는 테키와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것 같은 남자 테키- 애초에 저 녀석이 밀리테크 것만 안 가져갔어도 여기까지 올일이 없었을텐데. 도적듀오로 마음에 드는 것은 기어이 손에 넣어야 만족한다는 녀석들, 그리고 넷상의 조커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넷러너까지. 섬뜩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이 한번에 한 건물에 모여있는 것도 용케 폭탄같은 녀석들을 데리고도 멀쩡한 운영을 한다는 것도 참 그답다고 생각하며 캘리칼리는 피식 웃어버렸다. 마을 하나쯤은 그냥 우습게 심심풀이로 날려먹을 놈들임에도-



캘리칼리는 손가락을 까닥여 먹고있던 음료의 캔을 부드럽게 접었다. 그게 제발 그렇게 구기지 말라고 초합금으로 만들어놓은 캔이었다는 것만 아니라면, 일반적인 용병의 행동이기는 했다. COP이라는 글자를 달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깡패라는 말에 더 적합하겠지만. 스스로에게 내린 평가에 키득거리며 캘리칼리는 차에 몸을 던진다. 출발하자고! 우렁한 신호와 함께 일반적인 컴퓨터의 모니터만한 손바닥으로 철판을 친 그의 힘 덕분에 차는 휘청거리지만 요란스럽게 사이렌을 켜고 다른 사고를 처리하러 달려간다. 사건사고라는 건 끊기지 않고 그 중에서 가끔, 보석만큼이나 희귀한 좋은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지. 캘리칼리의 긍지와 매력은 그것들 중 하나였다. 늘상 투덜거리고 이 일을 자기가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습관적으로 말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이유, 그가 찾아내는 인연 때문이었다.



웅덩이를 튀기며 차가 자리를 뜨고 다시 적막이 찾아온 나이트시티에 평화가 되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은 다시 무심하게 창문을 닫고 제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낭만적인 노래와 서글픈 가락, 그리고 펑키한 소음과 소리지르는 괴성들까지 합해져 기가막힌 하모니가 거리에 퍼진다. 언제나 그렇듯, 여기는 나이트 시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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